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시인 매월당 김시습스님

2008. 7. 8. 17: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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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시인 김시습

 

김시습이 어려서 추구를 배웠다는 사실은 <유자한> 한테 보낸 편지에 드러나 있다. "두살되던 병자년(1436)년 봄에 외할아버지께서 추구(抄句)를 가르치셨는데, 그때까지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초구 역시 시를 가르치기 위해서 유명한 구절들을 뽑아 엮은 책이니, 말도 배우기 전에 시부터 배웠음을 알 수 있다. 이 편지에 의하면, 김시습은 이해에 초구 100여 수를 배웠다고 한다. 

 

아이들이 추구를 배우면 어떤 현상을 보았을 때에 새로운 말로 표현해보고 싶어진다. 자기가 아는 구절 가운데 몇 글자를 고치거나 두 구절을 섞어서 새로운 표현을 찾아내는 것이다.

김시습은 양양군수 유자한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이 세살 때에 지었다는 아래 시가 실려있다.

  

 

珠貫靑針 松葉露 주관청침송엽로

 

푸른 바늘에 구슬이 꾀었는지

솔잎에 이슬이 맺혔네요

 

추구에 보면,

 

竹筍尖如筆 松葉細似針 죽순첨사필 송엽세사침

 

죽순이 붓처럼 뽀쪽하고

솔잎은 바늘같이 가늘구나

 

라는 구절이 있는데, 뒷구절에서 몇 글자를 고쳐 새로운 시를 지은 것이다. 이슬을 구슬이라고 한 것은 흔한 표현이기 때문에 쉽게 고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시를 가르칠 때, 흔히 한 구절을 먼저 지어주고 그 뒤를 잇게 했다.

다섯 살 난 김시습이 시를 잘 짓는다고 이름이 나자, 세종이 궁궐로 불러들였다. 시습의 재주를 시험하려고, 지신사(도승지) 박이창이 시 한 구절을 던졌다.

 

童子之學 白鶴舞靑松之末

 

동자의 학문은

흰 백학이 푸른 소나무 위에서 춤추는 듯하고나

 

그러자 시습이 곧바로 대구를 읊었다.

 

聖主之德 黃龍碧海之中

 

임금님의 덕은

황룡이 푸른 바다속에서 뒤척이는 것 같네요

 

외할아버지가 시습에게 처음 시를 가르칠 때 일곱자씩 채우고 짝을 맞추라고 했던 것처럼, 그는 박이창이 던진 구절에 모두 짝을 맞췄다.

동자와 성주, 학과 덕, 백학과 황룡, 청송과 벽해 같은 명사뿐 아니라, '춤추다'와 '뒤척이다' 같은 동사, '위'와 '속' 같은 부사까지도 제대로 짝을 맞췄다.

세종이 비단 50필을 하사하면서 시습 혼자 가져가게하자, 시습은 필마다 끝을 매어서 끌고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또한 세 살 때 유모가 보리방아 찧는 것을 보고


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


맑은 날, 천둥 소리 어디서 울리나

누런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날리네.

 

라는 시를 읊었다고 한다. 


다섯 살에는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통달하여 김신동(金神童) 혹은 오세신동으로 이름이 났는데, 이 소문을 들은 정승 허조(許稠)가 그의 집을 방문하여 오세신동의 실력을 시험해 보았다.

허조가

"나는 늙은 사람이니 늙은 '老'字를 넣어서 글을 지어 보아라!"

고 하니 서슴지 않고 


老木開花心不老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구나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생후 여덟 달만에 글자를 알고 세 살 때 시를 지었다는 것은 얼른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이다. 

전생이 없다고 누가 말하랴 . . . 

      

 

     - 선비들이 어릴 때 지은 한시(허경진) :

        <넓고 아득한 우주에 큰 사람이 산다>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