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2007. 6. 8. 16:2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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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3월말 일본 교토(京都) 복견성(伏見城)에서 사명당은 도꾸가와 이에야스와 만난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침략자 도요도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뒤를 이어서 일본전역을 천하통일한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그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를 여러분은 추리로써 한번 상상해 보라.

 

     먼저 도꾸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가 사명대사를 조롱하는 아래와 같은 시(詩)를 보낸다.

 

           石上難生草(석상난생초)   돌 위에는 풀이 나기 어렵고

           房中難起雲(방중난기운)   방 속에는 구름이 일어나기 어려운데

           汝彌何山鳥(여미아산조)   그대는 어느산의 이름없는 새이기에

           來參鳳凰群(내참봉황군)   감히 봉황이 노는 무리속엘 찾아왔느냐?

 

      우리들 역사의 위대한 영웅 사명당은 즉석에서 붓을 들어 답시(答詩)를 내민다.

 

           我本靑山鶴(아본청산학)   나는 본래 청산의 학이어서

           常遊五色雲(상유오색운)   항상 오색찬란한 구름위에 놀았는데

           一朝雲霧盡(일조운무진)   하루 아침에 구름과 이슬이 사라져서

           誤落野鷄群(오낙야계군)   한낱 들새의 무리 속으로 잘못 떨어지고 말았구나!

 

      이 처럼 서슬퍼런 상대의 마음을 간파하고 위축됨없이 폐부를 찌르는 명문이 또 어디 있을까.

 

      잡새가 봉황이 노는곳에 왜 왔느냐는 물음에 그대는 봉황이 아니라 내가 보기엔 한낱 들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맞받아쳤으니 기세등등했던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그래도 큰그릇은 큰그릇을 알아 보는법,,,,그도 일본을 통일한 인물이었다.

      상대방이 단칼에 목을 자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스님으로써의

      당당한 자세를 보인 사명당의 대담성에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고개를 숙인다.

 

      임진왜란시 포로로 끌려간 조선백성 3500 여명을 풀어줌과 동시에 강화조약을 맺는다.

      그로부터 양국은 260년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것은 온전히 사명당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