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차별경을 설하며

2010. 1. 28. 21: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업보차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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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공양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먹는 이 밥알들은 그래도 인연을 잘 지었구나. 왜냐? 오늘부터 시작되는 천일기도 중 두 번째인 2차백일 기도 입제 날에 나와 한 몸이 되어 선업을 짓게 됐으니 인연을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쌀 한 톨이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 몸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밥알이 되어 밥상에 오를 때까지 수많은 비바람과 온갖 병충해를 견뎌내고 왔건만, 사람이 그걸 먹고 어떤 업을 짓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밥 티 한 알의 인고는 그 의미가 달라질 것입니다.


밥그릇에 담겼다가 남겨지면 쓰레기통에 들어가 버려지거나 축생의 먹이 되어 축생 몸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고 그대로 버려지고 말면 밥알이 된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말듯이, 사람의 몸을 받아 어차피 한생을 살면서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는 존재가치를 만들어가는 삶을 살 것인가, 있으나 마나한 삶을 살 것인가, 있어서는 안될 존재로 끝나버리고 말 것인가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듯, 부처님은 그것을 업이라 불렀습니다.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인데도 살아가는 복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마음 씀씀이도 모두 다르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겠습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닮은 사람은 없고 설사 비슷하다 해도 살아가는 것이 다르니 이것이 바로 불가설이라 말로 다할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욕지 전생사이면 금생수자시요. 욕지 내생사이면 금생작자시라",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면 전생에 어떤 씨를 뿌려 어떻게 농사를 지었던가를 알 수 있고, 그럼에도 지금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본다면 다음 생을 미루어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엊그제, 재혼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자신의 다섯 살배기 딸을 죽여 바다에 던져버린 인면수심이라 껍데기는 사람의 탈을 썼으되 짐승만도 못한 마음을 가진 애비라는 사람은 어찌된 일이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단순하게 악연으로만 봐야할까요?  


천지만물은 모두가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법에 의해 순행되고 있는 것이건만, 인간들만이 역행을 하고 있으니 사람 사는 꼴들이 축생보다도 못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업보차별경이라는 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경의 내용을 잘 들으시면 한 뱃속의 형제들인데도 살아가는 삶들이 왜 다르고 지금 자신의 삶 또한, 왜 이리도 험난한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업보차별경의 내용은 부처님이 수가(首迦)장자를 위해서 여러 가지 업보의 종류에 대해서 설법해주었던 말씀으로 모든 중생은 업에 묶여 있기 때문에 그 과보 또한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선악의 업에 따른 과보의 차별을 설명해주십니다.


예컨대, 수명이 짧거나 긴 경우, 병이 많거나 적은 경우, 외모가 추하거나 단정한 경우, 위세가 크거나 작은 경우 등등, 자신이 받는 모든 것은 다 전생에 쌓았던 업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모름지기 선업을 쌓아서 선한 과보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나서 수가 장자는 크게 기뻐하며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는 것이 그 줄거리입니다.


이제 업보차별경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와 같음을 내가 듣사오니 한 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기수급고독원에 계시더니, 도제야의 아들 수가 장자(首迦長者)에게 말씀하시되 내 오늘은 너를 위하여 일체 중생의 선악 업보가 각각 다른 이유를 말하리니 잘 들어 보라 하신대, 장자 즐거이 법설 듣기를 원하거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상 일체 중생들은 항상 그 짓는바 업에 얽매이고 그 업에 의지하며 또한 그 업력을 따라 이리저리 윤회하여 상 . 중 . 하의 천만 차별이 생기게 되나니 내 이제 일체 중생들의 업력을 따라 천만 차별로 과보 받는 내역을 말하리라.


부처님께서 수가에게 말씀하시되 열 가지 죄업이 있어서 중생이 단명보를 받게 되나니, 무엇이 열 가지냐 하면,

첫째는 스스로 살생을 많이 함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을 권하여 살생을 시킴이요.

세째는 살생하는 법을 찬성함이요.

네째는 살생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좋아함이요.

다섯째는 자기의 원수나 미운 사람을 죽이려는 마음을 가짐이요. 

여섯째는 자기의 원수가 죽는 것을 보고 환희심을 냄이요. (미운 놈 잘 죽었다는 식으로)

일곱째는 생명이 감겨 있는 태장(胎藏)을 파괴함이요.(임신중절이라는 유산)

여덟째는 모든 사람에게 남의 것을 함부로 훼손하고 파괴시키는 법을 가르침이요.

(기독교인들이 단군사을 파괴하고 불상에 온갖 짓을 해대는 것을 말함이지요.)

아홉째는 천사(天寺)를 세워 놓고 중생을 많이 살해함이요. 

열째는 스스로 싸움질을 잘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서로 잔해(殘害)하는 법을 가르침이니라.


또한 중생이 장명보(長命報)를 받는 것은 열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스스로 살생을 아니함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에게도 살생을 하지 않도록 권함이요.

세째는 살생 않는 법을 찬성함이요.

네째는 다른 사람이 살생 않는 것을 보고 환희심을 냄이요. 

다섯째는 곧 죽게 된 이를 보고, 방편으로써 구제하여 줌이요. 

여섯째는 죽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는 이의 마음을 안위시킴이요. 

일곱째는 공포심 많은 이를 보고 공포심이 나지 않도록 하여 줌이요.

여덟째는 모든 일에 근심과 고통이 많은 사람을 보고 자민심(慈愍心)을 일어냄이요.

아홉째는 다른 사람의 급하고 어려운 일을 보고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어냄이요.

열째는 모든 음식으로써 중생에게 보시를 많이 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다병보를 받는 것은 열 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일체 중생에게 매질하기를 좋아함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을 권하여 중생을 때리게 함이요.

세째는 때리는 법을 찬성함이요.

네째는 다른 사람의 맞는 것을 보고 좋아함이요.

다섯째는 부모의 속을 많이 태워 줌이요.

여섯째는 성인이나 현인을 많이 괴롭게 함이요.

일곱째는 원수의 병든 것을 보고 환희심을 냄이요.

여덟째는 원수의 병 나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에 좋아하지 아니함이요. 

아홉째는 원수의 병에 적당하지 않은 약을 줌이요.

열째는 과하게 먹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무병보(無病報)를 받는 것은 열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중생 매질하기를 좋아하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에게도 남을 때리지 않도록 권함이요.

세째는 때리지 않는 법을 찬성함이요.

네째는 때리지 않는 것을 보고 환희심을 냄이요.

다섯째는 자기 부모나 모든 병자에게 공양을 잘 함이요.

여섯째는 성인과 현인의 병환 나신 것을 보고 지성으로 공양함이요. 

일곱째는 원수의 병 나았다는 말을 듣고 환희심을 냄이요.

여덟째는 병으로 고생하는 이를 보고 좋은 약을 혜시하며 또한 타인에게도 이 법을 권함이요.

아홉째는 병으로 고통 받는 중생을 보고 자민심을 일어냄이요. 

열째는 음식을 절도에 맞게 먹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추루보(醜陋報)를 받는 것은 열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진심(瞋心) 내기를 좋아함이요.

둘째는 남에게 혐의와 원한을 잘 품음이요.

세째는 다른 사람을 많이 속임이요.

네째는 중생을 많이 괴롭게 함이요.

다섯째는 부모에게 애경심이 없음이요.

여섯째는 성인이나 현인에게 공경심을 내지 아니함이요.

일곱째는 선량한 사람들의 금전이나 토지를 빼앗음이요

여덟째는 부처님의 탑묘에 등촉을 일부러 꺼버림이요.

아홉째는 추루한 사람을 보고 무시하며 가볍고 천하게 여김이요. 

열째는 항상 모든 악행을 일삼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얼굴이 단정한 보(端正報)를 받는 것은 열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진심을 내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의복을 많이 혜시함이요.

세째는 부모와 존장에게 공경심을 가짐이요.

네째는 성인과 현인의 도덕을 존중히 앎이요.

다섯째는 항상 부처님의 탑이나 정사(精舍)를 잘 수리함이요. 

여섯째는 집안을 청정히 함이요.

일곱째는 수행터나 수행실에 들어다니는 길을 평평하게 잘 골라 줌이요.

여덟째는 부처님의 탑묘를 지성으로 쓸고 닦음이요.

아홉째는 추루한 이를 보고 가볍고 천하게 여기지 아니하며 공경심을 일어냄이요.

열째는 단정한 이를 보면 곧 전생의 선업으로써 그리된 줄을 알아 그에 감탄함을 마지아니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위의와 권세가 없이 되는 것(小威勢報)은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모든 중생에게 질투심을 잘 냄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의 득리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열을 냄이요.  (사촌이 논사면 배 아파하는 것)

세째는 다른 사람의 해 보는 것을 보고 마음에 좋아 함이요

네째는 다른 사람의 좋은 이름 얻는 것을 보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어냄이요. (시기와 질투)

다섯째는 다른 사람의 명예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에 좋아함이요. 

여섯째는 공부심이 물러나서 부처님을 헒이요.

일곱째는 부모에게나 모든 성현들에게 시봉심이 없음이요.

여덟째는 다른 사람에게 위의와 덕이 없이 될 일을 권함이요. 아홉째는 다른 사람의 큰 위의와 덕업 짓는 것을 방해함이요. 열째는 위의와 덕이 없는 이를 보고 가볍고 천하게 여김이니라.

 

또한 중생이 위의가 많고 권세가 있게 되는 것(大威勢報) 열 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모든 중생에게 질투심이 없음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의 이익 보는 것을 보고 환희심을 냄이요. 

세째는 다른 사람의 해 보는 것을 보고 불쌍하고 민망한 마음을 냄이요.

네째는 다른 사람의 좋은 명예 얻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좋아함이요. 

다섯째는 다른 사람의 명예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에 실로 근심이 되고 그를 동정해 줌이요.

여섯째는 보리심을 발하여 모든 부처님을 지성으로 모심이요. 

일곱째는 부모와 모든 현성들을 공경심으로써 잘 받들어 맞음이요. 

여덟째는 다른 사람에게 위의와 덕이 없이 될 일을 짓지 않도록 권유함이요.

아홉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위의가 있고 덕이 많게 될 일을 짓도록 권함이요.

열째는 위의와 덕이 없는 이를 보고 가볍고 천하게 여기지 아니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박복하고 조상덕이 없는 하천한 집에 태어나는 것(下族姓報)은 열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아버지를 잘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어머니를 잘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세째는 사문을 잘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네째는 바라문을 잘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다섯째는 모든 사우와 존장을 잘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여섯째는 모든 사장들을 반가이 맞아 공양을 잘 하지 아니함이요. 

일곱째는 모든 존장들을 보고 반가이 맞아 앉기를 청하지 아니함이요. 

여덟째는 부모의 가르치심을 잘 듣지 아니함이요.

아홉째는 모든 현성들의 가르치심을 잘 받지 아니함이요.

열째는 하천한 집에 태어난 이를 보고 경멸히 여김이니라.


또한 중생이 부귀하고 귀족의 집에 태어나는 것(上族姓報)은 열 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아버지를 잘 공경함이요.

둘째는 어머니를 잘 공경함이요.

세째는 사문을 잘 공경함이요.

네째는 바라문을 잘 공경함이요.

다섯째는 모든 존장을 공경하고 보호함이요.

여섯째는 모든 사장을 받들어 맞음이요.

일곱째는 모든 존장들을 보고 반가이 맞아 앉기를 청함이요. 

여덟째는 부모의 가르치심을 잘 받음이요.

아홉째는 모든 현성들의 가르치심을 잘 받음이요.

열째는 하천한 이를 경멸히 여기지 아니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생활이 곤란한 보(小資生報)를 받는 것은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스스로 도둑질을 잘 함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을 권하여 도둑질을 하게 함이요.

세째는 도둑질하는 법을 찬성함이요.

네째는 도둑질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좋아함이요.

다섯째는 부모의 재산을 많이 없앰이요.

여섯째는 선량한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음이요.

일곱째는 다른 사람의 득리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좋아하지 아니함이요.

여덟째는 다른 사람의 이익될 일을 일부러 방해하여 애를 많이 태워 줌이요.

아홉째는 다른 사람의 보시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즐거워하는 마음이 없음이요.

열째는 세상 사람이 흉년을 당하여 굶는 것을 보고 조금도 불쌍하고 민망한 마음이 없이 도리어 좋아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생활이 풍족한 보(多資生報)를 받는 것은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스스로 도둑질을 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에게 도둑질 말기를 권함이요.

세째는 도둑질 않는 법을 찬성함이요.

네째는 다른 사람의 도둑질 않는 것을 보고 환희심을 냄이요. 

다섯째는 부모의 재산을 없애지 아니하고 더욱 살림을 이뤄냄이요. 

여섯째는 모든 현성이나 존장들에게 보시를 많이 함이요.

일곱째는 다른 사람의 득리하는 것을 보고 환희심을 냄이요.(남 잘되는 것을 함께 기뻐해주는 것)

여덟째는 다른 사람의 이익 구하는 것을 보고 방편으로써 도와줌이요. 

아홉째는 다른 사람의 보시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좋아함이요. 

열째는 흉년이 들어 세상 사람이 굶는 것을 보고 불쌍하고 민망한 마음을 냄이니라.


또한 중생이 삿된 지혜와 삿된 도를 좋아하는 보(邪智報)를 받는 것은 열 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지혜가 나보다 승한 이에게 묻기를 좋아하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악한 법을 나타내어 말함이요.

세째는 정법을 닦지 아니함이요.

네째는 정법 아닌 것을 찬성하여 정법이라고 숭배함이요.

다섯째는 법을 아껴 말하지 않음이요.

여섯째는 삿된 지혜를 가진 사람과 친근히 함이요.

일곱째는 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을 멀리 함이요.

여덟째는 삿된 법을 찬탄함이요.

아홉째는 바른 소견을 놓아 버림이요.

열째는 우치하고 악한 사람을 보되 가볍고 천하게 여김이니라. 


또한 중생이 바른 지혜와 정당한 도를 좋아하는 보(正智報)를 받는 것은 열 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지혜가 나보다 승한 이에게 묻기를 즐거워함이요.

둘째는 선한 법을 나타내어 말함이요.

세째는 정법을 듣고 크게 보호함이요.

네째는 정법 설함을 듣고 탄복함이요.

다섯째는 참되고 바른 법을 말하기를 즐거워함이요.

여섯째는 바른 지혜가 있는 사람을 친근히 함이요.

일곱째는 정법을 잘 보호함이요.

여덟째는 부지런히 닦고 많이 들음이요.

아홉째는 삿된 소견을 가진 악한 사람을 멀리함이요.

열째는 우치하고 악한 사람을 보고 가볍고 천하게 여기지 아니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지옥보(地獄報)를 받는 것은 열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몸으로 중한 악업을 지음이요.

둘째는 입으로 중한 악업을 지음이요.

세째는 뜻으로 중한 악업을 지음이요.

네째는 천지 만물이 본래 아무것도 없다 하여 한갓 없음을 주장함이요.

다섯째는 천지 만물이 떳떳이 있다 하여 한갓 있음을 주장함이요. 

여섯째는 인과가 없다는 소견을 가짐이요.

일곱째는 구태여 선을 지으려고 애쓸 것이 없다는 소견을 가짐이요. 

여덟째는 모든 법을 볼 것도 없다는 소견을 가짐이요.

아홉째는 편벽된 소견을 가짐이요.

열째는 은혜 갚을 줄을 알지 못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축생보를 받는 것은 열 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몸으로 중등 악업을 지음이요.

둘째는 입으로 중둥 악업을 지음이요.

세째는 뜻으로 중등 악업을 지음이요.

네째는 탐심의 번뇌로 좇아 모든 악업을 일어냄이요.

다섯째는 진심의 번뇌로 좇아 모든 악업을 일어냄이요.

여섯째는 치심의 번뇌로 좇아 모든 악업을 일어냄이요.

일곱째는 중생을 훼방하고 꾸짖음이요.

여덟째는 중생을 괴롭게 하고 해롭게 함이요.

아홉째는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남에게 줌이요.

열째는 간음을 행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아귀보를 받는 것은 열 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몸으로 경한 악업을 지음이요.

둘째는 입으로 경한 악업을 지음이요.

세째는 뜻으로 경한 악업을 지음이요.

네째는 탐심을 많이 일어냄이요.

다섯째는 악한 탐심을 일어냄이요.

여섯째는 질투심을 냄이요.

일곱째는 삿된 소견을 가짐이요.

여덟째는 죽을 때에 재물에 착심을 가짐이요.

아홉째는 음식에 탐착이 많으나 병으로 인하여 오래 먹지 못하고 굶어 죽음이요.

열째는 괴로움과 핍박에 쪼들려 한을 품고 죽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아수라보를 받는 것은 열 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몸으로 미(微)한 악업을 지음이요.

둘째는 입으로 미한 악업을 지음이요.

세째는 뜻으로 미한 악업을 지음이요.

네째는 교만을 냄이요.

다섯째는 나만 못한 이를 보고 너나 내나 같다 하여 조금도 위해 주지 아니함이요.

여섯째는 얻지 못한 법을 얻었다고 하여 거만을 부림이요.

일곱째 자기와 지행이 같은 이를 보고 자기가 승한 체하며 또는 자기보다 지행이 승한 이를 보고 자기와 같다 하고 거만을 냄이요.

여덟째는 삿된 도를 행하면서 그것을 제일로 알고 다른 정도(正道)를 무시함이요.

아홉째는 자기보다 지행이 승한 이를 대하여 도리어 자기가 승한 체하고 거만을 냄이요.

열째는 모든 선근을 그릇되게 돌려서 수라보 받을 짓만 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사람으로 되는 인도에 태어나는 것(人趣報)은 열 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살생을 아니함이요.

둘째는 도둑질을 아니함이요.

세째는 간음을 아니함이요.

네째는 망어를 아니함이요.

다섯째는 속으로 불량한 마음을 품으면서 겉으로 비단 같이 꾸미는 말을 아니함이요.

여섯째는 한 입으로 두 말을 아니함이요.

일곱째는 악한 말을 아니함이요.

여덟째는 탐심을 내지 아니함이요.

아홉째는 진심을 내지 아니함이요.

열째는 삿된 소견을 가지지 아니하나 이 열가지 선업에 결루(缺漏)가 없이 다 실행은 못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욕계천에 나는 것(欲天報)은 이상에 말한 열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비록 열 가지 선을 행함이 인도에서 보다 훨씬 나으나 욕심이 아직도 남아 있음이요. 


또한 중생이 색계천에 나는 것(色天報)도 열 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열 가지 선을 행함이 욕계천보다 승하나 이에 겸하여 선정(禪定) 공부를 많이 함이요.


또한 중생이 무색계천에 나는 것(無色天報)은 네 가지 선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일체 명상을 떠나 순연히 공한 데에 의지하는 선법(禪法)을 닦음이요.

둘째는 한갓 공한 데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여 식(識)에 의지하는 선법을 닦음이요.

세째는 공과 색을 이미 잊었으면 식심(識心)도 다 잊을 것이라 하여 공과 식도 없는 데에 의지하는 선법을 닦음이요. 

네째는 생각도 아니요 생각 아님도 아닌 데에 의지하는 선법을 닦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결정보를 받는 것은 불 . 법 . 승 삼보에 대하여 신앙심과 향상심을 가지고 보시를 많이 하여 이 선업으로써 사후에 왕생할 곳을 서원하여 자기의 서원한 그대로 곧 왕생함이요.

 

중생이 언제 과보를 받을지 그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부정보(不定報)를 받는 것은 이상에 말한 결정보와 반대로 누구에게 보시도 아니하고 아무 원도 없으며 선업도 닦지 아니하여 되는대로 수생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변지보(邊地報)를 받는 것은 모든 업을 지을 때에 불 . 법 . 승 삼보를 대하여 한 번 잘해 보려는 향상심과 용맹심을 내지 아니하고 다만 약간의 보시를 행하여 이 선근 인연으로써 변지에 나기를 원하며 이 원을 곧 변지에 나서 청정한 보나 부정한 보를 받음이요.


중생이 중국보(中國報)를 받는 것은 모든 업을 지을 때에 불 . 법 . 승 삼보를 대하여 한 번 잘 해 보려는 향상심과 용맹심을 가지고 즐거이 보시하여 이 선근으로써 결정코 살기 좋은 나라에 나서 부처님을 만나 정법을 들어 무상 과보를 서원하였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한 번 지옥에 떨어져 그 수한(壽限)을 다 채우게 되는 것은 지옥에 들어갈 죄업을 짓고도 조금도 부끄러운 마음과 무서운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도리어 즐거워하며 또는 조금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이 더욱 지옥에만 들어갈 죄업을 지었음이요,

 

중생이 지옥에 떨어졌다가 수한을 절반만 채우고 나오게 되는 것은 지옥에 들어 갈 죄업을 지어 놓고 뒤에 무서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참회하였음이요.

 

중생이 지옥에 잠간 들어갔다가 곧 나오게 되는 것은 지옥에 들어갈 업을 짓고 곧 무서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이 나서 실심으로 즉시 참회하여 다시 그 죄업을 짓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시고


이어서 게를 송하시되,사람이 중한 죄업 지어 놓고도, 지은 뒤에 깊이깊이 자책을 하고, 참회하여 다시 그 업을 짓지 않으면 능히 그 근본 업을 소멸하리라.


또한 중생이 모든 악업을 짓되 그 앞에 죄가 쌓이지 않는 것은 몸으로나 입으로나 뜻으로나 모든 악업을 많이 짓고 뒤에 무서운 마음과 싫은 마음이 나서 곧 이상과 같이 참회하여 스스로 자기를 꾸짖고 다시 그 죄업을 짓지 아니하며 또는 다른 사람을 권하여 그러한 악업을 짓지 않도록 하였음이요.

 

또한 중생이 자기가 직접 죄는 짓지 아니하였으되 그 앞에 죄가 쌓이게 되는 것은 자기가 직접 죄는 짓지 아니하였으나 악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권하여 악업을 짓도록 하였음이요.

 

또한 중생이 죄를 지어 그 죄가 태산같이 쌓이게 되는 것은 스스로 많은 죄업을 짓고 조금도 참회심이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까지 권하여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요.

 

또한 중생이 죄를 짓지도 않고 받지도 않게 되는 것은 자기도 죄를 짓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 게도 악을 권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처음에는 낙을 받다가 뒤에 고를 받게 되는 것은 업을 지을 때에 다른 사람의 권유를 받아 즐거이 보시를 하였으나 그 보시하는 마음이 굳지 못하여 후회심을 내었음이요. 

 

중생이 처음에는 고를 받다가 뒤에 낙을 받게 되는 것은 업을 지을 때에 다른 사람의 권유를 받아 잠간 동안 약간의 보시를 하였으나 보시를 한 후로 환희심을 발하여 조금도 후회를 아니 하였음이요.


중생이 처음에도 고를 받고 뒤에도 고를 받게 되는 것은 선지식을 멀리하여 누구 보시하기를 권하는 이도 없는 고로 업을 지을 때에 조금도 보시를 아니 하였음이요.

 

중생이 처음에도 낙을 받고 뒤에도 낙을 받게 되는 것은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 그의 권유를 받아 굳세고 즐거운 마음으로 보시를 많이 하였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비록 가난하나 보시하기를 좋아하는 것은찌기 남에게 보시한 일이 많이 있으나 아직 그 복전을 만나지 못함이니 그 복전을 만나지 못하여 비록 가난하기는 하나 본래 보시하던 습관이 남아 있는 고로 가난하면서도 보시하기를 좋아함이요.

 

또한 중생이 부자이면서도 아끼고

탐하여 보시하기를 싫어하는 것은 일찌기 한 번도 보시한 일이 없다가 선지식을 만나 잠간 한 번 보시를 행하여 그 복전을 만남이니 그 복전을 만난 고로 비록 부자가 되었으나 본래 보시하던 습관이 적은 고로 비록 부자이면서도 그와 같이 아끼고 탐함이요.


또한 중생이 부자로서 능히 보시를 좋아하는 것은 선지식을 만나 보시업을 많이 닦아 보았음이요.

또한 중생이 가난한 이로서 아끼고 탐하여 보시할 줄을 모르는 것은 선지식을 멀리하여 누가 권하는 이도 없는 고로 능히 한 번도 보시를 행하여 보지 못하였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몸은 편하나 마음이 편하지 못한 보를 받는 것은 남에게 복은 지었으나 지혜는 닦지 아니하였음이요.

 

또한 중생이 마음은 편하나 몸이 편하지 못한 보를 받는 것은 혜는 많이 닦았으나 복은 많이 짓지 아니하였음이요.

 

또한 중생이 몸과 마음이 다 편안한 보를 받는 것은 복과 혜를 아울러 닦았음이요.

또한 중생이 몸과 마음이 다 편하지 못한 보를 받는 것은 복도 짓지 아니하고 혜도 닦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수명은 다 되었으나 업이 아직도 남아 있게 되는 것은 중생이 지옥에서 죽어가고 그 업보가 미진한 고로 도로 지옥에 나는 것이니 축생, 아귀 내지 인도,천도, 수라 보를 받을 때에도 또한 이와 같음이요.

또한 중생이 업은 다 되었으나 수명이 남아 있게 되는 것 모든 중생이 낙이 다하면 고를 받고 고가 다하면 낙을 받는 것 등이요.


중생이 업과 수명이 함께 다하게 되는 것은 중생이 지옥에서 죽어 그 업보가 다한 고로 곧 축생, 아귀 내지 인도,천도, 수라 등 세계로 옮겨감이요.

 

또한 중생이 업과 수명이 함께 영원하게 되는 것은 중생이 모든 번뇌를 다 제거하고 사과(四果) 곧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 등을 얻어 생, 로, 병, 사를 해탈하고 과보를 초월함이니라.


또한 중생이 비록 악도에는 떨어졌으나 형용이 수묘(殊妙)하고 안목이 단엄하며 몸에 광채가 있어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욕심의 번뇌로 인하여 계행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요. 


또한 중생이 악도에 타락되어 형용이 추루하고 몸이 거칠어서 사람들이 보기를 싫어하게 되는 것은 진심의 번뇌로 인하여 계행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요.


또한 중생이 악도에 떨어져 몸과 입에서 악한 냄새가 나고 육근에 결함이 많게 되는 것은 치심의 번뇌로 인하여 계행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또한 중생이 밖으로 항상 악한 경계를 당하게 되는 것(外惡報)은 열 가지 악업을 행하여 그리 되나니,

첫째는 살생을 많이 한 고로 온 땅이 짜서 곡식을 심어도 나지 않고 약초가 무력함이요.

둘째는 도둑질을 많이 한 고로 서리와 우박이 많이 내리고 해충이 많이 일어나서 흉년을 잘 당함이요.

셋째는 간음을 많이 한 고로 항상 급한 비와 독한 바람과 진애(塵埃)를 잘 만남이요.

넷째는 망어를 많이 한 고로 항상 그 몸 주위에 있는 물건에 악취를 느낌이요.

다섯째는 한 입으로 두말을 많이 한 고로 항상 그 몸 주위에 험한 언덕과 뾰족한 나무와 깊은 구렁이 많게 됨이요. 

여섯째는 악한 말을 많이 한 고로 항상 그 주위에 돌과 모래가 추하고 껄껄하여 접근할 수 없게 됨이요.

일곱째는 속으로는 불량한 마음을 품으면서 밖으로는 비단같이 꾸미는 말을 많이 한 고로 항상 그 몸 주위에 초목이 빽빽하고 가시가 많이 돋힌 수풀이 많게 됨이요.

여덟째는 탐심을 많이 낸 고로 농사를 지어도 모든 종묘나 열매가 가늘고 잘게 됨이요.

아홉째는 진심을 많이 낸 고로 항상 그 몸 주위에 있는 과실이 쓰고 떫게 됨이요.

열째는 삿된 소견을 쓴 연고로 비록 농사를 지어도 수확이 없게 됨이요.


또한 중생이 밖으로 항상 좋은 경계를 당하게 되는 것(外勝報)은 이상에 말한 열 가지 악업의 반대인 열가지 선업을 행하였음이니라.


부처님께서 설법을 마치시니 때에 수가 장자가 청정한 믿음을 발하여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말하되, 저의 부친에게도 이러한 법을 한 번 들려 주시와 저의 부친과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길이 안락하게 하옵소서, 하고 청하자,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해서 곧 그를 허락하시거늘 수가 장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환희심을 발하여 공경히 절하고 물러가니라. 하고 이렇게 경은 마무리가 됩니다.


이 경을 들으시고 이제 여러분들은 중생의 인과 연의 흐름을 살피시고 삶의 모든 장애라 여기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연유임을 알아 천일 동안의 기도를 백일씩 끊어서 하는 오늘 이 기도의 입제만이 아니라 남은 여덟 백일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한 기도가 매월 말일에는 사시기도 를 끝내고 점심공양 후, 자비참회기도가 당일 철야로 시작하여 끝내게 됩니다.


두루 동참하시여 다겁생래의 업장들을 소멸시키시기를 권청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저번 주에 한 어미의 뱃속에서 나온 같은 핏줄의 형제들이건만 살아가는 복이 다르고 인생살이가 다 다른 이유는 지은바 업보에 따른 과보가 다름이라 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업보로 인한 차별의 세계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번 주에도 전번 주에 못다 해드렸던 업보차별경의 나머지 부분을 해드리기로 했기에 오늘 법문은 그 연결된 법문입니다. 


먼저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저, 중생들이 지은바 업을 받는 시기가 나누어져 있으니 현생에 지어 현생에 받는 경우가 있고, 금생에 지어 다음 생에 받는 경우도 있고, 현생에 지어 다다음 생인 내내생에 받게 되는 업이 있으며, 언제 받게될지 모르는 업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로 이 삼시업에 대해 서두로 말씀드리고 나머지 못다 해 드렸던 업보차별의 세계를 열어드리겠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라는 신구의 삼업으로 짓게 되는 행위의 결과를 즉 보를 받게 되는 시기의 빠르고 느린 경우를 셋으로 나누어 금생에 지어 금생에 바로 받게 되는 순현업이 있고, 금생에 지어 내생에 받게 되는 순생업이 있으며, 금생에 지어 다 다음 생 이후에 받게 되는 줄여서 순후업이라는 업보가 있습니다만, 금생에 지어 언제 그 과보를 언제 받을지 모르는 부정보업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바 삶의 엎치락뒤치락은 바로 앞의 과거생의 업으로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심불급 중생이 시 삼무차별이요, 심시불이요 심시불법이라.  또 심외무법이라 마음 밖에서 다른 법을 찾지 말라 했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비롯하여 시작됨이라 했습니다.


바로 마음이 부처라면 몸은 마음부처를 모셔둔 법당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마음부처를 모셔둔 법당을 소흘하게 관리해서야 되겠습니까?


이 몸 법당을 잘 관리하는 것은 열심히 가꾸고 화장하고 보톡스 주사맞고, 쌍꺼풀 수술하고, 머리에 머리털 심기가 아닙니다. 그런 몸 법당 가꾸기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몸 법당 가꾸기는 바로 팔정도와 육바라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모방은 제 2의 창조라는 말이 있듯이 흉내라도 내보려고 할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지고 몸 법당은 제대로 가꿔지는 것이지 이마 째서 위로 잡아당긴다고 몸 법당이 가꿔지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고기 한 점을 먹어도 악한 이에게 먹히면 악한 이와 한 몸이 되어 악업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고, 수행자가 한 점을 먹게 되면 수행자와 한 몸이 되어 수행에 동참하여 선업을 짓게 될 것이니 축생은 누구와 한 몸이 되기를 원할까요. 

답은 다 아실 것입니다.

마음이 부처라면 몸은 법당이니 뭘 먹고 안 먹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먹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이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맛에 탐착하여 축생을 도살하는데 동참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는 계율을 견해에 떨어져 이건 먹고 저건 안 먹고 하는 분별심에 떨어지는 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준 원광법사는 살생유택이라 했는데 살생을 어찌 택하고 가려서 한단 말입니까?

세계기독교 국가의 대통령으로 근본기독교인인 미국의 부시는 살생유택을 하고 있을까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합법이고 일상에서 살인을 하면 죄가 됩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은 인간들이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놓은 관념의 유희일 뿐인 것입니다.


원광법사는 살생유택에서 말하기를 만약에 사냥을 한다해도 새끼 딸린 어미는 죽이지 말 것이며, 새끼를 밴 어미도 죽이지 말 것이며, 어린 것은 죽이지 말며, 한 입도 안되는 것도 죽이지 말며, 장난삼아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서산대사는 말년에 열반에 드시면서 부휴스님 등과 같은 선지식 제자들에게 당부하시길 “나와 너희는 도탄에 빠진 민초들을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왜구를 무찌르며 살생의 업을 지었도다.

우리의 뜻은 백성들을 위함이었지만, 허나, 살생은 살생이기에 너희의 법맥은 후대가 짧다. 그러므로 전란이 일어난 지도 모르고 심산유곡에서 수행만을 했던 편양언기에게 나의 법맥을 전하도록 한다.” 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인과의 흐름인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지혜를 함께하는 참 신행생활을 해나가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 만이 아니라 다겁생래에 알게 모르게 지었던 그 모든 업들로 인해 다가오는 장애들을 벗어나고 비껴가고 줄여갈 줄 아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나가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실 때, 자신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고, 주변의 가족들까지도 어딘지 모르게 일상이 달라져 가게 되고 그럼으로써 가정엔 항상 불보살님의 가피가 함께하고 그런 가족들에겐 크게 안 좋은 일은 작아지고 작은 불행은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자신들의 마음이 먼저 우러나야 만이 행해지는 마음의 조화인 것입니다.


이제 전번 주에 못다 해드렸던 업보차별경의 내용을 알기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번에 제가 말씀드렸지요.

부처님께서 탁발을 나가시는데 어떤 사람이 세존께 공양을 올리면서 말하기를 위대하신 스승님이시여! 저기에서 오는 저 교만한 바라문을 위해서 설법을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 부자의 땅을 소작하는 저희들의 삶이 좀더 괴롭힘이 작아지도록 해주소서. 하고 간청하자, 세존께서 흔쾌히 승낙하시고 걸어오는 바라문의 앞으로 가서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로 빙그레 웃자 그 바라문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버리자, 세존께서 신통력으로 왼쪽에서 그를 바라보고 웃자 반대로 돌려버립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 사람이 부처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상하 좌우로 돌릴 때마다 신통력으로 나타나자 나중에는 두 눈을 꽉 감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탄식을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무연중생 불 제도라” 인연이 없는 중생은 나도 어찌할 수가 없구나! 하셨다 듯이 무작정 가족들에게 야! 이거 봐 봐! 하지 말고 약을 잘 파셔야 되요.

당부 드리는데 가족들을 부처님과 무연중생으로 만들지 마세요.

아마,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 바라문과 한 치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업보차별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의 몸을 받아 어차피 한생을 살면서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는 존재가치를 만들어가는 삶을 살 것인가, 있으나 마나한 삶을 살 것인가, 있어서는 안 될 존재로 끝나버리고 말 것인가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듯, 부처님은 그것을 업이라 불렀습니다.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인데도 살아가는 복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마음 씀씀이도 모두 다르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겠습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닮은 사람은 없고 설사 비슷하다 해도 살아가는 것이 다르니 이것이 바로 불가설이라 말로 다할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욕지 전생사이면 금생수자시요, 욕지 내생사이면 금생 작자시라, 욕지 노년사이면 초년작자시라 하듯이,” 자신의 지금 살아가는 생활을 보면 전생에 어떤 인과 연의 씨를 어떻게 뿌려 어떤 농사를 지었던가를 알 수 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금 삶의 자세를 보면 죽어 다음 생을 알 수 있고 초년을 보면 자신의 늙어 노후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이 경을 들으신 여러분들은 중생들의 삶의 인과 연의 흐름을 살피시고 살아가는데 있어 모든 장애라 여겨지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연유임을 알아 천일 동안의 기도를 백일씩 끊어서 하는 오늘 이 기도의 입제만이 아니라 남은 여덟 백일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한 기도가 매월 말일에는 사시기도를 끝내고 점심공양 후, 자비참회기도가 당일 철야로 시작하여 끝내게 됩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라 한 생각만 바꾸면 천하의 효자도 되고 어진 사람도 될 수 있고 한 생각 그릇되면 온갖 죄를 짓게 될 것이니 일상생활에 자신의 생각을 매사에 지극히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길들이기 시작하면 주변의 환경과 인연들이 달라 보이는 법이니 “자작자수”라 결국에는 내 주변의 이 모든 꼬이고 맺힌 일들이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고 있는 것임을 여실히 알아들으시길 바라두루 동참하시여 다겁생래의 업장들을 소멸시키시어 남겨진 여생을 마음 부자로 살아가시기를 권청합니다.


성불하십시오.

뉴질랜드 최대의 국립공원 - 밀퍼드사운드
 

> 공중에서 바라본 밀퍼드사운드


사운드(sound)란 좁은 해협, 작은 만(灣)을 말함.
밀퍼드사운드 (Milford Sound)
남섬의 남서부 해안에 발달한 피오르드랜드는 빙하의 침식으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계곡과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지는 뉴질랜드
최대의 국립공원이다. 여기에 밀퍼드사운드가 있다.
피오르드(Fiord)는 제4기의 빙기(氷期)에 해안에서 발달한 빙하가
깊은 빙식곡(氷蝕谷)을 만들었고, 간빙기(間氷期)에 빙하가 소멸한
다음, 그곳에 바닷물이 침입하였다가 해면이 다시 상승하여 형성된다.
노르웨이·그린란드·알래스카·칠레 등의 해안에 널리 발달되어 있다.
 
 
 
밀퍼드사운드의 일기는 예측불가다.
이 지역 강우량은 가장 많을 때는 무려 6,240mm.
 
피오르드는 어떤 일기에도 기념비적인 스텍타클을 제공한다.
 
 
밀퍼드사운드에서의 여행은 300명 정원의 ''Lady of The Sound''의
 
유람선으로 항해없이는 완전한 여행이라 할 수 없다.
 
 
밀퍼드사운드의 상징이랄 수 있는 마이터봉(Mitre Peak)(1,695m)
 
 
 
호화유람선 ''Milford Monark''
 
 
밀퍼드사운드는 대빙하기((a great ice-age)에 만들어졌다.
 
 
아스피링국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와나카 호수(Lake Wanaka)
 
 
밀퍼드사운드로 가는 길에 있는 이 조그만 호수는 마치 거울과 같다 .
그래서 이 호수를 거울호수(Lake Mirror)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매이드슨 호수로부터 타스만산(M.t Tasman )과 쿠크산(M.t Cook)
 
 
아후리리강(Ahuriri river)
 
 
말보로사운드(Marlbrough Sound)
 
 
아스피링국립공원의 촛점인 아스피링산(Mt. Aspring)/3,027m
 
 
남알프스,마운틴 쿡(3,754m)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 마운틴 쿡(3,754m)
 
 
마운트 루와페후/활화산
 
 
마운트 루와페후/활화산
 
 
마운트 루와페후/활화산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뉴질랜드에서 3번째로 큰 호수)와
퀸스타운(Queenstown)가까운 거리에 보이는 산은 레인지 산(Mt. Range/2343m)
 
 
곤돌라를 타고 446m에 위치한 ''스카이라인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호수와 퀸스타운은 가히 환상적인 장관이다.
 
 
꿈의 휴양도시 퀸스타운
 
 
양의 새끼와 그 어미
 
 
양 새끼와 수선화
 
 
뉴질랜드에서는 도로상에서 양떼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배경의 산은 마운틴 쿡
 
 
양 목장
 
 
뉴질랜드는 6천만 마리의 양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세계적인 양질의 고기와 양털을 제공한다.
 
 
푸른 초원과 목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
 
 
카이코루아산(Kaikoura Mountains)의 파스텔화 같은 풍경
 
 
센추럴오타고(Central Otago)에 있는 잔잔하고 조용한 호수
 
 
작은 도시 오마라마(Omarama) 풍경 우측: 유명한 찰흙 벼랑,
위:아후리리 강(Ahurri river), 하단: 아후리강 지류
 
 
19세기 건물이 있는 애러타운(Arrowtown)의 주거리(main street). 가을 오후 풍경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등급될 수 있는,
완전한 그림같은 매이드슨 호수(Lake Matheson)
 
 

마포리카 호수(Lake Mapourika). 가까운 거리에 남(南)알프스가 있다.

 

매이드슨 호수의 안개낀 아침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