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두 장 ! 누가 쓴 대본인가?

2012. 4. 6. 20:3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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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두 장 !” 누가 쓴 대본인가?

 

 

불자여러분

새로운 달이 또 시작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신세한탄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닫지 못한 사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체가 고통이라 하셨습니다.

생노병사가 고통이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는 고통

이 세상 살아가는 자체가 고통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인생의 8가지 고통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갈애와 집착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갈애와 집착을 놓아 버리면 고통이 없는 행복한 상태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갈애와 집착을 놓아 버리는 순간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 태국의 훌륭한 고승인 아잔브라흐마가 지은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속에 나오는 ‘벽돌 두장’이란 이야기입니다.

 

   젊은 시절 가난한 스님인 아잔브라흐마는 스님들이 거처할 절을 손수 짓습니다.

그래서 벽돌 쌓는 기술을 먼저 익힌 후 한 장 한 장을 정성을 다해 벽돌을 쌓아가다 보니 어느 듯 벽면이 완성되었습니다. 스스로 감탄하여 그 벽을 바라보는 데 중간에 있는 벽돌 두 장이 어긋나게 놓여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그 2장의 벽돌을 쳐다보는 순간 벽전체가 엉망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시멘트가 굳어버려 도로 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벽을 헐어버리고 다시 짓고 싶은 생각이 들어 주지 스님에게 그 내용을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주지스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으며 벽돌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 절을 완성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절을 방문하게 되면 그 스님은 벽돌 2장이 신경이 쓰여 괴로웠습니다. 벽돌 2장을 자기가 스스로 막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방문객이 절 안을 거닐다가 하필이면 그 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무심코 한 마디 하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벽이군요!”라는 말을 하자 그 스님은

놀라서 “선생, 혹시 안경을 차에 두고 오셨나요? 아니면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가요? 벽전체를 망쳐 놓은 저 잘못된 벽돌 두 장 보이지 않나요?”라고 말하자 그러자 그 남자가

물론 내 눈에도 잘못 얹힌 두 장의 벽돌이 보입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더없이 훌륭한 998개의 벽돌들도 동시에 보입니다.”말했습니다.

 

  그 순간 아잔브라흐마 스님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벽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잘 못되었음을 여실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스님은 많은 정신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부분이 아닌 전체의 시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늘 두 개의 잘못된 벽돌이 눈에 들어와 그 벽을 바라보기만 해도 폭파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훌륭하게 쌓아올린 다른 벽돌을 함께 바라볼 수 있으니 그 벽은 흉한 벽이 아니라 아름다운 벽으로 변해보였습니다.

 

◇ 그렇습니다.

  아잔브라하마는 ‘2장의 벽돌이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에 집착하여 나머지 99%의 잘된 벽돌을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슬프게도 잘못된 2장의 벽돌을 바라보며 자신을 비하하거나 상대를 무시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보다 아내의 잘못된 부분이 눈에 들오옵니다. 아내는 남편의 잘못된 부분만 크게 확대되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서로 상대의 허점을 비난하고 골몰하다가 결국 이혼이란 파탄의 길로 들어갑니다.

 

  며칠 전 한 여성 불자가 부부사이가 나빠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폭언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리고 직장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사이가 나쁘세요?”라고 묻자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스님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답답해요. 그리고 나를 많이 의심을 하고

나를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삶에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위 벽돌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여성 불자는 그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듣고

“스님, 저도 남편의 좋은 점을 찾아보아야겠어요.

 

이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더 해주었습니다.

 

누가 쓴 대본에 따라서 울고, 웃고, 좋아하고 싫어할까요?

누가 쓴 대본에 따라서 날마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하고 불행해 할까요?

그 대본을 하느님이 쓸까요? 부처님이 쓸까요?

아니면 운명이 쓸까요?

부모인가요? 이 세상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대본은 우리 자신의 마음이 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쓴 대본에 따라

우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즐거워하고 불만족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이 모두가 자신의 마음이 쓴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자 그 여성 불자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 잘 알았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기쁜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자여러분

이제 우리는 잘못 얹힌 2장의 벽돌에 초점을 맞추어 괴로워하지 말고

더 없이 훌륭하게 쌓여진 998장의 벽돌에 찬사와 관심을 돌립시다.

 

 

이렇게 부정적인 집착에서 벗어나면

세상만사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시비의 마음이 사라지고 모두를 포용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땅을 딛고 살아갑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두 한 가족이요, 한 몸과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우주 끝까지 펼쳐나가면

모두가 한 뿌리요, 한 형제입니다.

그 곳에는 나라고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또한 인연 따라 모였다가 사라지는 허깨비와 같은

우리 인생조차도 의미 있게 됩니다.

 

부처님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사성제인 고집멸도는

먼저 고(苦=괴로움)라는 현상을 인정합니다.

그 다음 그 고(苦)의 원인이 갈애와 집착에 있음을 깨우치면 됩니다.

그래서 갈애와 집착에서 벗어나면 고통이 사라지고 마음의 행복이 가득합니다.

 

이제 그 고(苦)를 벗어나기 위해 갈애와 집착을 벗어나는 길을 가면 됩니다.

그 구체적인 수행이 팔정도 등 불도를 닦는 길입니다.

 

 

독경이나 염불이나 위빠사나 명상이나 화두선인 참선이나 절 수련이나 진언도

궁극에는 번뇌를 벗어나기 위한 훌륭한 수행인 것입니다.

 

다만 이 모든 수행이 결국 자신의 순간순간 마음을 바로 알아차림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고의 원인이 되는 갈애와 집착이라는 번뇌가 마음속에서 일어남을 주시하고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그들이 사라짐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지혜라는 바른 생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의 지혜로운 마음으로 쓴 대본에 따라

걸림 없고 자유로운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어느 날 마당에서 토끼에게 풀을 먹이던 아이가 물었습니다 .

 

"엄마,토끼는 어디를 잡아야 꼼짝 못 하지요 ?"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

 

"그야 귀를 잡으면 되지."

 

그 때 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를 지나갔습니다 .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그러면 고양이는 어디를 잡아야지요?"

 

"목덜미를 잡으면 되지."

 

이번에는 어머니가 물엇습니다 .

 

"그러면 사람은 어디를 잡아야겠니?"

 

"목덜미를요,아니 ,팔을요 ,아니어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답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

 

이제 아이는 자라서 엄마 나이만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

 

사람은 목덜미를 잡을 수도 ,팔을 잡을 수도 없고

 

오직 마음을 잡아야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가 왜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도 깨달았습니다 .

 

 

 

 

- 손광성/수필가

 

 

 

여기에 의지(依支)할 뿐이다 .

 

 

 

 

옛날 전염병이든 사람이 있었는데

 

살이 썩어 문드러져 심한 악취가 나 그냄새를

 

맡은 사람은 코를 싸 쥘 정도 였습니다.

 

 

 

성품이 인자한 스님이 있어 그를 위해 핖요한

 

것들을 갖다 주면서 항상 보통사람 대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

 

 

 

때때로 같은 그릇에 음식을 먹고 옷을 기워주고

 

빨래도 해 주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여겨 " 그 사람을 평범하게

 

대할수 있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향기와 악취는 마음으로 싫어하고 좋다하는 것이다

 

내 어찌 마음을 둘로 나누겠는가? "

 

여기에 의지할 뿐이다 .

 

 

 

 

-취문 승행록에서-

 

 

 

 

 

안으로 깊어지는 것들

 

 

 

 

골짜기의 물은 몸 낮추어 아래로 흐르면서

 

강물과 하나 되어 바다로 흘러들고

 

안으로 더욱 깊어져 소리없이 흐릅니다 .

 

 

 

잎새들을 미련 없이 떠나보내는 겨울나무들은

 

새순을 튀우기 위해 낙엽을 발아래 묶혀 두고

 

안으로 단단한 속살을 채워 갑니다 .

 

 

 

멀고 험한 길을 달려 온 사람은

 

아픈 고난의 시간 위에 스스로 뿌리를 내려

 

안으로 겸허함이 깃든 나무 한그루 키워 갑니다 .

 

 

 

 

- 문윤정/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