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배경음악; 명상음악 / 백년을 지낸후♬
행운의 집 우리님 !
소설가이신 박경리 님께서 오늘 타계 하셨지요.
그분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분들은 늘 열정적이고
파란만장하여 참 많이 안타깝기도 하곤 했었는데
타계를 하셨다니 문학계의 큰별이 져 애통합니다.
그분의 명복을 빌며 마지막에 발표하신 시를
찾아 우리님들께 보내드려 봅니다. 1926년 10월 28일 경남 통영에서 장녀로출생(본명; 朴今伊) 1945년 김행도씨와 결혼. 딸 김영주 출생(사위 김지하) 1955년 현대문학에 김동리에 의해 '계산'추천 '나비와엉컹퀴' '영원의 반려' '단층' 등의 주요작품외에 시집 '못떠나는 배' '우리들의 시간' 등과 근작으로는 '까치설' '어머니' '옛날의 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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