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객의 숙명과 운명

2008. 7. 17. 14:1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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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객의 운명 / 지허스님>

   

선객은 숙명의 소산이 아니라 운명의 소조이다.
숙명은 자기 이전에 던져진 의지이자 주어진 질서여서,
생래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천적인 것 이지만,운명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 자유로이 선택한 후천적인 현실이다.

그래서 숙명은 필연이지만 운명은 당위요,
숙명이 불변이라면 운명은 가변이요,
숙명이 한계성이라면 운명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내가 갑부의 아들로 태어나지 못하고 거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숙명의 소산이라면 내가 자라서 갑부가 된 것은 운명의 소조이다.

내가 내 품속을 기어다니는 이나 벼룩으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숙명의 소치이고,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불교에 귀의하고 정진하여 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운명의 소이에서다.

현재의 나는 숙명의 객체이지만 운명의 주체이다.
숙명은 자기 부재의 과거가 관장했지만,
운명은 자기 실재의 현재가 그리고 자신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운명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소지는 운명 직전까지 무한히열려져 있다.

숙명의 필연성을 인식하면 운명의 당위성을 절감하게 된다.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숙명적인 것은 피하려고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며, 운명적인 것은 붙잡고 사랑해야 할 뿐이다.

고집의 표상 같은 누더기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선객이야말로 견성의 문턱에서 문고리를 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끝내 운명은 타기될 것이 아니라 파지되어야 함은
선객의 금욕 생활이 극한에 이를수록 절감되는 상황 때문이다.

                 <  선방일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