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법요<문답>
(배휴 거사와 스승인 황벽선사와의 문답)
(문) 어떤 것이 도(道)이며 어떻게 수행하십니까? (답) 도가 무슨 물건이기에 그대는 수행하려 하는가?
(문) 모든 조사(祖師)께서 참선을 하고 도를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답) 둔한 사람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니 의지 할 것이 없다.
(문) 둔한 사람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영리한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어떤 설법을 하였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답) 영리한 사람은 남에게 묻지 않는다. 나와 남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따로 법이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문) 그렇다면 애써 구하고 찾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답) 그렇게 된다면 마음의 수고를 줄일 수 있겠다.
(문) 그렇다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것 아닙니까? (답) 누가 없다고 했으며,누가 찾으라 했는가?
(문) 이미 찾지 말라고 했으며,끊지 말라는 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답) 찾지 않으면 쉴 것이지 누가 그대로 하여금 끊게 할 수 있겠는가?
(문) 이법은 허공과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답) 허공이 아침 저녁으로 같은가, 다른가?
그대는 지금 견해(見解)를 내는구나?
(문) 그렇다면 무조건 견해를 내지 말아야 합니까? (답) 나는 그대를 방해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견해란 정(情)에 속하는 것이니, 정이 생기면 지혜가 가로 막히게 된다.
(문) 지금 감정을 일으키지 않음이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답) 감정을 일으키지 않으면 누가 옳다고 하겠는가?
(문) 말만 하면 스님은 어찌 말에 떨어 진다고 하십니까? (답) 그대는 단지 말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 어디에 떨어진다는 말인가?
(문) 지금까지 해 온 많은 말들은 그때그때 임시로 한 말이지 진실한 법으로 사람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답) 진실한 법은 잘못됨이 없는데 그대의 질문이 잘못되었으니 어느곳에서 진실한 법을 찾겠는가?
(문) 이미 질문이 잘못 되었다면 스님의 대답은 어떻습니까? (답) 그대는 물건을 가져다가 제 얼굴에 비추어 보아야지 다른 사람을 연관 시키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이
물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짖는 것이, 마치 개가 초목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짖어대는 것과 다르지 않구나.
우리 선종(禪宗)은 위로부터 계승에 오면서 일찍이 지해(知解)를
구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고 단지 도를 배우라고만 했다. 그러나 도 역시 배울 것이 아니니 만약 배워서 아는 데에
마음을 쏟는다면 도리어 도와 멀어지고 말 것이다.
방향과 장소가 없는 마음을 대승(大乘)의 마음이라 부른다. 이 마음은 안과 밖과 중간이 없고 방향과 장소가 없으니 지식과 이해로써는 얻을 수가 없다. 이렇게 그대에게 말하는 것 자체가 마음으로 헤아려 보는 것이고 만약 마음으로 헤아려 보는 것이 다 없어지면 마음에 방향과 장소가 없어질 것이다.
이 도는 천진하여 본래 이름이나 글자가 없지만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마음으로 생각하려 든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들이 출현하여 이 잘못된 일을 깨뜨렸다. 그러나 중생들이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할까 염려하여 방편으로 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니, 만약 이 이름에 얽매이어 견해를 내지 않는다면 고기를 잡은 다음에 통발을 버릴 줄 아는 것이 된다.
몸과 마음이 자연히 도에 통달하고 식심(識心)이 본래의 근본을 알기 때문에 사문(沙門)이라 부른다. 사문이란 생각을 쉼으로써 일을 성취하고
배우지 않고도 얻게 되는 것이니 그대가 만약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구할 것 같으면 남의 집에 곁방 살이를 함이요, 배워서 얻으려고 노력한다면 얻을 날이 없을 것이다.
옛사람은 마음이 영리하여 한마디를 들으면 문득 배움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배움을 끊는 한가한 도인(道人)이라 부른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많이 알고 많이 이해하려고 글과 그 내용을 추구하는 것을 수행이라 부르며 많이 알고 많이 이해하는 것이 도리어 장애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아이에게 우유를 많이 먹일 줄만 알고
소화를 잘 시키는 지의 여부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 처럼
요즘 수도인들은 모두 그런 부류들이다. 모두가 먹을 줄만 알고 소화시키지를 못하는구나. 이른바 지식과 지혜도 소화하지 못하면 독약이 되나니, 이 모두가 생사의 길을 향하는 것일 뿐
진여(眞如)의 길에는 이런 일이 없다.
그러므로`우리 왕의 창고에는 이러한 칼은 없다`고 하였다. 과거부터 지녔던 모든 지식과 이해를 다 버리고 분별심이 없다는 이것이 곧 공여래장(空如來藏)이다. 여래장이란 티끌만한 존재도 없음이다. 곧 유(有)를 깨뜨림이요,진리의 왕이 세상에 출현함이다.
또,`나는 연등 부처님의 처소에서 조그마한 법도 얻은 것이 없다`하였으니 이 말씀은 오직 그대의 생각을 비우게 함이다. 지식과 이해가 사라지고 안팎의 감정이 없어져 버리면 일 없는 사람이 된다.
(문) 예로부터 `마음이 곧 부처다`했으나 어떤 마음이 부처 인줄 모르겠습니다. (답) 너는 몇 개의 마음이 있느냐?
(문) 범부의 마음이 부처입니까, 성인의 마음이 부처입니까? (답) 어디에 범부의 마음, 성인의 마음이 있겠는가?
(문) 망령된 마음이 본래의 마음을 가려 버린다고 하나 지금 망령된 마음을 어떻게 버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답) 망념으로 망념을 없애려 한다면 또다른 망념이 생긴다. 망념은 본래 근거가 없다. 그러나 분별심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니, 그대가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두 곳에 대한 감정만 없애면
자연히 망념은 없어진다. 억지로 없애려고 생각하면 절대로 되지 않는다. 털끝만큼이라도 집착하면 아(我)가 이루어지니 양팔을 벌려야 부처를 얻는다.
(문) 만약 집착이 없다면 어떻게 계승합니까? (답)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할 뿐이다.
(문) 마음으로 서로 전한다면 어째서 마음이 없다고 합니까? (답) 이 마음을 요달하면 곧 마음도 법도 없다.
(문) 마음도 법도 없다면 어째서 전한다고 합니까? (답) 그대는 마음을 전한다는 말을 듣고는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구나. 이 때문에 조사께서"심성(心性)을 알때는 불가사의 하다고 말하고,
요달함이란 얻는 것이 없음이니 얻을 때에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였다. 이 뜻을 그대가 알아야겠는데 그대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문) 혜능스님은 경을 알지 못했는데
어째서 가사를 전해 받아 육조가 되었으며 신수(神秀)스님은 경과 논을 강의하였는데 어째서 가사를 전해 받지 못했습니까? (답) 신수스님은 유심(有心)으로 유위법(有爲法)만을 알았다. 닦고 증득함으로써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조스님이 육조스님에게 부촉하였다. 육조스님은 당시에 침묵으로 계합하였으니 비밀히 전해진 여래의 깊고 깊은 뜻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법을 전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이런 말을 들어 보지 못했는가?
<법은 본래 법 없음을 법이라 하고 법 없는 법이 또한 법이다.
법, 법 하지만 법 없음을 부촉할 때에 무엇이 법이겠는가?> 하는 말을. . . 만일 이뜻을 바르게 알면 바하흐로
출가한 사람이라 부를 수 있으며 수행인이라 할 수있다. 너는 보지 못했는가? 아난이 가섭에게 묻기를 "부처님께서 가사를 전한 것 외에 무슨 법을 전했습니까?"하자 가섭이 도리어 아난을 불렀고, 아난이 대답하니 가섭이 이렇게 말했다. "문 앞에 있는 찰간(刹竿)을 거꾸러 뜨려라." 이것이 바로 조사의 도리다.
아난은 30년간 부처님의 시자가 되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매우 지혜로웠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네가 천일동안 지혜를 배운 것이 단 하룻동안 도를 배운 것만 못하다."
는 꾸지람을 들었으니, 만일 도를 배우지 않으면 한 방울의 물도 소화하기 어렵다.
(문) 어떻게 해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답) 오직 하루 종일 밥을 먹지만 일찍이 한 낱의 쌀알도 씹지 않았고, 종일토록 길을 가지만 일찍이 한평의 땅도 밟지 않았을 때에
비로소 인상(人相)과 아상(我相) 등이 없어진다. 하루종일 일체의 일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 일에 미혹 당하지 않아야 자유로운 사람이다.
어느 때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일체의 상을 보지 않고, 앞이니 뒤니, 과거니 미래니 하는 것도 인식하지 말고, 과거도 지난 것이 아니요, 현재도 머무리지 않는 것이며, 미래도 옴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편안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아무데고 구애됨이 없어야 해탈하게 되는 것이니 부지런히 노력하여라.
천사람 만사람 가운데 오직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하니 이일을 하지 않는다면
재앙받을 미래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힘을다해 반드시 금생에 깨달아 마쳐야지
누가 두고두고 재앙을 받고 싶어 하겠는가?" 하지 않았더냐?
(傳心法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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