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이다

2010. 7. 22. 21: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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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이다 

 

 

 

월호 스님

 

 

 

칠 전에는 부산에 사시는 거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글을

아주 잘 읽고 있다는 말씀과 함께 의문 나는 점이 있다고 했다. 그 내용을 알아본 즉, 일전에 참선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가운데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 反聞聞性’는 말이 있었는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불자님같은 경우는 글을 진지하게 읽어본 것이다.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는 말을 건성으로 듣고 지나친 것이 아니라, 자꾸 생각해본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전화하게 된 것이다. 축하할 일이다. 이제 참선의 첫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그 의미를 온몸으로 체득할 때까지 자꾸 의심해 나가고 의심해 나갈 일이다.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돌이켜 듣는다고?”

 

“?”

 

이처럼 이해가 가지 않아야 비로소 화두로서의 생명이 있다. 머리로 이해가 되어 버리면 살아있는 화두가 아니다. 살아있는 화두 즉 활구活句라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아야 한다. 몰라야 하는 것이다. 몰라야 의심이 생기고 그 의심을 똘돌 뭉쳐 나가다 보면 의단이 형성되어 마침내 온갖 번뇌망상이 그 의심덩어리 속에서 녹아 나가는 것이다. 시뻘건 용광로 위에 눈이 녹아 내라듯이.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아’고 외치고 다녔다. 이를 듣던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 자신을 압니까?”

 

소크라테스는 대답했다.

 

“나도 모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어이가 없어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나 우리나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이에 소크라테스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들은 스스로를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나 자신을 모른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모른다고 분명히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앎의 첫걸음이 아닐까?

 

 

 

                    知之爲知之요 不知爲不知가 是知也니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논어 학이편

 

 

 

- 휴식 / 해들누리 -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

     
     
    성재 서상민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이체...
    지식은
    용기를 만든다고
    말한 소크라테스...

    성인들의 말씀에서
    얻은 이익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신을 만들어내고 일심으로 기도한다.
    지식을 배우고
    용기를 생산한다.

    알음알이의 겉치레로
    포장하는 말쏨씨로는
    일시적인 빛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멋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의 노력이지만
    속은 알멩이 없이 텅 비어놓는 모자람뿐이다.

    사랑은  곡물을 창고에
    가득 채우는 일을 하고
    영원하고 지속적으로 포옹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을 확인하려는 속셈으로
    고통 주는 일은
    잔인한 행위임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이는
    순수하고
    깨끗하다.

    순수를 부수는 행위는
    전쟁의 침략자와 같이 잔인하고
    깨끗한 정도를
    짓밟는 행위는 강도와 같은 행위를 하는 셈이다.

    사랑받는 이는
    부족하고
    모자람이 많다.

    사랑을 받기만 한  까닭에서
    오만가지의 오판이 나오고
    자포만으로 결국 자신을 잃고 만다.

    사랑을 사랑한 사람은
    잃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사랑을 나누어 주려는 이는
    처음부터 아무런 바램이 없었던 탓에
    계속해서 생산되는 과실이
    사링이 되는 셈이다.

    사랑을 주려는 이는
    하루를 넉넉함으로 채우려 하지만
    사람을 받려는 이는
    늘 채워지지 않는 빈 깡통에서 쏟아내는 불평불만으로
    꺽이지 않는 고집을 날까롭게 세운다.

    사랑을 사랑한 사람은
    사랑의 씨앗을
    온 세상에 심는 일에 대해서
    오늘도 게을리 하지 않고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