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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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불교 조계종의 최대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조계종립 특별선원인 문경 희양산에 위치한 봉암사(주지 함현 스님)가 '이명박 운하'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봉암사가 국책사업 등에 대해 반대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은 특히 성철 스님, 청담 스님 등이 '봉암사 결사'를 통해 대한불교 조계종의 근현대사적 맥을 새롭게 정립한 산실이라고 할 수 있어 큰 파문이 예상된다. 또 봉암사는 경부운하, 즉 한강과 낙동강의 연결구간인 문경에 위치해 있어 공사를 강행할 경우 조계종과의 일대 '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봉암사는 산문을 폐쇄하고 30~40여명의 스님들이 선방에서 정진하는 곳이다. 18일자 성명은 '봉암사 대중'(선방에 머무는 스님 일동) 명의로 발표됐다.
운하 강행하면 조계종과의 '전쟁' 불가피
봉암사는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반대합니다' 제하의 성명에서 반대 이유를 해탈, 생명,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지적했다. 봉암사는 우선 "(한반도대운하를 건설하면) 저마다 궁극적 가치로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의 터전을 허물 것이며, 국토의 근간을 훼손할 것"이라며 "환경재앙 이전에 돈의 노예가 되어 영원히 자유로운 삶과 멀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봉암사는 이어 "불제자로서 지켜야 할 바의 으뜸은 '불살생'이고 이는 세간의 불자들도 지켜야 할 바"라며 "대운하 계획은 대량살상 계획과 다르지 않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한 곳이 아니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가치는 동등하다"고 강조했다.
봉암사는 또 "인류 역사상 '자유·평등·박애'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장 먼저 주창하고 실천한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며 "그런데 대운하 건설 계획을 보노라면 절차적 민주성조차 찾아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자를 명분으로 상위 5개 건설사를 들먹이는 것은 철저한 시장개입으로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철학과도 모순된다"면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일부 권력자들이 국가를 개인 소유물인 양 함부로 하려 드는 것인가, 국민의 반대도 불사하겠다는 투의 대운하 계획은 사실상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못박았다.
봉암사는 '대운하 계획 철회를 위한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를 지지하는 봉암사 대중의 뜻'이라는 별첨 입장문을 냈다. 봉암사는 이 입장문을 통해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면서 "반생명 개발의 광풍을 생명과 평화의 숨결로 되돌리고자 하는 100일 생명평화 순례를 온 마음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봉암사는 또 "우리는 대운하 계획이 백지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서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현대 문명이 처한 '대량소비의 위기'와 '욕망의 위기'가 문명 전환의 관점에서 조화와 절제, 들봄과 공존의 문화로 승화되기를 발원한다"고 기원했다.
함현 스님 "경제논리로 금수강산 두동강 내는 일"
이번 성명과 관련 함현 주지스님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나라 땅덩어리가 금수강산인데 이 산하를 경제논리에 의해 두동강을 낸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수만년 이어져온 땅을 편리에 따라 배를 가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이명박 운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함현 스님은 이어 "봉암사는 참선만을 하는 스님들이고, 세속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일이 없었고, 지난 82년 산문을 폐쇄한 후 이런 성명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에 어른 스님과 30여명의 환주(이곳에서 참선한지 25년 이상되는 스님)들과 상의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대운하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이날 봉암사가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봉암사 대중은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반대합니다.>
조계종립 특별선원 문경 희양산 봉암사 대중 일동
개구즉착(開口卽錯). '입 벙긋 하는 순간 어긋난다' 하였으나, 이는 오로지 '해탈'과 무관한 희론(戱論)을 경계한 것인즉, 무너져 내리는 세간을 바로잡을 언어의 방편을 쓰는 일에 주저할 까닭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봉암사 대중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대운하 건설을 반대합니다.
1. '해탈'의 관점에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합니다.
― 산천초목이 다 부처의 현현이라 한 것은, 자연의 산물은 '구경무아(究竟無我)' 즉 개체로서의 존재 의식조차 없이 이 세상을 장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할 바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저마다 궁극적 가치로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의 터전을 허물 것이며, 국토의 근간을 훼손할 것입니까. '환경 재앙' 이전에 '돈'의 노예가 되어 영원히 자유로운 삶과는 멀어질 것입니다.
2. '생명'의 관점에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합니다.
― 불제자로서 지켜야 할 바의 으뜸은 '불살생'입니다. 이는 세간의 불자들도 지켜야 할 바입니다. 하지만 출가자들은 소극적 불살생에 머물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땅을 파는 비구를 보고
"출가 사문으로서 어찌 부끄러움도 모르고 남의 목숨을 끊는가. 겉으로는 정법을 안다고 말하지만 지금 손수 땅을 파 남의 목숨을 끊는 것을 보니 어찌 정법이 있겠는가"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이에 비구들이 남을 시켜 파자 "만약 비구가 손수 땅을 파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땅을 파게 하면 바일제(波逸提, 참회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업이 되는 죄)니라' 하고 거듭 이르셨습니다.
대운하 계획은 대량 살상 계획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가치는 동등합니다.
3.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합니다.
― 인류 역사상 '자유·평등·박애'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장 먼저 주창하고 실천한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그런데 대운하 건설 계획을 보노라면 절차적 민주성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민자를 명분으로 상위 5개 건설사를 들먹이는 것은 철저한 시장 개입으로,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철학과도 모순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민주주의는 국가 경영의 고삐를 쥔 사람은 궁극적으로 국민임을 분명히 한 정치사상입니다. 그런데 어찌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일부 권력자들이 국가를 개인 소유물인 양 함부로 하려 드는 것입니까? 국민의 반대도 불사하겠다는 투의 대운하 계획은 사실상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입니다.
<대운화 계획 철회를 위한 '종교인 생명평화순례'를 지지하는 조계종립 특별선원 봉암사 대중의 뜻>
한반도 대운하 논란, 조화와 절제·돌봄과 공존의 문화로 승화되기를
무릇 선문(禪門)에 든 납자(衲子)의 궁극처는 구름과 짝한 청산의 초막이 아닙니다. 적멸(寂滅)의 즐거움도 탐착하지 말아야 하거늘, 어찌 세간 밖을 노니는 일로써 한도인(閑道人)인 양 하겠습니까? 다만 노심초사 공부 길을 점검하며 처신을 삼갈 따름입니다.
정녕 선문 납자의 일대사는 '두 손을 펴고 저잣거리에 드는 일'인즉, 이른 바 '입전수수(立廛垂手)'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신 대로 "모든 중생의 거처가 바로 보살의 정토"인 까닭입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이에 종교환경회의는 반생명적 개발의 광풍을 생명과 평화의 숨결로 되돌리고자, 100일 동안 대운하 예정지를 걷는 순례의 길에 나섰습니다. 하여 우리 봉암사 대중들은 이들의 생명평화순례를 온 마음으로 지지하면서, 이번 순례를 계기로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한 반목과 질시, 탐욕을 부채질하는 무한 경쟁의 냉랭한 기운이 자비의 온기로 승화되기를 기원합니다.
스스로 살펴 보건대 아직 일대사를 마치지 못한 입장에서 감히 '입전수수'를 운위할 때는 아닙니다. 하지만 수많은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릴 것이 명백한데도 수수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세간이 무너지는 데 출세간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예토가 없으면 정토도 없는 법, 모름지기 우리 대중은 부처님께서 밝히신 연기법(緣起法)에 비추어 우리의 행동이 불조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투철할 따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중의 뜻을 밝히고, 위기에 처한 모든 유정·무정과 더불어 아픔을 나누는 것을 법희선열(法喜禪悅)로 삼고자 합니다.
1. 불살생(不殺生)을 계율의 으뜸으로 삼는 불제자로서, 수많은 생명체의 목숨을 앗을 것이 분명한 대운하 건설 계획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대중의 뜻입니다.
2. 조계종단의 스님들께서는 부디 밝고 깊은 가르침을 내리시어, 이 땅에 자비의 당간을 세워주십시오. 세간의 일이라 하여 침묵하는 것은 불조를 외면하는 일임을 일깨워 주십시오. 반생명의 현장을 묵인하는 것은 출가 수행자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3. 아무리 불살생의 계율에 투철해도 육신을 유지하는 일은 본시 다른 생명에 빚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참회와 금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환경 재앙마저도 불사하며 국토를 훼손하는 행위는 법신(法身)에 위해를 가하는 일입니다. 사사물물이 법신의 현현이기 때문입니다.
4. 우리 봉암사 대중들은 지난 해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제2의 결사를 다짐하며 3대 실천 지침을 천명한 바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수행의 생활화와 사회화'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수행력을 사회에 되돌리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결의의 연장선상에서 대운하 계획이 백지화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 우리는 대운하 계획과 관련된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업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현대 문명이 처한 '대량소비의 위기'와 '욕망의 위기'가 문명 전환의 관점에서 조화와 절제, 돌봄과 공존의 문화로 승화되기를 발원합니다.
불기 2552년 2월 18일
조계종립특별선원 희양산 봉암사 대중 일동
김병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