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깨치면 부처

2014. 4. 23. 17:5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728x90

 

 

 

한마음 깨치면 부처

 

師謂休曰 諸佛與一切眾生唯是一心이오 更無別法이니라

사위휴왈 제불여일절중생 유시일심 경무별법

 

此心無始已來不曾生不曾滅하며 不青不黃하며 無形無相하며

차심 무시이래 불증생불증멸 불청불황 무형무상

 

不屬有無하며 不計新舊하며 非長非短하며 非大非小하며

불속유무 불계신구 비장비단 비대비소

 

超過一切限量名言縱跡對待하야 當體便是

초과일절한량명언종적대대 당체편시

 

動念即乖猶如虛空하야 無有邊際하며 不可測度니라

동념즉괴 유여허공 무유변제 불가측도

 

唯此一心即是佛이니 佛與眾生更無別異어늘

유차일심 즉시불 불여중생 경무별이

但是眾生著相外求하야 求之轉失이로다

단시중생 저상외구 구지전실

 

-------

황벽(黃檗: ?-850) 대사께서 배휴(裵休:797-870)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와 일체 중생들이 오직 한마음이니 다시 별다른 법이 없다.

이 마음은 비롯함이 없는 때부터 생기지도 아니하고 멸하지도 아니하며,

푸르지도 누르지도 않고,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있고 없음에 속하지도 않는다.

옛것이니 새것이니 헤아릴 수도 없고,

길다고 할 수도 없고 짧다고 할 수도 없으며,

크다거나 작다거나 할 수도 없다.

일체의 한계와 분량과 이름이나 언어나 자취, 상대를 넘어 있어

그 몸 그대로 일뿐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움직이면 바로 어긋나 버린다.

 

마치 허공과 같아 끝이 없어서 측량할 수가 없다

오직 이 일심이 바로 부처이며 부처와 중생이 서로 다름이 없다.

 

중생은 다만 모양에 집착하여 바깥에서 구하니 구하려 한 즉, 도리어 잃어버린다.

 

  ------------------------------

 

使佛覓佛하며 將心捉心하면 窮劫盡形하야도 終不能得이라

사불멱불 장심착심 궁겁진형 종불능득

不知息念忘慮하면 佛自現前이로다 此心即是佛이며

불지식념망려 불자현전 차심 즉시불

佛即是眾生이니 為眾生時此心不減하며 為諸佛時此心

불즉시중생 위중생시 차심 불감 위제불시 차심

不添하며 乃至六度萬行河沙功德本自具足하야 不假修添이라

불첨 내지륙도만행 사공덕 본자구족 불가수첨

 

--------------

 

부처로서 부처를 찾으려 하고 마음으로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겁이 다하도록 끝내 얻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쉬고 생각을 잊어버리면 부처가 자연히 앞에 나타나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 마음이 바로 부처요, 부처가 바로 중생이다.

중생일 때에도 이 마음은 멸하지 않고 부처일 때에도 역시 이 마음이 더하지 않는다.

그리고 육도만행과 강가의 모래와 같은 공덕을 이 마음은 스스로 갖추고 있으니

닦아서 보탤 것도 없다.

 

 

- 완릉록에서

 

 

"영혼이 떠나야 자연으로 돌아간다"

 

-  반도의 계절풍 2

 

 

사람이라는 어원이 "삶"과 "앎" 이라고 하지요  일상을 살면서 아는 것이 많아야 지혜롭고

편안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내용 같습니다만 부자로 사는 것은 지식과는 관계가 없지만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학문을 많이해서 지식을 쌓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명예를 얻으면 권력과 재력이 함께하기에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독려를 하지요

 

예나 지금이나 공부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금언은

가시나무를 쌓아 놓은 위에 자고 문을 들락거릴 때마다 곰의 쓸개를 혀로 핥았다고 합니다

요즘은 구하기 힘든 웅담이지만 입에 대기만 해도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쓰지만 쓴맛이 금방

가시지도 않지요  그래서 화장실을 가는 시간도 줄여가면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두가지 모두가 잠을 ?기 위해서 했는 고육지책이지만 인간의 생각이란 쉽고 편한 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자신을 제어하기란 이렇게 어려운가 봅니다  인간의 욕심중에서 배움에 대한

욕심은 마음껏 가져도 몸에 해가 안되는 것이 명예욕이나 물욕과 다른 것이지요

 

문제는 지식을 담는 그릇이 문제가 되지요 가정교육이 반듯하게 되어 있는 사람은 많은

지식을 담으면 빛나는 인물이 되지만 가슴에 한이 맺힌 사람은 지식이 좋은 쪽으로 쓰이질 않습니다 

실화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임진왜란때 이야기로 아비를 왜병의 칼에 비참하게

살해를 당한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가슴에 천추의 원한을 품었지요

 

유명하다는 도검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수년을 보낸 아들이 지리산 모처에 보검을 만드는 장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수제자가 되겠다고 허락을 받고 오로지 머릿속엔

복수의 날만 기다리는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모든 것을 다 배웠는데 마지막 담금질을 하는 물의

온도는 스승이 절대로 가르쳐주질 않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비법이였는가 봅니다

 

어느날 죽기를 각오하고 칼을 담글때  얼른 손을 담궜습니다 그랬더니 스승이 순식간에 팔을

내리쳐서 왼쪽팔을 잃은채로 움켜쥐고 한없이 도망을 쳤습니다  몇년 뒤에 일월산 기슭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 올랐지요  이 아들이 쇠뭉치를 두들기고 또 두드려서 마지막 작업으로 

보검을 숫돌에 갈고 있었습니다 햇볕에 번쩍이는 섬광은 서리같은 복수의 한이 그대로 서려

있었지요

 

창호지를 물에 적셔서 칼날에 올려 놓으니 소리도 없이 갈라집니다  아들은 미소를 지으며

칼을 문에 기대놓고 손을 닦고 있는데 바람이 불면서 칼이 등쪽으로 쓰러지면서 그 자리에서

한도 풀지 못한 아들이 세상을 떠났지요  이 마검이 임진왜란때 왜병의 손에 들어가서 엄청난

사람을 죽였습니다  누구나 이 칼을 뽑으면 베고 싶은 욕망에 눈이 뒤집어 진답니다

 

물론 이 왜병도 이 칼에 죽었고 보검이 아니라 마검으로 인정이 되어서 중국의 어느 부자가

칼을 보더니만 이것은 위험한 검이니 세상에 나오면 안된다고 비싼 값에 사서 자기집 지하실에

감춰 두었는데 또 다시 일본 헌병이 이것을 소장하면서 중국인도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고 합니다

인간을 동양이지(同樣異志)라고 생긴 모양은 같지만 저마다 생각은 다르지요

 

이렇듯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칼이지만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 보검이나 마검이 되듯이 인간의

영혼은 끝없이 변화를 거듭하기에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엔 자연과 함께하기는 거리가 멀고 삶을

마감할 시기가 되면 누구나 천사처럼 변합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도 우리는 돌아서면

어제와 똑같은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결코 자연이 되기엔 부족한 마음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