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제2권 성문품(聲聞品) 제3
(1). 사리자(舍利子)의 문병
그때 유마힐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러한 병에 걸려 침상에 누워 있는데, 세존께선 크게 자비로우신데도
어찌하여 불쌍히 여기시지도 않고 병문안하는 사람을 보내시지도 않으실까?” 그때 세존께서 그의 이러한 생각을 아시고 유마힐을 애처롭게 여기셨기 때문에
사리자(舍利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유마힐을 찾아가서 병문안을 하여라.”
그때 사리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감히 그곳에 가서 병문안을 할 수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기억하건데, 제가 옛날 한 때 큰 숲 속의 나무 아래에서 좌선(坐禪)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그곳에 와서 저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을 하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時無垢稱作是思惟: “我嬰斯疾寢頓于床, 世尊大悲寧不垂愍, 而不遣人來問我疾.” 爾時世尊知其所念, 哀愍彼故告舍利子: “汝應往詣無垢稱所問安其疾.” 時舍利子白言: “世尊, 我不堪任詣彼問疾. 所以者何? 憶念我昔於一時間, 在大林中宴坐樹下. 時無垢稱來到彼所, 稽首我足而作是言:
‘이보세요 사리자님. 앉는 것을 좌선이라 여기지는 마십시오. 무릇 좌선이라는 것은, 삼계(三界)에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곧 좌선입니다. 멸정(滅定)에서 나오지 않으면서도 모든 행동거지(行動擧止)를 나타내는 것이 곧 좌선입니다. 모든 깨달은 모습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중생의 온갖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곧 좌선입니다. 마음이 안에 머물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 것이 곧 좌선입니다. 삼십칠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에 머물면서도
모든 견취(見趣)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곧 좌선입니다. 생사(生死)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번뇌(煩惱)가 없고,
열반(涅槃)을 얻고도 머묾이 없는 것이 곧 좌선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좌선할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 인가(印可)하실 것입니다.’
그때 저는, 세존이시여, 이 말을 듣고서 말없이 있을 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맡을 수 없습니다.”
‘唯舍利子, 不必是坐爲宴坐也. 夫宴坐者, 不於三界, 而現身心, 是爲宴坐. 不起滅定, 而現諸威儀, 是爲宴坐. 不捨一切所證得相, 而現一切異生諸法, 是爲宴坐. 心不住內, 亦不行外, 是爲宴坐. 住三十七菩提分法, 而不離於一切見趣, 是爲宴坐. 不捨生死, 而無煩惱, 雖證涅槃, 而無所住, 是爲宴坐. 若能如是而宴坐者, 佛所印可.’ 時我世尊, 聞是語已, 黙然而住, 不能加報. 故我不任詣彼問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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