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2008. 7. 12. 21:23일반/생활일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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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거주 딸 의정이 '윤봉길 의사(1908~32)' 자료를 발췌해 보내와

 감명 깊은 글들을 사진과 함께 게재합니다(출처:Qing영상문화발전소, 인터넷 백과 등).

역시 독립운동가이신 윤동주 선생(1917~45)의 序詩를 노래하는
조영남 씨의 느낌을 주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우려 보시기 바랍니다.

                                           
                  

윤동주의 序詩 / 노래:조영남

 

 

 

<출사표 中에서> 

 




"23세,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리 압박과 우리의 고통은 증가할 따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 가는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각오는 별것이 아니다.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 것이다. 
이 철권은 관(棺)속에 들어가면 무소용(無所用)이다.
늙어지면 무용이다.
내 귀에 쟁쟁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 였다.

다언불요(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


<유서 中에서>



*생가(충남 예산)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 들 계십시오." 

 



<두 아들 앞 유서 中에서>

 


*상해 임시정부 청사 사적관  윤 의사 사적전시관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을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어록 中에서>

                                    *묘소(효창공원)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중국 상해 '홍커우' 공원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
일본의 천장절과 승전기념일 행사에 폭탄을 투척.

 

 안타깝게도 매헌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엔 중국의 문학가 루쉰의 동상이... 

 

 

*  거사 기념석

 

 

* * 최후 순국 장면  

                



                         * 매장 장면



 

 

** 장제스 대만 전 총통의 친필

 

* 1967년 윤봉길 의사 유족들에게 전달해준 친필 붓글씨

윤 의사 의거를 계기로 독립군은 당시 국민당 장제스 정부의 지원을 받을수 있었는데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군대가 못한 것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 냈다."고 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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