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락 ( 苦樂 )의 원인 / 서경보 스님

2015. 8. 1. 20:2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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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 ( 苦樂 )의 원인 / 서경보 스님

 

도데체 우리 인생의 고락희비의 모든 원인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

이것을 추구해 보면 옛날부터 4가지의 사고방식이 있으니,

그 4 가지란 숙명설 , 천의설, 무인설, 인연설, 인데, 석가세존 께서는

이 4가지 가운데 앞의 3가지는 틀린 것이라 보고 제 4의 인연설을 취하셨다.

그 제1의 숙명설이란 ,오늘의 우리들의 경우와 미래의 일체 사건이

다 이미 정해져있어서 인간으로는 어떻게 할수가 없다는 설이다.,

이것은 세간에서 보통 이르는 운명론과 같은 것이다.

또 극단으로 말하면 업보론 이란 것이 있는데 이 이것은 어떤 일이나

이미 선천적으로 정해져서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어떻게 할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운명을 따르는수 밖에

별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들도 말하길 

" 만사가 이미 정해진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공연히 서두르고 있다 " 고도 한것이다.

제 2의 천의설이란 것은 곧 신의설 (神意設)이라고 해도 틀히지 않은 말이다

천天은 인도에서는 신이라고 하여 범신 梵神 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받은바 업보가 원래 신의 듯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설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고락상은 모두가 신의 듯이며

따라서 우리 인간은 신의 의사에 절대 복종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제3의 무인설 (無因設)이란 것은 우연설 (偶然設)과도 같은 것인데.

오늘날 모든 인간들이 경험하는 고락상은 그 어떤 원인이 있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생한데 불과 하다는 것이다.

고통을 당하는 것도 우연이요, 즐거운 일을 보는 것도 우연히 발생된 것이라

거기엔 무슨 깊은 뜻이 있지않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해도 무방하다는 사고방식이 파생되게 된다.

석가세존께서는 제1,제2,제3 의 설을 배격하셨그리고 제4의 인연설을 택하셨다

이 경우 인간각자의 주변에서 일어난 고락상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으로서

자기가 짊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책임론적 입장에서 허용될 타당성은 있다.

그러나 그 업론도 끝내는 운명론 과 같은 것이라 인간생활의 귀한 의미를 죽이는

결점이 있다.그리고 제2의 천의설은 근거가 없는 가정설이기 때문에 취할수

없는 것이다.제3의 무인설 또한 우연설 이기 때문에 위험한 사상이다.

이 우연설은 마치 하천 어귀에 그물을 치고 한마리도 남기지 않고 고기를 잡아버리는

어부와 같아서 인류에게 큰 재앙을 주는 것이라고 배척 하셨다.

위에든 3설은 다 인간의 자유의징화 도덕적 정신을 부정하고 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없는 이론 이기때문에 석가세존께서는 취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제4의 인연설은 어떠한가? 우리들 인간의 주변에 일어나는 고락상은

인간 스스로가 뿌려놓은 종자의 열매를 수확하는 것으로서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에게 있다.그러나 우리들은 그 경우와 환경을 변모시켜 갈수있으며,

악을 버리고 선으로 나아가는 이상을 세워서 전진하는 자유의지를 갖추고 있다.

현재의 생활고를 뼈져리게 각성해서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분발심으로 이상의

등불을 들고 전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생활의 요체와 가치는 주어진 환경을

변개變改 하려는 굳은 의지로 모든 악조건을 뚫고 나가는데 있다.

이리하여 이 말세적인 현실로 부터 도덕적 이상생활로 전진할 수가 있다.

.이것이 곧 속가세존이 취하신 제4의 인연설 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고락苦樂 이 모두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보시고

인연설을 주장하시고 제법 (諸法 )이 종연생 (從緣生)하고 제법(諸法 )이

종연결 (從緣결)함을 강조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인연설에 대하여 3가지로 나누어 말씀하시길 ,

""우리인생의 고락경험은 주관과 객관 과의 접촉에 의해 일어난 것'"" 이라고 하셨다 .

이것은 불교적인 술어로 말하면 근 (根 / 감각) ,경 (境 /객관 ) ,

식 (識 / 주관의 心 )의 3가지가 결합 하여 촉 (觸 / 감각 ) 을 내고,

이 촉으로 부터 수 (受/ 감정 ,경험 ) 가 생기고 그 뒤에 비로소 식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고락상 경험은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할수가 있다.

이 인연설은 우리 인간의 경험을 심리적으로 보고 그 인식 방편으로 부터

이름을 지은 것인데 그 내용을 말할것 같으면 ,

우리 고락의 경험이 심리상태에 의해 변해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

예를 들면 금전에 대한 집착이 없다면 잃어버리거나 얻어지거나

전연 문제 될것이 없다.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에 깊은 집착이 있기 때문에

잃어버리면 고통이 되고 얻어지면 즐거움이 되게 마련 이다.

다 같은 사람이라도 욕심이 없어서 명예도 필요없고,돈도 필요없고,목숨 까지도

아낄것이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사용 할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조건으로도 그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마음을 좌지우지 할수 없는 까닭이다.

다만 그 사람에게는 도덕과 의리와 공정 ( 公正)이 그 마음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권세나 금전이나 주색의 유혹으로는 그 사람을 도저히 건드려 볼수가 없다.

옛날에 어떤 스님은 영상 으로부터 금으로 만든 진금불(황금부처님 )을 받았다.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 부처님은 스님에게 소용이지 속인에게는 필요없으니

받으십시요"함으로 중으로서 부처를 싫다고 할수가 없어서 받았다.

받기는 하였지만 진금불 이기때문에 고통거리 였다.그 내용을 아는자가 있다면

기어이 훔쳐갈것이 틀림없기때문이다. 또 그런것이 발설된다면 그 영상에게도

중으로서 부처 하나도 잘간수하지 못하고 잃었다는 책망을 들을 것이 뻔한 일이다

.그 스님은 감사하다고 절을 하고 부처님을 받고 나와서는 그 집 상노 아이에게

진금불을 다시 돌려주면서 " 흙불상이나 나무불상이나 쇠불상 같으면 모실 수가 있지만 ,

금불상은 아직 인연이 먼 까닭으로 도로 받치오니 다시 권승( 權僧 )이나

부승( 富僧) 을 만나거든 전하시오" 라는 쪽지를 남기고 가버렸다고 한다.

또 옛날 희랍의 어떤 철인은 의복을 남루하게 입고 큰 통 하나를 굴리고 다니면서

그 속에서 자고 쉬고 기거를 하였는데 .알랙산더 대왕이 그를 성자로 보고 특별한

예유를 하려고 찾아가 " 소원이 무엇이냐?' 고 물었더니

""나는 아무 소원이 없으며 ,대왕이 속히 물러가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비치는

햇볕을 가리시기 때문에 추우니까요" 하고 대왕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

" 집착이 없는 곳에는 고락도 없고,생사도 없다, ' 애욕만 없으면 뭇 고통이 쉬어버리고 ,

인연이 다하면 한 일도 없느니라"" 라는 말이 있으니 생사를 집착 하기때문에

생사가 있다

.고락을 초월한 사람에게 고럭이 없듯이 생사를 초월한 사람에게는 생사가 없는 것이다.

용수보살께서도 말씀하시기를 "" 부처님께서는 무상(無常)이 고(苦) 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유루법(有漏法 ) 에서 고(苦) 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범부는 유루법 중에 있기 때문에 마음에 집착이 있어서 고뇌하는 이치다.

그러나 무루법 (無漏法) 에서는 마음에 집착이 없는 까닭으로 인생이 무상 할지라도

우비고뇌가 없기때문에 고(苦) 라고 이름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고 하셨다 .

인생은 무상한 것이다 죽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다. 이 무상고가 인간에게 괴로움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생사를 뛰어넘지 못하고 살고싶다,죽고 싶지 않다 하는

집착이 마음 속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여의고 생사일여 (生死一如) 한 정신에 돌아가서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느 것과 같다 '는 경지에 들어간다면

인생무상이라든지 죽지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고뇌가 될수가 없다.

당나라 함통 초에 (860~874)에 보화존자라는 스님이 계셨다.

이분은 허무승 (虛無僧)의 비조 (鼻祖)라고 할수 있는 분이다.그는 생사일여의 경지를

달관하여 죽음의 문을 자기 집 문턱을 넘어가듯 했는데 ,

그 분의 입적에 관한 이야기는 죽음이 죽음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실증이 되고 있다 .

어느때 그는 임제종의 종주되는 임제선사와 함께 기거한 일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전과 다름없이 요령을 흔들며 허수룩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거닐었다,

그런데 이날은 특별한 말을 외고 있었다. "" 나에게 옷한벌을 해주시오"" 범상한 말이

아닌듯 했으나 좋은 옷을 만들어 공양하는 신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스님은 거절했다 .

드디어 임제선사가 관을 만들어 주었더니 회색이 만면하여,

"" 임제스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 좋운 옷을 만들오 주시니 ,이제 동문으로 가서

이것을 입고 열반에 들겠소"",하고 요령을 흔들며 북문에 가서

스스로 관에 들어가서 죽었다 .고 한다.

옛날 부처님 제자들은 이렇게 생사일여의 각오를 가지고 ' 삶도 바라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 고백한 분이 적지않았다.

이러한 의미에서생사고락에 대한 관념은 마음가짐에 따라

크게 달라질수가 있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