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지만 괴로운 인생을 자각하여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불행한 인생살이 부터 벗어나 보람되고 행복한 멋진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좋은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자체가 행복한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부처님이 깨닫고 보니 우리도 부처님과 꼭 같이 지혜와 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분별망상 때문에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믿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을 한다면 우리도 부처님과 꼭 같은 참다운 진리를 성취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싯달타는 연기법을 깨닫고 부처가 되섰다고 합니다. 우리도 연기법을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기법은 인연 따라 나타난다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생의 괴로움은 인연 한 것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고 절대적이나 운명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죽음 까지도 말입니다. ▶신해행증 설명에서도 강조 했습니다 마는 부처님의 말씀을 꼭 믿어야 됩니다. 노사라는 큰 괴로움도 무명으로 인연해서 있다고 착각하여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있지도 않은 노사라는 큰 고통도 연기법을 모르는 무명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연기의 도리를 알고 무명을 멸하므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잘 살기를 원한다면 잘 살 수 있는 짓을 하여야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속에 아주 적은 선이라도 베풀면서 살고 모든 괴로움은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합니다.
▶온갖 악은 짖지 말고 많은 선을 받들어 행하고 자기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변함없는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자업자득이라고 하지요 조그마한 나쁜 행위가 우리를 얼마나 괴롭게 만드는지 안다면 착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큰 나쁜 행위는 불교 공부를 방해 하는 짓거리입니다. 방해 하는 짓거리를 하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몰고 오는지 상상해 보신다면 이런 짓은 절대 하면 않됩니다.
불교를 믿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언어는 외부의 사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생각을 표현입니다.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의 대립은 실재하는 세계를 놓고 대립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하고 있을 뿐입니다. ▶부처님의 침묵은 사견의 독화살을 뽑으라는 의미다.
▶같은 유무라도 뜻이 다릅니다. 없다(無)에는 본체가 없음(무자성)과 존재마저 없음(허무.전무)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있다(有)에는 존재가 인연에 따른 현상적 존재로서 있음(연생유)과 본체가 있음(유자성)이라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공에 입장은 무는 무자성 유는 존재가 인연에 따른 현상으로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삼산법사>님의 법문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