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2008. 7. 8. 14: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728x9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곳마다 그대로가 모두 참된 것이 된다.

어떤 경계가 다가온다 하여도 끄달리지 않을 것이다.

설령 묵은 습기와 무간 지옥에 들어갈 다섯가지 죄업이 있다 하더라도

저절로 해탈의 큰 바다로 변할 것이다.

 

요즈음 공부하는 이들은 모두들 법을 모른다.

마치 양이 코를 들이대어 닿는 대로 입안으로 집어넣는 것처럼

종과 주인을 가리지 못하며, 손님인지 주인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삿된 마음으로 도[佛敎]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이해득실과 시시비비의 번잡스런 일에 곧바로 빠져버리니

진정한 출가인이라고 이를 수 없다. 그야말로 바로 속된 사람[俗人]이다."

 

【강설】 『임제록』에서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구절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구절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상황에 끄달리지 말고,

주체적 인간으로 살면 무엇을 하든 그 하는 일과 그 있는 자리가

모두 진실한 진리의 삶이다.

 

상황과 처지에 끌려 다니면서 자신을 잊어버리지 말고,

상황과 처지의 주체적 역할을 하라.

어떤 일도 주체적 역할을 할 때 그 일은 곧 온전한 내 일이고,

온전한 나의 삶이다.

이것이 철저히 살고 철저히 죽는 전기생 전기사(全機生 全機死)며,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삶이다.

 

실로 천고의 명언이다.

이 한마디로 임제는 저 넓은 태평양이고, 허공이다.

수미산 꼭대기고, 히말라야 정상이다.

비상비비상천이고, 수만 광년 저 바깥이다.


 그러나 백보 끌어내려서 이렇게 해석하면 어떨까.
 "어디에 가건 지금 있는 그 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다.

그러므로 현재의 위치가 아닌,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를 바라고 꿈꾸지 말라.

지금 있는 이 자리가 어떤 상황이든 만족하고  행복해라.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추어 행복을 누리라.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 언제나 배고픈 아귀가 되지 말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만족하고 넉넉하게 부자로 살아라."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 되면

설사 옛날에 익힌 업장과 지옥에 들어갈 다섯 가지,

즉 부모를 죽인 일이나, 성인을 죽인 일이나, 부처님의 몸을 해치거나,

청정한 승단의 화합을 깨뜨리거나 하는 따위의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저절로 해탈의 大海에 노니는 것이 된다.

설사 인간이 저지를 수 없는 극악무도한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대로 해탈이라는 뜻이다.


  '어떤 상황에 있든 주인이 되라[隨處作主]'는 말은

타인으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든 자신은 거기에 흔들리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타인이 나를 때리고 욕하고 비방하고 모함하고 저주하고 질투하고

내 것을 빼앗아 가고 큰 손해를 입히고 훼방하여 큰 곤경에 처하게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이고 자신은 그것에 동요하지 않고 의연히 대처하는 것,

타인이 하는 일에 끌려가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자신의 본심으로 주체자가 되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다 행복하다.

그것이 진정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다.

 

자신에게 불이익과 손해가 돌아오고 비방이 돌아오더라도

그것을 다 받아들이고 그것에 따라 반응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손님에게 맛난 음식을 잘 차려 대접하더라도[비방과 손해를 가하더라도]

손님이 그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은 결국 음식을 차려

대접한 사람에게로 되돌아가고 만다.

 

그런데 요즘 공부하는 이들은 이러한 마음의 법을 알지 못한다.

마치 양이 풀이고 나무고 가시고 간에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것처럼

아무런 말이나 다 받아들인다.

삿된 말과 마군의 말을 잘도 받아들인다.

비방과 손해와 때리고 욕하는 일들을 잘도 받아들인다.

 

분별력이 전혀 없다. 방편과 진실을 전혀 가리지 못한다.

정법과 사법을 전혀 모른다.

그 말 많은 불교를 잘 변별해서 이제는 거품을 걷어내고

적확한 불교를 공부할 때다.

진정 견해가 참으로 요구되는 때다.

 

 - 작은 임제록에서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