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월을 벗 삼아/허난설헌

2017. 2. 18. 20:41일반/가족·여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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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월을 벗 삼아


  꽃비가 내리는 눈록(嫩綠)의 계절이다.

시시껄렁한 잡담과 타성에 젖어 시간을 죽이는 짓을 하면

스스로를 마비시키는 것이나 마찬 가지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심리적으로나 주관적으로 혹은 내면(內面)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고 그럭저럭한 일상에서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는 한

하는 일 또한 무절재와 무질서만 낳는 것으로 결코 유익하지 못하다.   

 노쇠란 육신의 늙고 쇠약해짐만이 아니다.

자기 삶의 몫을 망각한 건망증과, 창조성이 없는 비슷비슷한 되풀이와

삶의 활기를 잃고, 늘 과거 기억 속에만 머물러 동신처럼 껍데기만

살아있는 것이 노화(老化)현상인 것이다.

단 한번 뿐인 이 엄숙한 삶에서 이렇다 할 하는 일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보낼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은 붕괴되어 가는 것이다.  


 요즘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상에 빠져 지내는 처(妻)를 생각하면

송죽지절(松竹之絶) 의 느낌이 든다. 언젠가 처에게 우리나라 역사에서

황진이와 신사임당을 대표적인 여성으로 꼽는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관기 출신의 황진이를 대표적인 사상가로 볼 수 없다' 며

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유인즉 허난설헌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상과 시각이 다른 법, 엉뚱한 시비에 머리가 지긋하다.  


 그렇다면 허난설헌의 삶을 논해보아야 할 것이다.

허난설헌의 불꽃같이 짧은 삶과 뛰어난 시문학은 시대를 초월하여 깊은

감동을 준다. 그의 짧은 생애(生涯)에 남겨놓은 길고 긴 삶의 족적(足跡)을

탐색하면, 문학 속에서 남겨놓은 심미적(審美的)세계관은 가히 넘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허난설헌과 동생 허균(許筠)은 당시 유명했던 시인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열 살이 좀 넘어 그녀의 재질은 장안에 소문이

났으며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와 재치, 그리고 뛰어난 시재(詩才)가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여덟 살에 광한전백옥류상량문(光寒殿玉樓上樑文) 이라는 장편 시를

지었는데 이 글이 어느 때부터인지 서울 장안에 나돌아 이를 알고

감탄해마지 않았다고 하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도 여자이기에 혼인을 하게 된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안동(安東) 김씨 집안의

김성립(金成立)을 남편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남편은 과거공부를 했지만

진전이 없었고, 아내와 시를 주고받을 수준이 못돼 소통이 되질 않아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여기에다 아내에 대한 열등감으로 걸핏하면 기생집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으며, 술이 취해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예사였다.  

비록 그의 남편이 때렸다거나 행패를 부렸다는 따위의 기록은 없지만

부부가 화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불을 덮어쓰고 가슴을 태웠으며,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혼자 시를

읊으며 한(恨)을 노래한 시를 보게 되면 그의 비통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그의 시 중에 유명한((규원(閨怨))이 있다.

이 시의 내용은 규방(閨房)의 원망(怨望)이란 뜻이다. 

  허난설헌의 규원가는 규방가사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규방은 여성이 사는

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성이 자신의 삶을 기록한 작품이다.

조선시대 여성들 특히 양반 여성들은 가부장제의 억압을 심하게 받았던

존재들이다. 허난설헌은 시적 재능이 뛰어난 인물로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았지만, 여성으로 갇혀 살다가 결국은 생을 마감한 여인이다.

작품을 찬찬히 감상해보면 여성을 옥죄는 삶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비단띠 깁저고리 적신 눈물자국                   

 여린 방초 그리운 한이외다.                 

거문고 뜰이 한 가락 풀고 나니                

   배꽃도 비 맞아 문에 떨어집니다.            

   달빛 비친 다락에 가을 깊은 데 울안은 비고                  

서리 쌓인 갈밭에 기러기 내려 않네                    

거문고 한 곡조 임 보이지 않고                   

꽃만 들못위에 떨어지네  


  그는 지아비의 버림을 받고 규방에서 외로운 밤을 살랑대는 솔바람소리

들으며 눈물로 지새웠음을 알 수 있다. 버려져 있는 자신의 처지를 시로

 달랬던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쓰라리게 하는 대목이다.

달빛 비친 방에는 밤이 깊어가지만 돌아오지 않는 임의 야속함과 외로움을

노래하는 시로서 난설헌의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여성사상가는 누구인지 자료를 찾던 중 어느 인문(人文)학 책을

보게 되었다. 1934년((신가정))1월 호에서 조선사상 십대여성을 선정하는

 투표를 했던 것이다. 여기서 신상임당이 20표를 얻어 1위를, 허난설헌이

19표를 얻어 2위, 그리고 8표를 얻은 황진이는 8위였다.

10위 안에 ‘논개’ 도 있었다. 그러나 황진이와 논개는 기생이었기 때문에

집 밖에 나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자비를 실천하며 2위에 선정된 난설헌이야말로

진정한 대표여성이라는 아내의 말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아내는 늦은 밤 이러한 시를 읽으면서 난설헌의 삶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벽월(碧月)을 벗 삼고 외로운 처지를 한탄(恨歎)했던 것이다.  

아내는 일제치하의 식민지시절 형평(衡平)운동가인 백촌(栢村) 강상호

(姜相鎬)선생의 외손녀로서 심지어 굳으며, 어떤 일에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하여 처지가 비슷한 여자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입장에서 난설헌을

말했을 법하다.

가요모음 20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