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스 결장한 박지성은 'EPL 전용'?

2008. 3. 6. 17:27일반/생활일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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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스 결장한 박지성은 'EPL 전용'?

[엑스포츠뉴스 2008.03.05 10:10:45]




[엑스포츠뉴스=박형진 기자] 새벽 4시 반, 제가 핸드폰 알람을 끄고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BBC 홈페이지에 들어가 곧 열릴 경기의 선발명단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 커피도 한 잔 끓이고요.) 커피를 마시며 경기를 기다리는 사이 홈페이지에서 선발명단을 확인합니다. 역시, 우리의 '13 Park'는 벤치명단에 포함되어 있었고, 박지성을 대신해 나니가 호날두, 루니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공격진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맨유는 5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열린 챔피언스리그 16강 리옹과의 2차전에서 호날두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리옹 원정에서 1-1로 비긴 맨유는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통합 2-1로 리옹을 따돌리고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습니다. 리옹은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16강에서 유럽 챔피언을 향한 행진을 멈추어야 했고, 맨유는 아스날과 나란히 8강에 안착하며 최근 불고 있는 'EPL의 힘'을 확인시켰습니다.

리옹은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였지만, 맨유는 홈에서 생각보다 어려운 경기를 펼쳤습니다. 리옹은 0-0으로 비길 경우 원정 골 우선원칙에 의해 그대로 탈락하기 때문에, 원정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전술로 나섰습니다. 수비수 클레르를 공격진에 배치했던 1차전과는 달리, 벤 아르파를 선발로 내보내고 클레르를 원래 자리인 오른쪽 윙백에 배치했습니다. 벤 아르파는 결정력에서 다소 아쉬운 면모를 보였지만 '벤'제마에게 집중된 수비를 역이용하며 리옹의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주닝요가 버티고 있는 한 리옹의 세트플레이는 거리에 상관없이 맨유에게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한편, 맨유는 챔피언스리그 경기마다 보여주는 '고질병'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맨유는 루니, 테베즈, 호날두, 나니 등 기술과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를 여럿 보유하고 있고, 이들이 보여주는 협동 플레이는 리그에서 맨유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요성 때문인지 단판승부라는 부담 때문인지 챔피언스리그에서만은 맨유가 리그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팀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뭐, 미워하래야 미워할 수 없는 '혼자우도' 호날두의 감각적인 골로 맨유가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리그에서 보여주었던 팀플레이가 조금 더 살아났다면 맨유팬들은 가슴 졸이며 90분 내내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골을 넣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퍼거슨 감독의 로테이션 정책과 박지성의 활용은 참 아쉽습니다. 전에도 제가 한 차례 언급한바 있지만('박지성은 '꿈의 무대'에서 빛날 수 있을까?'),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챔피언스리그 선발로 세운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박지성은 맨유로 이적한 후 총 7번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했고, 그나마 모두 늦은 시간 교체로 출전한 기록입니다. 분으로 따져도 113분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AC밀란을 상대로 한 챔피언스리그 4강전 골'과 같은 장면을 박지성이 보여주기엔 너무나 적은 출전시간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잉글랜드팀이 아닌 다른 유럽팀을 상대로 하는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관록'의 긱스와 '기술'의 나니가 '팀플레이어' 박지성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긱스가 부상으로 빠진 자리에 나니가 들어가는 것을 보면 이러한 선호는 분명해 보입니다. 나니는 분명 오늘 열린 리옹전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했습니다. 나니는 리옹의 측면을 끊임없이 공략했고, 양질의 크로스를 여러 차례 선보였습니다. 나니는 자신의 방식대로 퍼거슨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어쨌든, 맨유는 승리했으니깐요.

그러나 나니에게 없는 것이 박지성에게 있습니다. 바로 중앙 미드필더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유기적인 공격 전개를 이끌어간다는 점이죠. 지난 시즌 아스톤 빌라전에서 박지성이 골을 넣은 날, 마이클 캐릭이 나란히 골을 넣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골은 캐릭의 맨유 데뷔골이었습니다.) 또한, 4-3-3 포메이션을 가동한 경기 중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이끈 경기 역시 박지성이 출전했던 아스날과의 FA컵 경기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날 2골을 넣은 선수 역시 중앙의 플레쳐였습니다.)

박지성은 자신이 드리블로 측면을 돌파하는 대신 중앙 미드필더와 빠른 템포의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격을 전개합니다. 덕분에 박지성이 공격을 주도할 때는 중앙 미드필더가 함께 공격적인 포지션에 위치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상대 수비는 측면과 중앙으로 분산되게 되며, 수비가 얇아진 틈을 이용해 박지성(혹은 박지성과 함께 측면에 포진된 윙백)이 중앙으로 공을 공급하면 맨유의 공격은 그만큼 손쉽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려한 드리블의 호날두와 나니가 갖지 못한 박지성만의 장점입니다.

박지성이 빠진 5일 리옹전에서 맨유의 중앙 미드필더는 대체로 부진했습니다. 물론, 맨유가 노리는 것은 다득점이 아닌 8강 진출이었고 그것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수비였습니다. 그러나 캐릭, 플레쳐, 안데르손으로 이루어진 맨유의 중앙 미드필더는 공을 소유하며 경기를 장악하는데 실패했고, 결국 후반전에는 리옹의 파상공세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점이 맨유가 승리를 거두고도 못내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유입니다. 박지성의 결장이 아쉬운 것은 그가 대한민국 선수여서가 아니라, 그가 팀에 필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임에도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오랜 기간 교체로만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던 플레쳐가 아스날전 대활약을 계기로 챔피언스리그 후보명단에 포함되었고, 5일 2차전에는 선발로 출전해 90분 풀타임을 소화했습니다. 박지성 역시 선발 출전이 확실시되는 이번 주말 포츠머스와의 FA컵 경기에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퍼커슨 감독(중계를 보신 분만 알 수 있는 유머!) 역시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 차례 결장에 상심하지 않고 지난 풀럼전만큼의 활약만 보여준다면, 박지성은 분명 맨유의 기둥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엑츠) 박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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