바람을 거스르는 향기 /증일아함경 지주품

2013. 8. 15. 16:4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염불 불보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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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거스르는 향기


부처님이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난존자가 한적한 곳에서 명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세상에 과연 바람을 거슬러서도 향기를 풍기고,

 바람결을 따라서도 향기를 풍기고,

바람을 거슬리거나 바람결을 따라서나 언제나 향기를 풍기는 향이 있을까...?’

 

아난존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찾아뵙고

‘과연 이 세상에 그런 향과 같은 일을 있을 수 있을까’를 여쭈어보았다.

부처님은 ‘그런 향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아난존자가 다시 물었다.

 

“이 세상에 과연 어떤 향이 있기에 바람을 거슬러서도 향기를 풍기고,

바람결을 따라서도 향기를 풍기고, 바람을 거슬리거나 바람결을 따라서나

언제나 향기를 풍기는 향이 있다고 하시는지요?”

 

“첫째는 계율의 향(戒香)이고, 둘째는 들음의 향(聞香)이고,

셋째는 보시의 향(布施香)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향은 바람을 거슬러서도

향기를 풍기고, 바람결을 따라서도 향기를 풍기고, 바람을 거슬리거나

바람결을 따라서나 언제나 향기를 풍기는 향이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소(牛)에서 타락(駝酪=유유)이 생기고, 타락에서

소(酥=요쿠르트)가 생기며, 소에서 제호(醍醐=치즈)가 생기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제호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난아.

그대들은 열심히 정진하여 이 세 가지 향을 얻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증일아함 13권 지주품(地主品) 제5경

 

  

때는 1980년대 여름 어느 날. 전라남도 곡성에 있는 태안사에 젊은 손님 한사람

찾아들었다. 어떤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였는데 그 절에 주석하는 큰스님을

인터뷰하러 온 것이었다. 그가 절에 들어섰을 때는 오후 1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마침 해제기간이라 절 마당은 고요한 침묵만 가득할 뿐 스님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젊은 객은 사람을 찾으려고 뒤뜰로 갔다. 어떤 노스님이 연탄불을 갈고 있었다.

객은 인기척을 내고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노스님은 아무 말 없이 젊은이를 객실로

안내하고 후원에 일러 공양을 차리게 했다.

 젊은 객은 공양을 마치고 밥상을 물리며 공양주보살에게 ‘큰스님은 어디계시냐?’고

물었다. 공양주는 ‘아까 뵌 그분이 바로 큰스님’이라고 했다.

젊은 객은 심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했다.

 

객은 공양주보살의 안내를 받아 큰스님이 계신 방으로 갔다.

명함을 내민 뒤 인사를 하니 노스님은 맞절로 손님을 맞았다. 객은 인사가 끝내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자 노스님도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할 수 없이 젊은 객이 평좌를 하자 그때야 스님도 평좌를 했다. 그리고는 맑은 차

한 잔을 내놓으면서 젊은 객의 이런 저런 질문에 친절하게 응답을 해주었다.

 

절문을 나서면서 젊은 객은 어느 큰스님을 찾아뵐 때보다 더 큰 감동을 느꼈다.

노스님의 겸손과 하심은 어떤 설법보다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객은 마치 좋은 향기를 쐰 것처럼 온몸에서는 은은한 향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는 문득 <법구경> 화향품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다. (花香不逆風)

연꽃도 전단나무 향도 마찬가지다. (芙蓉栴檀香)

그러나 덕 있는 사람이 풍기는 덕향은 (德香逆風薰)

바람을 거슬러 어디서든 들려온다 (德人徧聞香)

 

노스님의 향기가 그랬다. 시간이 가도, 바람이 불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젊은이의 가슴에 오랫동안 바람을 거스르는 향기를 남겨준 분은 몇 해 전 입적한

‘청화(淸華)스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