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 ‘몽땅 깨끗이 다해 마치라’는 말씀이 가슴에 확 와 닿지가 않습니다. < 답변 > 삼라만상이 인연생기(因緣生起)라는 말은 믿으시오? · · · · · · 이 세상 온갖 법은 반드시 다른 그 무엇에 의지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자기만의 고유한 성질을 지닌 채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요. 자체의 성품이 없다 소리는 무슨 소리요? 그러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만 있는 듯 할뿐 실제로는 존재하는 게 아니라 소리요. 여기 있는 한 장의 수건을 구성하고 있는 가로 실, 세로 실을 전부 뽑아 제자리로 돌리고 나면 조금 전의 수건은 어디로 간 거요? · · · · · · 그와 같이 이러저러한 인연이 적당히 모이면 수건도 생기고 온갖 이런 것 저런 것들이 생기지만 그 모두가 전부 다른 그 무엇에 의해 잠시잠깐 생겨난 것처럼 보일 뿐 실상은 아무런 변화변천이 없는 게 진실이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소위 문젯거리들은 어떻게 되는 거요? · · · · · · ‘ 남의 문제’는 헛것일 수 있지만 ‘내 문제’만큼은 실제로 있는 거요? · · · · · · 예외 없소. 전부다 헛 것을 보고 문제라고, 그것도 아주 큰 문제라고 혼자 떠들어대는 꼴이오. 만법이 인연생기면 도무지 이게 이거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데도 계속 번뇌가 어떻고 갈등이 어떻고 ‘내 문제’가 어떻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전혀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니오. 실상이 이러니 몽땅 깨끗이 다 해 마치라 소리도 새삼스레 따로 할 필요조차 없는 얘기인 거요. 이처럼 정법(正法)을 만나면 그것이 세간법이었건 출세간법이었건을 막론하고 몽땅 다 소멸하고 마는 거요. 그래서 마침내 이 몸도, 이 세계도, 나아가 그 모두를 껴잡고 있는 허공까지도 몽땅 다 아닌 줄 알면 그때 비로소 그 사람을 깨달은 사람이라 하는 거요. 그렇다고 이 소리를 듣고 이제부터 눈에 보이는 족족 몽땅 끊고 마치고 그치고 하는 데에만 정신을 빼앗긴다면 그 사람은 ‘끊어 마치라’는 지견을 못 끊고 계속 분주히 먼지 피우는 거요. 일체 만법은 지금 이대로인 채로 그 어느 것도 진리 아님이 없으니 결코 그 어떤 인간의 조작도 기다리지 않소.
- 대우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