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을 희생 한다 / 성철스님

2015. 10. 31. 21:1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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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을 희생 한다 / 성철스님

 

부처님의 오신 뜻은,

미망의 어둠으로 부터 떨처나고.

독선과 아집으로 부터 벗어나는 깨달음을 주기 위함이다.

 

은거부하구(隱居復何求) 무언도심장(無言道心長)

산에 숨어서 무엇을 구 하느냐,

묵언으로 도심을 기르는 것이 수행자 이다.

 

행복은 받는 것이거나, 주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다.

그래야 행복이 보장 되는 것이다.

 

불교는 현실을 떠난 절대 세계를 부정하고

현실 이대로가 절대임을 주장 한다.

 

착각은 허망한 물욕의 마음을 가졌기 대문에 생긴다

물욕만 없으면 마음의 눈이 자연히 열린다.

 

자세히 말하면 인간 대개가 잡념속에 살고 있다.

 

보통 도둑은 나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는 것을 도둑이라 한다.

남의 나라을 침략 하여 빼앗으으면 그를 영웅이라 한다.

사회에서는 좀 도둑은 작은 도둑들이 하고 

큰 도둑은 고관대작 들이 한다.

 

정신이 병 드는 것은 물질 때문이다.

 

생사란 파도와 같은 것이다

끝없는 파도가 일어났다, 껴졌다,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일어났다 죽었다 한다.

그러나 바다 자체를 볼때는 늘어 나고 줄어둠이 없이,

삶과 죽음도 그자체도 그와 같다.

인간 뿐만 아니라. 만물의 자체는 바다와 같아

광대무변하고 영원 해서 상주불멸하며 불생불멸 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삶과 죽음은 하나이니 둘로 볼수가 없다.

 

쇠사슬만 사슬이 아니라 황금 사슬도 사슬이 된다.

 

道.란 우주의 근본이며 만물의 자체이니

시공을 초월하고 시공을 포함한 절대체 이다.

따라서 만물 하나가 모두 道 이며 현실이 곧 절대 이다.

이 道는 인간의 마음 속에 완전히 갖추어저 있다

그르므로 마음을 바로보면 道 를 아는 것이요.

이것을 깨쳤다고 하는 것이다.

 

마음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망상이 마음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구름이 해를 가리면 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道.를 깨치면 망상이 영영소멸 되어

소멸된 그자취도 없게되니 이것을 "무심 이라 한다.

 

인과가 있을 뿐 운명은 없는 것이다.

노력이 부족한 탓이지 운명 때문은 아니다.

세상에 나쁜 것이 무엇인가.?

망상을 제거 하지 않은 것이 나쁜 것이다.

 

목격전수 (目擊傳授) / 법정스님

 

 

선가(禪家)에 '목격전수(目擊傳授)'라는 말이 있다.
입 벌려 말하지 않고
눈끼리 마주칠 때 전할 것을 전해 준다는 뜻이다.

사람끼리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도
사실은 언어 이전의 눈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말은 설명하고 해설하고,
또 주석을 달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시끄러움이 따르지만,


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마주보면 이내 알아차릴 수 있고,
마음속까지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는 소리내는 말보다는
오히려 침묵의 눈으로 뜻을 전하고 받아들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눈은 어디까지나 '창문'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의 빛이 눈으로 나타날 뿐,
그렇기 때문에 창문인 그 눈을 통해
우리들은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눈길에서
우리는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끼는 경우가 더러 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초점을 잃고 몽롱하게 흐려 있는 눈,


출세를 위해 약삭빠르게 처신하느라고
노상 흘깃흘깃 곁눈질을 하는 눈,


앉은자리가 편치 않음인지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눈,
자기 뜻에 거슬리면 잡아먹을 듯
살기 등등한 그런 눈을 대할 때 우리는 살맛을 잃는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하고 차디찬 눈초리는 그래도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어디에 호소할 길마저 없는 사람들의
그 불행한 눈만은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다.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굽어보는 그 눈이
우리들의 양심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컷 부림을 당하다가
아무 죄도 없이 죽으러 가는 소의 억울하고 슬픈 그 눈을 보라.


그러나 쇠고기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은
그 눈이 표현하고 있는 생명을 절규를 읽어내지 못한다.
나만 맛있게 잘먹고 잘살면 그만이니까..


작금의 현실이 생생하지요? 법정스님의 걱정은

지금 사회에서 만연합니다

우리 불가에서 조차 나만 잘먹음되고

중생의 삶의 고통조차도 나만 아니면 되는 실상

우린 당췌 무슨 공부를 하며 무엇을 바라고 사는가?

다만 나만 맛있게 잘먹고 잘살면 그만 일까요?

정치권과 종교계를 보면 정말 희망보다는 절망감으로

어이 해야 하는지 조차도 ,,우리 불자들만이라도

 모두 자신을 바로 보기를  바로 행하기를 ,,,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