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리 /청화큰스님

2015. 1. 24. 19:1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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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여든일곱 번째 봄, 어느 날에..

보통 늦게 잠자리에 드는 편이지만
새벽 출근하는 딸아이, 아침을 먹여 보내기 위해
일찍 일어난 아내가 주방에서 일하는 소리도 들리고
더 먹어라, 밥 맛 없다, 입씨름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여섯시 반, 딸아이 출근하고 집 안이 조용해지면
나는 설픗 잠이들어 늦잠에 빠지고 말지요.



"어머니, 진지 잡수세요."
아침 밥상을 들이는 아내 목소리에 잠이 깨어
시계를 확인하고 부스스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옷 입고 어머니 아침 잡수시는 안방에 들어갑니다.
두레반 앞에 쪼그려 앉으며 아침 인사를 드리고
잡숫는 죽 그릇과 저 염식 반찬들을 바라보지요.
"어머니, 조기가 맛 있어요?"
그새 가시만 남은 조기 찜을 보며 여쭙니다.
"맛은 뭐...상에 있으니까 그냥 먹는 거지..."
이년 전, 심장마비로 쓰러지신 뒤로 언제나
소금기 없어 맛 없는 죽과 반찬을 드셔야 하지요.



출근 준비를 하고 안방에 인사를 드리려는데
웬 일로 거실에 나와 계신 어머니가 부르십니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어머니..."
"좀 전에 네가 물었잖아. 조기가 맛 있느냐고...
에미가 정성 껏 해 준 반찬인데 맛 있다고 할 걸...
생각해 보니, 내가 말을 잘 못 한 것 같어서..."
아침 잡수시며 내내 그 생각 만 하셨나 봅니다.

"말씀을 잘 못 하시긴요. 참 어머니도.. 허허허...

자식 앞에서 하실 말 못 하실 말이 어디 있어요."

"어머니, 싱거우니 당연히 맛이 없지요. 호호호.."

우리 부부, 뜻 밖의 말씀에 깜짝 놀랐지만 우선은
밝은 웃음으로 어머니 걱정을 날려 드려야 했습니다.
"맛은 없지만 언제나 잘 잡수셔서 얼마나 좋은데요.
병 나으시면 진짜 맛있게 만들어 드리께요. 어머니..."
이어진 아내 말에 겨우 표정이 밝아지셨습니다.



원래 내성적이시고 소심하신 분이긴 하지만
육 남매 키우실 땐 태산 같으셨던 우리 어머니,
이젠 몸에 병이 깊어 마음까지 약해지신 것인지

사소한 일에도 괜한 걱정을 하시며 속을 태우시고
몇 년 사이 더욱 왜소해지신 것 같아 안쓰러운데
자식 눈치까지 보시는 듯한 그 날 어머니 말씀에
종일 마음이 무거워 일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 곁을 지켜 주실지 모르지만
떠나신 뒤, 두고두고 가슴 저릴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우리 어머니의 여든 일곱 번째 봄이
아카시아 향기를 남기고 이제 떠나는 듯 합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왔던 몇 번의 봄 나들이 길,

어쩌면 어머니의 마지막 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 처럼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며 아쉬워했었는데

부디, 어머니의 여든 여덟 번째 봄에도

어머니 애창곡인 봄날은 간다 노래를 들으며
꽃 구경 시켜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 분홍 치이마가 봄 바아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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