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시장과 BBK 벤처사기 사건의 달콤 살벌한 관계

2007. 6. 7. 09:48카테고리 없음

728x90
 

이명박 전 시장과 BBK 벤처사기 사건의 달콤 살벌한 관계


아래 내용은 <시사저널> 신호철 기자가 쓴 아래 기사를 바탕으로 이명박 전 시장과 BBK 벤처사기 사건의 개요를 문답식으로 풀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미국 검사는 왜 이명박씨를 찾았나(<시사저널> 881호, 2006년9월) 

이명박 힘들게 할 그 사나이 돌아올까(<시사저널 870호, 2006년6월) 

이명박 시장과 사기범의 ‘진실 게임’(<시사저널> 765호, 2004년6월)

옵셔널벤처스 뒤에 이명박 있었다?(<시사저널> 650호 2002년4월) 


- 이명박 X파일 문제가 정가의 핵으로 부상했다.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BBK 벤처사기 사건에 이명박 전 시장이 연루되었나 하는 부분인데, 사건의 개요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BBK 벤처사기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옵셔널벤처스 사기 사건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이 회사 대표인 김경준씨는 2000년 7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옵셔널벤처스를 운영하면서 회사 돈 3백84억원을 횡령했다. 옵셔널벤처스의 전신이 바로 BBK다. 제기되는 의혹의 핵심은 이명박 전 시장이 BBK 회장으로 사실상 김경준씨와 공동으로 경영했다는 것이다.  BBK가 이명박 전 시장이 경영하던 이뱅크증권의 후신이라는 주장도 역시 제기된다.


이 사기사건에 대해서 이명박 전 시장 측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이명박이 깨끗이 사기 당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전 시장으로서는 인정하기에는 정말 치욕스러운 사기일 수 있다. 본인이 30억 사기를 당하고 형의 회사(현 다스, 구 대부기공)가 1백40억을 사기 당하고, 친구의 은행(하나은행)이 5억원을 사기 당했기 때문이다.  


- 이명박 전 시장은 BBK와 자신이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나?


일단 당시 언론 보도를 살펴보자. 2000년 10월6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명박씨는 “올초 LK이뱅크와 자산관리회사인 BBK를 창업한 바 있다. 이뱅크증권은 이 두 회사를 이용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해 10월14일자 <중앙일보> 기사에는 ‘이명박씨는 LK이뱅크와 BBK의 대주주이며 경영에도 관여하고 있다’라고 나와 있다.


2000년 10월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 이명박 전 의원은 “김경준 사장이 지난해 BBK 설립 이후 한국 증시의 주가가 60% 빠질 때 아비트리지(차익) 거래로 28.8% 수익률을 냈다”라고 소개하면서 연방 김사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라는 대목도 당시 기사에 나온다. 이 전 시장이 김 사장을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당시 김씨는 펀드매니저로 일하던 샐러먼스미스바니에서 ‘허위 실적 유포’와 ‘회사 허락 없이 다른 펀드 설립에 관여’한 이유로 해직된 상황이었다(1999년2월).



- 또 다른 근거가 있나?


2001년 1월까지 이뱅크증권과 BBK는 삼성생명 17층을 같이 쓰고 있었다. 등기부 등본상 주소가 같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당연히 BBK 회장이 이명박씨라고 생각할 만했다. 이들은 2001년 1월 겨울 코스모타워 8층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역시 등기부 등본상 주소가 같다. 김경준씨는 2000년 이명박 시장과 함께 서로의 머리글자를 딴 ‘LK이뱅크’ 사업을 했는데, 이 회사가 지주회사로 지목되고 있다.

이뱅크증권 사장이었던 김백준씨(현재 이명박 캠프 핵심참모다)는 당시 “이뱅크증권에는 직원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BBK 직원들이 겹쳐서 일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씨는 코스모타워 8층에 입주하기 며칠 전 현장 답사를 왔었는데, 이 때 그를 수행했던 허민회씨는 이뱅크증권 이사이자 BBK 이사를 겸하고 있었다. 옵셔널벤처스의 한 직원은 “이뱅크증권·BBK·옵셔널벤처스 세 회사 사이에 구분은 모호했다”라고 말했다. 이뱅크증권이 8층에서 철수한 것이 6월인데, 지하 매점에는 이미 4월30일에 옵셔널밴처스 이름으로 물건을 산 기록이 있다.


- 이명박 전 시장 측은 검찰 수사 결과, BBK 사기사건과 관련해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나?


2001년 10월 코스닥 기업 (주)심텍이 투자금 30억원을 돌려달라며 BBK에 낸 소송을 말하느 것 같다. 당시 심텍 측은 이시장의 “내가 회장이다”라는 말을 믿고 김씨의 BBK투자자문에 50억원을 투자했으나 20억원밖에 돌려받지 못했다며, 두 사람에게 소송을 걸었다. 얼마 뒤 김씨에게 돈을 돌려받은 심텍측은 소를 취하했다. 당시 심텍의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주)심텍이 고소를 취하한 이후 ‘혐의가 없다’며 2001년께 사건을 종결했다.


검찰의 무혐의 결정은 이시장에게는 훌륭한 면죄부가 되었다. 이 시장측은 BBK나 김씨와 관련해 언론이 취재를 하려 할 때마다 검찰의 무혐의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고소인이 고소를 취하한 사건으로 BBK 사기사건 전체에 대해서 면죄부를 받았다고 주장하기에는 힘들다.


- 이명박 전 시장 측의 주장은 자신도 피해자라는 것 아닌가?


이명박 전 시장과, 그의 형인 이상은 회장이 경영하는 (주)다스가 각각 벌이고 있는 소송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은 지난 2004년 2월27일 김경준씨 남매를 상대로 35억원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또 이상은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경주지역 자동차부품업체 (주)다스(옛 대부기공)는 김경준씨와 그의 아내 등을 대상으로 1백40억원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냈다.


이명박 전 시장이 소송을 제기한 35억원은 본인이 입었다는 피해 30억원과 하나은행 피해액 변제액 5억원을 합한 금액이다. 이시장과 대학 동창인 김승유 회장이 운영하는 하나은행도 BBK에 5억원을 투자했다. 엉뚱하게 피해를 본 하나은행은 투자금 5억원과 이자를 돌려달라며 이명박 전 시장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고, 이 전 시장은 하나은행에 5억원을 갚기로 합의했다.


- 그렇다면 이명박 전 시장도 피해자인 것 아닌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고소의 시점이다. (주)다스는 (주)심텍과 달리 한창 옵셔널벤처스 사기 사건이 이슈가 되었던 2001~2002년에는 문제를 삼지 않다가 2003년 4월에 와서야 김씨와 그의 부인을 상대로 1백40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 전 시장측은 2003년 5월에 소송을 제기하고, 2004년 2월27일 김씨 남매를 상대로 35억원 반환 소송(민사)을 냈다.


의문이 가는 지점이다. 왜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서 바로 소송을 내지 않고 한참이 지나서야 소송을 제기했냐는 것이다. 김경준씨의 주장은 이명박 전 시장은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라는 것이다. 김경준씨로부터 피해를 입은 옵셔널캐피(전 옵셔널벤처스코리아)측과 소액 주주 27명은 2002년 초 김씨를 고소한 바 있다.


- 사건의 중심에 있는 김경준씨는 어떤 사람인가?


김경준씨의 학력은 화려하다. 코넬 대학 학사, 시카고 대학 경제학 석사, 와튼스쿨 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0년 <매경 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코넬 대학으로 간 것은 누나에게 인종차별적 행동을 한 백인 학생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친한 사이였고 누나의 소개로 김경준씨는 이명박씨와 동업하게 되었다던데.  


누나인 에리카 김은 코넬 대학과 UCLA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다. 그녀가 쓴 수필집 <나는 언제나 한국인>은 한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에리카 김씨는 LA한인상의회 회장이었고 LA시 인권위원회 위원이었다. 동생 김경준씨는 LA경찰국 아태경찰자문위원회(APIAC) 회장이었고 LA시 산업개발국 회원이기도 했다.


- 김경준씨는 현재 어떤 상황인가?


지난 2004년 5월27일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연방보안관이 LA에 거주하던 김경준씨를 횡령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김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 시틱센터에 소재한 구치소에 수감중이다. 미국 정부가 몰수한 김경준씨 일가 자산은 무려 2백3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수사국이 체포하기 전까지는 김씨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로스앤젤레스 시정부와 친분이 깊던 김경준씨를 검거할 수 있었던 것은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아니라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수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경준씨 체포 사건의 불똥은 LA 한인 사회 전체로 번졌다. 미국 유력 일간지 LA타임스는 6월5일자에서 이 사건을 크게 다루며 남매가 LA시 공직을 맡게 된 배경을 짚었다.


- 미국 정부는 왜 김경준씨를 검거했나?


한국 정부의 요청 때문이었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지난 2월12일 미국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고 이를 미국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공식적인 범죄인 인도 사유는 2000년 7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코스닥 기업인 옵셔널벤처스를 운영하면서 회사 돈 3백84억원을 횡령한 혐의다.


- 김경준씨의 신병이 한국으로 인도되면 사건 해결이 급진전 될 것 같은데, 인도될 가능성이 있나? 


2005년 10월 미국 연방법원은 김씨의 신병을 보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김경준씨는 자신을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묘사하며 연방법원에 한국 송환 거부를 요청했다. 김씨는 연방법원 항소·구속적부심 심사 등 다양한 법적 장치를 활용하며 또 송환을 늦추고 있다. 김씨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미국 검사가 한국에 와서 조사를 하는 기현상까지 발생했다.


- 미국 검사가 한국에 와서 조사를 했다고요? 상당히 이례적인 일 아닌가?


지난해 8월27일부터 9월2일까지 그는 서울 세종로 주한 미국대사관 모처에 사무실을 빌려 증인 심문을 했다. 한국계 존 리 연방검사가 한국에 온 목적은 김경준 사건 참고인들의 증언을 받기 위해서인데, 애초 이 ‘존 리 리스트’에는 이명박 시장과 그의 측근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 연방검사가 조사를 목적으로 방한한 것은 그동안 없던 일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연방검사를 위해 사무실을 빌려주는 일은 한·미 수교 1백24년 역사상 처음 있는 경우라고 한다. 


- 왜 굳이 한국에까지 와서 조사를 했나?


사건을 담당한 미국 연방법원 오드리 콜린스 판사의 판단 때문이다. 그는 판결문에서 “증인들은 이명박씨로부터 증언을 번복하지 말라는 회유를 받았다. 한국 검찰이 심문을 할 때 편호사가 동석하지 않았고, 증인들이 이명박씨로부터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증언에 신뢰성이 없다”라고 밝혔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은 김경준씨의 주장을 재판부가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 BBK 사기사건과 관련해서 앞으로 주목할만한 사항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미국 법정에서 김경준씨는 “이명박씨 스스로 평소 ‘대부기공(현 다스)이 내 것이며 내가 지휘(control)한다고 말해왔다. 이명박과 대부기공은 일체(one in same)다”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이명박 전 시장이 재산을 일가친척에게 나눠서 감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전 시장 측은 “일고할 가치도 없다. 법정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 사기꾼이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 곧이곧대로 믿는 게 더 이상하다”라고 일축했다. 이시장측 소송을 맡고 있는 변호사 리사 양씨는 “(주)다스의 투자는 이상은 회장과는 무관하게 김성우 공동 대표이사가 결정한 것이다. 이명박 시장과도 명백히 무관하다. 오로지 김경준씨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라고 못박고 있다.


김경준씨의 담당 변호사 에릭 호니그씨는 신호철 기자에게 “이명박·다스측 소송과 관련해 김경준씨는 아직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다. 때가 되면 이야기 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선거가 임박한 때 김경준씨가 한국으로 송환된다면 태풍의 핵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