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9. 22:4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마음은 몸의 주인 아니다"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마음이 과연 몸의 주인인가?
암세포로 환생하느니 차라리 환생 안 하는 게 낫다. 누가 당신 몸에 황산을 뿌려 살을 태워죽이거나 날카로운 칼로 수천 번 능지처사를 거행했는데, 다음날 거짓말처럼 새살이 돋아나 다시 전날과 같은 황산테러와 능지처사를 당하는 것이 암(癌)의 운명이다. 이런 일이 끝없이 되풀이 된다. 매순간 고문 끝에 죽어도, 다음 순간 다시 살아나 끝없이 고문을 당한다. 암세포도 알고 보면 불쌍한 존재이다. 몸이 맘을 안 따라주기 때문이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한없이 살아야 영원히 죽는 모순의 존재이다.
많은 경우 몸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몸은 자기 맘대로 운행되고 우리가 제어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근육을 이용한 외적인 움직임 정도이다. 나머지는 몸맘이다.
때로는 몸은 세포자가증식을 해서 암을 만들어 마음에 엄청난 고통을 준다. 마음은 무기력하다. 소화불량, 뇌출혈, 담석, 요도결석, 장폐색(腸閉塞), 노화, 치매, 죽음, 간질발작, 오십견, 치아손실, 대머리, 주름살 등은 마음이 할 수 없는 일이며, 인간에게 큰 고통을 주는 일이다.
마음은 결코 몸의 주인이 아니다. 혈액순환, 호흡운동, 체온유지, 소화작용, 하수도(직장, 콩팥, 간, 방광, 요도, 항문)활동, 백혈구·적혈구 활동·생산, 골수생산, 면역체계, 길항작용 등 신진대사는 마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즉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몸은 자체의 소프트웨어로 움직인다.
뇌도 마찬가지이다. 기억하고자 해도 기억이 안 되며, 잊고자 해도 잊히지가 않는다. 중요한 약속이나 기념일 등은 기억이 안 나고, 교통사고현장 등 끔찍한 장면은 잊히지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잊어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상대방의 과거 수상한 행동들이 제때 기억나지 않아 된통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교통사고로 사람의 목이 잘려 자기에게 데굴데굴 굴러오는 장면은 지워지지 않고 지 맘대로 떠올라 마음을 괴롭힌다.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웃고 떠들며 다정하게 밥 먹는 장면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질투심에 불을 지펴 마음을 종교재판관처럼 고문한다. 오해였음이, 즉 그 남자가 사촌 오빠였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별안간 예전과 같은 마음을 경험하다가 깜짝 놀라서 "뭐야? 그 일은 이미 오해로 밝혀진 일이잖아!“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기억에 대가리라도 달렸다면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기억은 형체가 없으니, 즉 몸이 없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어떤 일들은 배우고자 해도 배워지지가 않는다. 문법은 이해가 안 가고 단어는 외워지지가 않는다. 아무리 용을 써도 이해할 수 없는 수학은, 누가 발명했는지 죽이고 싶을 정도이다. 마음이 강철 같은 의지를 내도, 몸은 초고성능 스프링처럼 의지를 튕겨낸다. 변화를 거부한다.
마음은 결코 몸의 주인이 아니다.
최소한 우리가 아는 마음은, 우리가 아는 식의(으로의), 주인은 아니다.
마음과 몸은 상호의존하며 존재하고 기능할 뿐이지, 한쪽이 다른 쪽의 주인인 것은 아니다. (이것을 오온연기 또는 12연기라고 한다.) 몸인 심장이 멈추면, 마음이 원치 않아도 생명체는, 즉 우리는 죽어야 한다. 마음이 주인이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샘 해리스 같은 학자는 자유의지조차 부인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과거의 사건들(업業 karma)로 결정된다면 인간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수행을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수행을 통해서, 몸짓, 말짓, 맘짓을 통해서 우리를 바꿀 수 있다고 즉 번뇌와 고통을 떠날 수 있다고 하셨다. 즉 결정론을 부정하셨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수행이 마음에 작용하는 것이지 몸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마음이 아무리 정신적 해탈을 해도, 자기 맘대로 육체적 고통을 생산한다. 예수의 몸에도, 아라한의 몸에도, 부처님의 몸에도!
어찌 되었건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어떻게 하면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고 처방을 내리며 조언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 조언에 따라 효험을 보는 사람도 존재한다. 인간의 고통과 사바세계의 고통은 실존이다.
몸이 죽으면, 마음이 아무리 거부해도 생명체는 죽을 수밖에 없으니, 마음은 주인이 아니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 아니다. 이 사실을 감추고 위로받기 위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은 머리를 굴려서 온갖 ‘꼼수’를 고안한다.
첫째로, 신이 있다고 주장한다. 신은, 최초로 등장한 시기가 10만 년 전쯤으로, 인류역사상 최장 장수인기상품이다.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하고,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제일 잘 팔린다. 뉴욕 마천루에서 뉴기니 밀림까지 광범위한 판매망을 자랑한다. 전지전능한 신이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해 낙원에서 지락(至樂)을 누리며 영원히 살게 한다. 자기(우리) 마음에 안 드는 놈은 지옥으로 보내거나 아예 우주에서 없애버리는 몹시 유용한 부가기능이 있다.
둘째로, 윤회사상이 있다. 불멸의 영혼이 있어서 영원히 윤회한다는 사상이다. 잘못 환생하면, 즉 지옥, 아귀, 짐승, 광우(狂牛 한반도를 뒤흔든 그 요란한 촛불시위는 인간이 파렴치하게 강제로 먹인 동족의 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불쌍한 소들을 위한 추모행사가 아니었다), 독감 걸린 닭, 바퀴벌레, 구더기, 무좀균, 에이즈 균, 암세포, 가난한 집 등 엉뚱한 곳에 태어나면 죽도록 고생하지만, 일단 (몸을 바꿔가면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낡은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낡은 몸을 새 몸으로 갈아입는다는 사상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전생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기억 없이, 즉 자기가 영원히 사는 지도 모르고, 영원히 사는 것이다!
셋째로, 무아(無我)사상이 있다. 모든 것이 무상(無常 ever changing)이요 공(空)이라 주체가 없으며, (생명체의) 삶과 죽음에는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주체가 없다. 그러니 죽는 자는 태어난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경험하는 불변의 실체는 없다. (무아사상을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정체성은 즉 ‘나’는 시간밀도함수이다. . 일종의 벨 커브이다. 왼쪽이 지나치게 큰 비대칭적인 벨 커브. 밀도가 가장 높은 지점이 현재이다.)
가장 근본적인 처방이지만, 너무 높은 지적수준을 요구하므로, 대중에게는 처방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달콤한’ ‘유아(有我)성분’을 입힌 ‘참나(진아眞我 아트만atman 我) 당의정’의 등장이다. 인기가 좋아 다양한 상표들이 존재한다. 원조는 인도제 아트만이며, 동북아시아에서 주인공, 진아, 참자기, 진여, 불성, 여래청정심, 여래장 등의 잡다한 브랜드로 유통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죄다 속까지 다 설탕인 가짜다!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데, 이걸 세속 마야(Maya)세계에서는 위약효과(placebo effect)라고 부른다. 이 중 가장 창의적인 브랜드는 주인공(主人‘公’)이 아니라 주인공(主人‘空’)이다. 하지만 경찰(無我)을 피해 숨어있는 바다이야기 주인(主人)이 “나 여기 없어요(空)!” 하고 외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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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몸의 주인이라 간주되는 마음이 사실은 무아(無我)라는 주장은, “몸과 마음 중 누가 주인이냐”는 질문을 원천적으로 무효화시킨다. 이걸 불교용어로 희론(戱論 재미나는 그러나 쓸데없는 말장난과 말싸움)의 종식(終熄)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기가 영원히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할까? 태어나기 전에 대해서는 아무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만 살면서, 왜 꼭 ‘죽은 다음에도 기억이 있어야 한다’고 즉 영원히 살아야 한다고 주장할까? ‘기억이 없이 영원히 살면’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기’ ‘억’ ‘이’ ‘없’ ‘이’, 영원히! 실제로 윤회론이란 ‘기억이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이다. 동물들은 아예 전생기억이 없으며, 사람도 전생을 기억하는 이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거의 없으며, 있다 해도 무한 전생은커녕 겨우 몇 생에 그친다. 심지어 달라이라마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한 생도!
“엉~ 엉~ 엉~, 당신이 100억 년 전에 나한테 한 일이 어제 생각나더군. 몸을 바꿨다고 못 알아볼 줄 알아? 인간이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짓을? 나쁜 년!”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제가 그때 어떤 짓을 했는지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해요. 100억 년 전 바로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네요. 감히 당신 면전에서 다른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고 몸을 허락하다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면 안 되겠어요? 술값은 제가 낼게요. 마음껏 드시고 잊어버리면 안 되나요? 자그마치 100억 년 전 일이잖아요? 제발 부탁해요.”
“뭐가 어쩌고 어째? 1,030억 년 전에도 그랬잖아! 그땐 털이 유난히 많이 난 다른 짚신벌레에게 눈이 팔려 날 버리고 그 놈과 합체했잖아!”
서기 100000002014년 12월 31일 망년(忘年)회 술자리에서 벌어진 두 연인 사이의 대화이다. 망(忘)은 잊을 망이고, 년(年)은 잊혀 지지 않는 나쁜 년이다. 인간이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망각은 축복이다.
매해 1억 명 정도의 몸이 그 만큼 수의 마음의 명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시스템폐쇄를 결정한다. 그리고 기억은 사라진다. 이것이 현실이다. 엄연(儼然)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가 아닌 현실적으로 봐도, 마음은 결코 몸의 주인이 아니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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