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투는 바도 없고 나투는 주체도 없다
2009. 6. 15. 11:1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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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총석정>,지본담채, 33.8×21.2cm, 간송미술관
문수(文殊)가 각수(覺首) 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심성'(心性)은 바로 <하나>이거늘
어떻게 갖가지 차별이 있음을 보게 됩니까?』 하니,
각수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모든 법은 작용이 없고 체성도 없으며,
따라서 저 온갖 것은 저마다 서로 알지 못한다.
비유컨대, 저 강의 흐르는 물이
여울져서 물살 빠르게 흐르면서도
저마다 서로 모르듯이 모든 법도 또한 그렇다.
또한 마치 큰 불 더미가 사납게 불길 일어 동시에 타면서도
저마다 서로 모르듯이 모든 법도 또한 그렇다.
눈· 귀· 코· 혀· 몸과 마음과 뜻이며, 여러 감관이
이에 항상 유전(流轉)하면서도 이것을 <굴리는 이>(主宰)가 없다.
법성(法性)은 본래 남(生)이 없건만
나투어 보이면서 남(生)이 있나니,
이 속엔 실로 <능히 나투는(能現) 주체>가 없으며
또한 <나투는 바(所現) 물건>도 없다.
눈· 귀· 코· 혀· 몸과 마음과 뜻이며, 여러 감관이
모두가 공(空)하여 성품이 없거늘,
망령된 마음으로 ‘있다'고 분별한다.
이치대로 자세히 살펴보건대, 온갖 것 모두가 성품이 없으며
‘법안'(法眼)은 생각이나 말로는 할 수 없어
이것으로 봄(見)만이 뒤바뀜이 아니다.
진실하거나, 진실하지 않거나 망령된 것이거나,
망령된 것이 아니거나 세간이거나, 출세간이거나 간에
모두가 가정(假定)으로 언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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