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 주는 법문◈
춘성스님은 서울에 오면 조계사 대웅전에서 잠을
잤다. 그럴 때면 법당의 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서 쉬곤 하였다. 어느 날 저녁, 60살을 조금 넘은
부인이 춘성스님을 찾아와서 큰절을 하고는 말을
하였다.
"스님이 도인이라고 해서 왔습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물어도 괜찮습니까?"
"내가 도인이라고? 물을 것이 있으면 점쟁이를
찾아가야지. 도인이 무엇을 안다고 도인에게 묻
겠다는 것인가? 도인은 워낙 할 말이 없는
법이야."
그래도 찾아온 부인은 자꾸 춘성스님에게 묻고
싶다고 해서, 춘성스님은 "내말은 저녁 찬거리도
안돼, 그래도 듣고 싶으면 물어 봐" 라고 하였다.
그 부인이 털어 놓은 이야기는 고부사이의 갈등
이었다. 부인은 청상과부였는데, 외아들을 잘
키워 장가를 들인지가 1년이 다 되었는데 며느리가
미워 죽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며느리를 예
쁘게 보려고 하여도, 그러면 그럴수록 며느리의
미운 점만 생각이 나서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
이다. 그리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시어머니의
간섭을 마땅치 않게 여기니 서로 마주치면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과
떨어져 살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럴 형편도 못
되고 해서 고민을 하다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춘성스님에게 물었
다. 그러자 춘성스님은 그 부인의 얼굴 가까이
가서 조용히 말을 하였다.
"며느리가 밉다는 생각을 버리면 되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어떻게 해야 밉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춘성
스님은 답답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차고서,
"선방깨나 다닌 모양인데 헛 다녔구만" 이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법당 안의 사람들 모두가 알아
들을 수 있는 큰소리로 말을 하였다.
"며느리가 밉다, 시어머니가 밉다고 사람들은
흔히 말하지만, 며느리가 미운 것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미운 것도 아니야. 며느리가 언제
미운 짓을 했고, 시어머니가 언제 며느리를 구박
했다고 하는 기억이 미운 것이야"
그 뒤로 얼마 지나서 그 부인이 이번에는 며느리
와 함께 춘성스님을 찾아왔다. 와서 하는 말이,
집에 돌아가서 며느리에게 춘성스님에게 들은
말을 전하고,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앞으로는
섭섭한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잊기로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
다는 말을 춘성스님에게 하였다. 그러자 춘성스
님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여인에게 [반야심경]
을 평소에도 자주 독송을 하라고 권유하면서 다음
과 같은 말을 하였다.
"[반야심경]에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
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 이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과 똑같은 것이야.
봐라!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
지지도 않으며, 때가 묻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이지.
거울에 꽃이 비추면 그 거울 속에 꽃이 있는 것
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울 속에는 꽃이 없어.
그러니 꽃이 생긴 것이 아니며, 거울에 비춘 꽃이
없어졌다고 해서 꽃이 사라진 것도 아니란 말이야.
거울 속에는 생긴 것도 없고, 사라진 것도 없는
것과 같이 마음도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돼.
그와 같이 사람의 마음에 며느리를 미워하고,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생각이 비추었다, 사라졌다
할 뿐이지.
그러니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
그러나 미워해야 할 일은 잊어버리면 그만이지.
거울에 똥이 비쳤다고 해서 거울이 더러워지면,
아름다운 꽃이 비쳤다고 해서 거울이 깨끗해지
겠어? 거울은 더러워지지도, 깨끗해지지도 않아.
그것이 불구부정이다는 것을 알아야 돼.
거울에 무거운 것이 비쳤다고 해서 거울이 무거워
지고, 무거운 것을 비추지 않는다고 해서 거울이
가벼워지는가?
거울은 무거워지지도 않고 가벼워지지도 않아.
이것이 부증불감이야.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미워할 일을 비추지
않으면 미워하지 않게 되는 게야."
춘성스님은 평소에는 이렇게 말을 길게 하는 법이
별로 없었는데, 이날만은 [반야심경]을 예를 들어
마음 법문을 간곡하게 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노보살이 춘성스님을 찾아왔다. 조계사 법당으로
찾아온 보살은 기독교를 믿는 며느리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며느리가 제사도 지내려
하지 않고, 보살이 절에 가는 것도 마귀 대하듯이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춘성스님은
보살에게 며느리와 함께 교회에 나가라고 하였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보살에게 춘성스님은
자신의 말뜻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한 달쯤 열심히 며느리를 따라서 교회에 다닌
다음, 며느리에게 절에 가자고 권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따라서 교회에 다녔으니, 이번에는 며느
리가 시어머니를 따라서 절에 가는 것이 공평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춘성스님이 말을 하자, 보살은 "며느리를
따라서 교회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며느리를
데리고 절에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에
도 여러 번 절에 가자고 권해 보았으나 막무가내
였어요.설사 절에 데리고 가서 며느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라고 하였다. 그렇게 말하는 노
보살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러자 춘성스님은
그 보살에게 단호하게 말하였다.
무엇을 하기는, 참선을 시켜야지. 며느리에게
'내가 누군가'하는 생각을 하라고 해.
이것이 화두야"
춘성스님에게 이런 말을 들은 보살은 춘성스님이
시키는 대로 며느리를 따라 교회에 다녔다.
며느리는 처음에 시어머니가 자진해서 교회에 가겠
다고 따라 나섰을 때에는, 시어머니의 생각이 갑자
기 왜 바뀌었나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교회에 가는
것이 고마워서 그 이유는 캐묻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한 달 가량을 교회에 나가던 시어머니
가 하루는 절에 함께 가자고 하였다. 그러자 며느리
는 속으로 당황스럽고, 이런 속셈으로 교회에 나갔
다고 생각하니 시어머니가 밉고, 배신감까지 느껴
져서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교회를 한
달간이나 다닌 것을 생각하니, 자신도 한 달 정도
는 절에 나가주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 시어머니
보살을 따라 조계사로 오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춘성스님을 찾아왔다.
이때 춘성스님은 그 며느리에게 오직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절에 가지 않아도 좋으니 내가 누구인가를 항상
생각해. 머지 않아서 그대도 며느리를 맞아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의 나를 생각해야 돼."
춘성스님에게서 이 말을 들은 며느리는 순간적으로
앉은 자리가 꺼지는 것 같은 현기증이 일어났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과 같이, 정신이 어벙벙한
상태였다. 그 직후 며느리는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시어머니 대하기를 마귀 대하듯이 하였던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였다. 그리고는 내가 누구
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미래의
자신도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후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조계사에 있는 춘성스님을 같이 찾아와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이후 그들은 춘성스님을 따르는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김광식 지음[춘성]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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