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법문 5

2008. 7. 17. 13:5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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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대적광전에서 하신 대중법어/1981년 음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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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임제종 중흥조로서 오조 법연선사(五組法演禪師), 원오 극근선사(梧克勤

 

禪師), 대혜 종고선사(大慧宗 禪師), 이렇게 세 분이 삼대에서 임제종을

 

크게 진흥시켜 임제종을 천하에 널리 퍼지게 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대

 

혜스님이 공부한 것은 좋은 참고가 됩니다.


대혜스님이 공부하다가 스무 살 남짓 됐을 때 깨쳤습니다. '한소식'해 놓고 보니 석가보다 낫고, 달마보다도 나아 천하에 자기가 제일인 것 같았습니다. '어디 한번 나서 보자, 어디 누가 있는가'하고 큰스님들을 찾아가 보니 모두 별 것 아닙니다.

 

자기가 보기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가 제일이라고 쫓아다니는 판입니다. 당시 임제종 황룡파(黃龍派)에 담당 문준(湛堂文準)선사가 계셨습니다. 대혜스님이 그 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병의 물을 쏟듯, 폭포수가 쏟아지듯 아는 체 하는 말을 막 쏟아 부었습니다. 담당스님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네 좋은 것 얻었네. 그런데 그 좋은 보물 잠들어서도 있던가?' 하고 물어왔습니다.

자신만만하여 횡행천하(橫行天下)하여 석가보다도, 달마보다도 낫다 하던 그 공부가 잠들어서는 없는 것입니다.
'스님, 다른 것은 전부 다 자신있습니다. 그런데 잠들어서는 그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잠들어서는 아무 것도 없으면서 석가, 달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것은 병이야 병, 고쳐야 돼.'

이렇게 자기 병통을 꽉 찌르니 항복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죽자고 공부하다가 나중에 문준선사가 병이 들어 죽은 후에는 그 유언을 따라 원오 극근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무슨 말을 걸어 보려고 하니 무슨 절벽같고 자기 공부는 거미줄 정도도 안되는 것입니다. 만약 원오 극근선사가 자기의 공부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기색이면 그를 땅속에 파묻어 버리리라, 는 굳은 결심으로 찾아갔는데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하, 내가 천하가 넓고, 큰 사람있는 줄 몰랐구나.'
크게 참회하고

'스님, 제가 공연히 병을 가지고 공부인 줄 잘못 알고 우쭐했는데, 담당 문준선사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잠들면 공부가 안되니 어찌 해야 됩니까?'

'이놈아, 쓸데없는 망상 하지 말고 공부 부지런히 해. 그 많은 망상 전체가 다 사라지고 난 뒤에, 그때 비로소 공부에 가까이 갈지 몰라.'
이렇게 꾸중듣고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원오스님 법문 도중에 확철히 깨달았습니다. 기록을 보면 '신오(神梧)'라 하였습니다.

 

 신비롭게 깨쳤다는 말입니다. 그때 보니 오매일여입니다. 비로소 꿈에도 경계가 일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원오스님에게 갔습니다. 원오스님은 말조차 들어보지 않고 쫓아냅니다.

 

말을 하려고 하면 '아니야 아니야(不是 不是)'말을 하기도 전에 부시 부시 (不是 不是)라고만 계속합니다. 그러다가 화두를 묻습니다. '유구와 무구와 등칡이 나무를 의지함과 같다. (有句無句 如藤倚樹)'는 화두를 묻는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는 환하게 알 것 같아 대답을 했습니다.

'이놈아,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것 아니야, 공부 더 부지런히해!'
대혜스님이 그 말을 믿고 불차신명(不借身命), 생명을 다 바쳐 더욱 부지런히 공부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참으로 확철히 깨쳤습니다.
이렇듯 대혜스님은 원오스님에게 와서야 잠들어도 공부가 되는 데까지 성취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확철히 깨쳤습니다.

 

잠이 깊이 들어서도 일여한 경계에서 원오스님은
'애석하다. 죽기는 죽었는데 살아나지 못했구나 (可惜死了不得活).'
일체 망상이 다 끊어지고 잠이 들어서도 공부가 여여한 그 때는 완전히 죽은 때입니다. 죽기는 죽었는데 거기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살아나느냐?

화두를 참구 안하는
이것이 큰 병이다.

不疑言句 是爲大病

공부란 것이 잠이 깊어 들어서 일여한 거기에서도 모르는 것이고, 견성이 아니고 눈을 바로 뜬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참으로 크게 살아나야만 그것이 바로 깨친 것이고, 화두를 바로 안것이며 동시에 그것이 마음의 눈을 바로 뜬 것입니다.

 

지금까지 중국의 스님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나라 선문 중에 태고(太古)스님이 계십니다.
태고스님이 공부를 하여 20여 년 만인 40여 세에 오매일여가 되고 그 후 확철히 깨쳤습니다. 깨치고 보니 당시 고려의 큰스님네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인가(印可)해 줄 스님도 없고, 자기 공부를 알 스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임제정맥을 바로 이어 가지고 돌아온 스님입니다. 태고스님 같은 분, 이 동쪽 변방에 나신 스님이지만 그 분은 깨치고, 바로 알고, 바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스님은 항시 하시는 말씀이

점점 오매일여한 때에 이르렀어도
다만 화두하는 마음을 여의지 않음이 중요하다.

 

漸到寤寐一如時 只要話頭心不離

이 한마디에 스님의 공부가 들어있습니다. 공부를 하여 오매일여한 경계, 잠이 아무리 들어도 일여하며 8지이상 보살 경계, 거기에서도 화두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몽중일여도 안된 거기에서 화두 다 알았다고 하고 내말 한번 들어보라 하는데 이것이 가장 큰 병입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보고 아무리 좋은 약을 가지고 와서 '이 약만 먹으면 산다'하며 아무리 먹으라 해도 안먹고 죽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먹여서 살려낼 재주 없습니다.

 

배가 고파 다 죽어가는 사람보고 만반진수(滿盤珍羞)를 차려와서 '이것만 잡수시면 삽니다.'해도 안먹고 죽으니 부처님도 해볼 재주 없습니다. 아난이 30여 년을 부처님 모셨지만 아난이 자기 공부 안하는 것은 부처님도 어쩌지 못합니다.

오늘 법문을 요약하면, 불교란 것을 팔만대장경이 그토록 많지만 마음 심(心)자 한 자에 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마음의 눈만 뜨면 일체 만법을 다 알 수 있는 것이고, 삼세제불을 다 볼 수 있는 것이고, 일체법을 다 성취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바로 자성을 보는 것이고 견성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든지 노력해서 마음의 눈을 바로 떠야 되는데 그 가장 빠른 길이 화두입니다.

이 화두란 것은 잠이 깊이 들어서 일여한 경계에서도 모르는 것이고 거기에서 크게 깨쳐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다가 무슨 경계가 나서 크게 깨친 것 같아도 실제 동정에 일여하여 못하고, 몽중에 일여하지 못하고, 숙면에 일여하지 못하면 화두를 바로 안 것도 아니고, 견성도 아니고, 마음의 눈을 뜬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 근본표준이 어디 있느냐 하면 잠들어서도 일여하느냐 않느냐,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화두를 하여 잠이 푹 들어서도 크게 살아나고 크게 깨쳐서 화두를 바로 아는 사람, 마음 눈을 바로 뜬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를 가만히 생각해서 하나라도 좋고, 반쪽이라도 좋으니 실지로 마음의 눈을 바로 뜬 사람이 생겨서 부처님 혜명(慧命)을 바로 잇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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