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 하며 돈 버는 '사회적 기업' 뜬다

2007. 6. 12. 09:41일반/생활일반·여행

728x90

테레사 수녀의 마음에 대기업 CEO의 머리로

새로운 형태의 ‘제3의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있다. 이기적 인간 본성과 자유시장을 강조한 ‘고전적 자본주의’, 정부 개입을 인정하고 복지를 중시하는 ‘수정 자본주의’에 이어, 새로 탄생한 제3의 자본주의는 이타적(利他的) 동기를 추진 동력으로 한다. 자선과 비즈니스의 경계가 무너진 기업과 자선단체, 이들이 이끄는 변화의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시작은 ‘땅콩버터’였다. 1986년 아프리카 르완다에 자원봉사를 간 재클린 노보그라츠(Novogratz)는 배를 곯는 미혼모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땅콩으로 버터를 함께 만들어 팔아보기로 한다. 의외로 히트를 치자 이들은 아예 공장을 세웠고, 채용인원도 계속 늘어 결국 마을 미혼모들이 모두 땅콩버터로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됐다.

이 작은 공장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110억원(1200만달러) 상당을 굴리는 기업(펀드)으로 변신해 있다. 아프리카·남아시아에서 살충 모기장을 팔거나, 집 짓고 생수 만드는 사업 등도 겸한다.

“왜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냐”는 지적에 노보그라츠는 이렇게 답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그들이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물건을 생산하는 것. 이것이 적선(積善)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가난을 탈출하게 합니다.”

사회공헌을 비즈니스로 하는 ‘사회적 기업(social venture)’이 확산되고 있다. 자선과 영리(營利)의 경계가 무너진, ‘제3의 자본주의’의 등장이다. 일반 기업의 목적이 이익 자체의 극대화라면, 사회적 기업들은 사회공헌을 통해 이익을 창출한다. 또 지원이 일회성인 자선사업과 달리, 사회적 기업은 적절한 이익을 냄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공헌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




◆수익이 없으면 선행도 없다

테레사 수녀의 따뜻한 마음과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치열한 경영전략으로.’

사회적 기업 ‘룸 투 리드(Room to Read)’를 운영 중인 존 우드(Wood)의 경영철학이다. 이 회사(단체)는 빈민층에게 서재·도서관을 만들어주는 사업을 한다. 창업자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임원으로 일하다 6년 전 네팔에서 어린이들이 너덜너덜해 진 책 복사본을 돌려보는 것을 보고 업종을 바꿨다.

운영하는 기업은 달라졌지만, 경영전략은 똑같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올리는 것이다. 그는 “사회기업도 일반 기업처럼 수익을 내야 지속가능하다. 따라서 고객을 잃으면 청산돼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실제로 ‘룸 투 리드’의 성장세는 스타벅스보다 더 빠르다. 최근 6년 새 스타벅스가 500개의 새로운 점포를 열 동안 ‘룸 투 리드’는 1000개의 도서관을 지었다.

일반 기업이 투자 대비 수익률(ROI)을 따지듯, 사회적 기업의 목표는 ‘투자 대비 사회수익률(SROI·social return on investment)’의 극대화다. 창출된 일자리, 도움을 준 사람 수, 재투자된 수익 등의 수치가 투자에 비해 얼마나 좋았는지를 따진다는 얘기다.

◆세상을 바꾸려는 기업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빈민운동가 무하마드 유누스(67)가 31년 전 세운 ‘그라민 뱅크’가 사회적 기업의 원조(元祖)로 꼽힌다.

‘제2의 유누스’는 세계 도처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안드레아와 배리 콜먼 부부가 설립한 ‘의약품 수송 회사(Riders for Health)’는 응급약을 아프리카 오지(奧地) 마을에 배달하는 사업을 통해 사람들 목숨을 구해낸다. 매출은 370만파운드(2005년), 지난 15년간 목숨을 구해낸 사람은 1080만명이 넘는다. 콜먼은 “아프리카에 약을 기부하는 곳은 많지만, 정작 이것을 오지까지 수송하려는 사람은 없었다”며 “자선의 틈새를 발견해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 기업의 일”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이 낮아 아무도 손대지 않던 풍토병 치료약도 사회기업의 힘으로 개발·공급되고 있다. 1998년, 미 식약국(FDA)에서 일하던 빅토리아 헤일 박사는 풍토병 치료약이 없어 죽어가는 빈민들을 보고 이들을 위한 제약회사(원 월드 헬스)를 차렸다. 덕분에 작년 말부터는 풍토병인 리슈만편모충증 치료제가 단돈 1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예일·스탠퍼드대학과 일본 게이오대학은 6~7년 전부터 비즈니스스쿨 과정에 사회기업가 양성 강좌를 잇달아 개설했다. 전통적인 기업가뿐 아니라 사회적 기업가도 경영의 주류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신지은 기자 ifyouare@chosun.com]
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