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戒律)에 대한 성언(聖言) - 청화큰스님

2018. 4. 14. 21:5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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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戒律)에 대한 성언(聖言)

청화큰스님

 


이제 계법(戒法)에 대한 불조(佛祖)의 경론(經論) 말씀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중생들 번뇌가 많지만 특히 음(), 노(), 치()라, 곧 신역(新譯)으로 삼독심을 탐, 진, 치라 하지만 부처님 당시라든가 근본불교는 음, 노, 치라 하여 음심을 제일 먼저 말합니다. 어찌 그런고 하면 음심 때문에 우리가 삼계육도(三界六道)에 윤회하기 때문입니다. 음심이 아니면 삼계육도에 윤회할 까닭이 없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삼계육도를 벗어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음심이라는 것이 번뇌 가운데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말입니다.


無量劫中 被淫怒痴 煩惱毒箭 受大苦切

- 涅槃經五 -


우리가 무량겁 중에 음, 노, 치의 번뇌의 독스러운 화살에 맞아가지고서 일체의 고액(苦厄)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런 삼독(三毒) 번뇌가 우리의 본능에 얼마나 깊게 뿌리박혀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열반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는 ‘보살에는 두 종류의 파계가 있는데 음, 노, 치를 위시한 악업(惡業)을 지어서 그 악보(惡報)로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의 불선도(不善道)에 향()하는 것이고 또는 성문(聲聞)ㆍ벽지불지(僻支佛地)에 향함이다(智度論八十)’ 보살의 파계는 삼독심이나 나쁜 악업으로도 물론 파계가 되겠지마는 성문승이나 벽지불승 등 소승 공부를 하는 것도 파계라고 합니다. 원래 자타가 없는 근원적인 불교 사상을 떠나서 자기 공부만 알고 남을 무시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독선적인 개인 이기심이나 집단 이기심이나 그런 것도 파계입니다. 또 닦는다 하더라도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중생을 위해 바쳐야겠다는 서원(誓願)이 아니고 혼자만의 안락을 얻기 위해서 또는 자기를 과시하고 대접받기 위하여 파벌을 만든다, 또는 무슨 교주가 된다든가, 그런 생각들은 모두가 하나의 성문, 벽지불 생각입니다. 그것도 역시 보살의 파계가 된다는 말입니다. 지도론(智度論)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사종삼마야계(四種三摩耶戒)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삼마(samya)는 본서원(本誓願)이란 뜻입니다. 불타의 본 서원 즉 우주에 본래 갖추어 있는 도리라는 뜻입니다. 살()ㆍ도()ㆍ음()ㆍ망()의 사바라이(四波羅夷)란 단두(斷頭)라, 목을 끊는다는 말입니다. 세속적으로 말하면 사형선고죠, 4바라이란 목을 끊는 단두죄로 중계(重戒)인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4바라이를 범하면 참회해도 소용없고 금생에는 다시 출가사문이 못되고 승가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4바라이로서 제불불가월(諸佛不可越)의, 제불이 넘을 수 없는 다시 바꿀 수 없는 계법이므로 삼마야계라 한다’ 고 합니다. 우주 자체 내에 갖추고 있는 본래적인 도리이기 때문에 부처님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이야 법 자체이기 때문에 바꿀 필요가 없겠지요, 대일경 구연품(大日經具緣品)에 있습니다.


阿難 云何攝心 我名爲戒 若諸世界 六道衆生 其心 不淫則 不隨其生死相續 汝修三昧 本出塵勞 淫心不除 塵不可出 縱有多智 禪定現前 如不斷淫 必落魔道 上品魔王 中品魔民 下品魔女 彼等諸魔 亦有徒衆 各各自謂無上道 我滅度後 末法之中 多此魔民 熾盛世間 廣行貪淫 爲善


知識 令諸衆生 落愛見坑 失菩提路 汝敎世人 修三摩地 先斷心淫 是名如來 先佛世尊 第一決定 淸淨明誨 是故阿難 若未斷淫 修禪定者 如蒸砂石 欲其成飯 經百千劫 祗名熟砂 何以故 此非飯本 如我此說 名爲佛說 不如此說 卽波旬說

- 楞嚴經六 -


그 다음에는 능엄경에 있는 법문인데 부처님과 아난(阿難) 존자와 문법하고 대답하시는 구절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가? 아명위계(我名爲戒)라, 내 가르침은 계가 된다” 부처님께서 마지막 설법도 ‘계로써 스승을 삼아라’ 하였습니다. ‘만약 모든 세계의 육도중생이 그 마음이 음탕한 것이 없으면 곧 생사상속(生死相續)에, 죽고 사는 윤회에 따르지 않는다’ 음탕한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출생하게 되겠습니까. 응당 부모의 음욕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천상도 욕계천의 아래 도리천까지는 인간과 똑같은 음욕으로 생사가 생기고 그 위에 올라갈수록 음욕이 차근차근 점차로 줄어지다가 색계에 올라갔을 때는 전적으로 음욕이 없으므로 남녀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출가사문이 비구나 비구니나 머리를 깎는 것은 외도와 구분을 하기 위해서도 그러지만 벌써 남녀를 초월해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대들이 삼매를 닦는 것은 그 본 뜻이 모든 번뇌를 떠남에 있다. 그러나 음심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번뇌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비록 지혜가 많이 있어 가지고 다소 선정이 현전하지마는, 여기서의 선정은 욕계정(欲界定)입니다. 색계정은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초월해 버리니까 상관이 없지만 비록 지혜가 있어가지고 명상도 좀 잘하고 무엇도 좀 알아맞히고 제법 도사짓도 할 수가 있는 욕계의 선정이 됐다 하더라도, 음욕을 끊지 않으면 반드시 마도(魔道)에 떨어지고 만다.


우리는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굉장히 주의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은 우주의 도리입니다. 우리가 재주가 있어 도사처럼 무엇을 좀 알고 어느 정도 삼매에 든다해도 색계 이상의 선정에 못 들어가면 욕계정(欲界定)에서는 결국 음탕한 마음을 아직 못 여읜 단계라 결국 마도에 떨어지고 만다는 말입니다. 마도에 떨어져서 상품(上品)은, 재주가 있고 영리한 부류들은 마왕도에서 대중을 이끌고, 사이비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가까운 근래에 백백교(白白敎)라든가 또는 용화교(龍華敎) 교주가 있지 않습니까? 얼굴도 잘나고 그야말로 똑똑하고 정력도 강하고 그러니까 어느 정도 삼매에 들고 아는 말도 도인과 같이 하겠지요. 그러나 음욕을 못 떼었으니까 나중에는 이상한 짓을 하다가 결국에는 매장 당하고 말았습니다.


상품은 마왕이요 중품은 마민(魔民)이요, 하품은 마녀(魔女)가 되어, 상품은 똑똑하니까 우두머리가 되고 그 다음은 그 밑에 따라서 한 동아리가 되어 시중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 마구니들은 그에 따른 무리들이 있어서 저희끼리 동아리가 되어가지고, 과거 전생에도 모두 비슷한 짓을 했겠지요. 보통은 다 과거 숙세에 부류끼리 다시 만납니다. 그러니까 그런 마구니들도 자기 패거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한국의 종교만 보더라도 수백 개의 종파가 넘을 것입니다. 불교만 해도 40종파가 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각기 종파마다 자기들이 최고로 옳다고 합니다.


세존이 멸도 후 말법지중(末法之中)에서는, 말법은 부처님법이 점차로 흐려지는 것입니다. 정법(正法)인 때는 도인들이 많이 나와서 정말로 삼명육통도 하여서 누가 교만심을 낸다면 신통을 부려서 교만심을 조복(調伏)시키는데 지금이야 빈말로 밖에는 하지 못하니까 아만심이 있는 사람에게 말이 딸리면 도리어 당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런 많은 마구니들이 세간에 치성하게 번성해 있어서 마구니들이 번성하니까 널리 탐욕스럽고 음탕한 무리들이 선지식이라 하며, 내가 잘났다고 거드름을 피운다는 말입니다.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애욕의 구렁에 빠뜨린다, 자기만 빠지면 좋은데 자기 동아리들과 여러 다른 사람들도 빠뜨리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무상대도를 닦는 진리의 길을 잃어버린다, 여러 사람이 더불어서 잃어버리고 마는 셈이죠.


“그대들은 세상 사람들한테 삼마지(三摩地)를 어떻게 닦으라고 가르칠 것인가? 먼저 음탕한 마음부터 끊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과거 무수한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 제일 결정적인 청정하고 밝은 가르침이라, 이러한 고로 아난아, 만약 음탕한 마음을 아직 끊지 않고 선정을 닦는 사람들은 마치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짓는 것이나 같다, 모래를 아무리 삶는다 하더라도 밥이 되겠습니까? 이 같은 것은 위선적인 것은 될는지 몰라도 마음은 맑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백천겁을 경과하더라도 다만 뜨거운 모래만 되는 것이다. 어찌 그런고 하면 본래 그것이 모래이지 밥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와 같이 말하는 법문들이, 즉 음욕을 끊으라는 것, 이것이 바로 불설이고 이와 같은 말이 아닌 것은 마왕 파순설이니라” 능엄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너무나 무서운 말씀들 아닙니까? 우리 중생들을 돌이켜 보면 어이가 없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면은 누구나가 다 부끄러움을 느낌니다. 용수(龍樹) 보살은 제 2의 석가란 분 아닙니까? 용수 보살도 30세 전후는 외도신통을 배워서 같은 동아리들 넷이 궁중에 들어가 예쁜 궁녀들을 침범하고 신통으로 몸을 감추어 버리니까 누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왕은 궁녀들을 모아서 여러 가지로 경책하고 힘도 세고 칼을 잘 쓰는 역사(力士) 몇 십 명에게 명령만 하면 무엇이 보이든 안 보이든 칼을 휘저어라 하였습니다. 그때 이 네 사람들이 다시 궁중에 들어가서 궁녀들을 희롱하고 침범하려고 하는데 왕이 신호를 보내니까 역사들이 공간을 향해서 보이나 안 보이나 칼을 사방으로 휘둘러 세 사람은 칼에 맞아 죽었는데 용수는 왕의 뒤에 숨어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뒤 곧바로 참회(懺晦)하고 부처님 법에 의지해서 출가해 제2의 석가란 성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용수 보살은 400세나 살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왕은 용수 보살한테 장수하는 비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왕이 용수 보살한테 장수 비법을 배워서 너무 장수를 하니까, 태자가 왕위에 오르고 싶은데 그렇게 안되는 것은 용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용수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안되니까 용수한테 간절히 제발 오래 살지 말고 죽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때 용수 보살은 용지(龍智)나 가나제바(迦那提努)에게 법을 이미 다 전수했고 인연이 다 했기 때문에 ‘이제 가야겠구나’ 하고 이른바 선탈(蟬脫)해서 이승의 인연을 마쳤습니다. 선탈이란 매미같이 허물만 두고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용수 보살 같은 분도 한때는 못된 짓을 하고 그랬는데 우리가 참회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은 어느 때나 늦지 않습니다. 100세가 되어도 늦지가 않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협존자(脇尊者)는 80세에 출가했습니다. 80세에 출가를 하니 늙은이가 의지할 데 없으니까 승가에 들어왔다고 주위에서는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내가 결정코 무상대도를 이루어 삼명육통을 통하고 팔만장경에 통달무애하지 않으면 절대로 내 몸의 옆구리를 자리에 대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공부를 하여서 3년 안에 정말로 팔만장경에 통달무애하고 삼명육통을 다 통했다는 것입니다. 80세에도 그러는데 우리가 과거를 돌아다 봐서 다소 부끄럽다 하더라도 아무 때라도 참회를 하면 늦지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