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femininity)

2008. 7. 19. 23:20일반/가족·여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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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femininity)

보수적인 인도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데 이어 한국에서도 여성이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소통과 통합을 중시하는 리더가 각광받고 있다. 이른바 여성적 리더십인 셈이다. 여성이 전면에 부각하는 사회적 요인으로는 집단과 조직을 중시하는 산업화에서 개인의 창의성 섬세함을 중시하는 지식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을 가장 많이 꼽는다. 근육을 쓰는 힘 위주에서 두뇌 중심으로 직업이 전환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나 경제적 사회적 지위와 발언권이 높아진데도 원인을 찾을 수있다. 여성성은 전쟁과 갈등 분쟁을 유발한 남성 중심의 정치 지형을 평화와 소통 연대로 바꾸고자 하는 운동으로 까지 이어지고 기업에서는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등 사회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여성성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무엇이며 그 관련성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평화 공존 소통’ 상징…불교 지향점과 ‘일치’

 

여성성(femininity) 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여성다움이다.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기준은 일차적으로 생물학적 차이에 둔다. 즉 성(性)의 차이다. 성에 따른 생식의 차이가 성 역할을 낳았고 사회적 구분으로 까지 이어졌다. 여성성에 관한 논의도 기본적으로는 이 생물학적 차이에서 출발한다. 현재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성은 생물학적 논의에서 나아가 문화적 요인으로 바라본다. 즉 여성스러움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문화적 사회적 논의를 통해 그 성격을 특징짓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관세음보살이 주로 여인으로 변신해 나타나 구원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온다. 한국 불교문학에서 여성성을 가장 잘 대표하는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양양 낙산사 관음보살상.  불교신문 자료사진

 

 

현재 학계나 여성계 등에서 말하는 여성성은 평화 공존 소통 관계 등의 단어로 표현된다. 반면 남성성은 갈등 경쟁 욕구지향 폭력 등으로 특징 짓는다. 여성성이 화두로 떠오른 것은 결국 현대 사회가 앓고 있는 각종 병폐가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체제와 이데올르기에서 비롯됐다는 반성에서 나왔다. 경제와 이데올르기에 따른 나라간 전쟁과 사회에 만연한 폭력성 복종과 지시의 조직 문화 등에서 벗어나 함께 공존하고 평화롭게 살며 서로 의지하자는 열망이 여성성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여성성이라는 범주 속에 들어간 여러 특성들은 불교의 지향점과 거의 일치한다. 불교계 일각에서 여성성 논의를 관심 깊게 지켜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선 불교는 성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 성 평등적인 종교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고 했지 결코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지 않았다.

 

부처님 재세 당시 인도사회가 여성에 대해 억압적 차별적이었고 승단 내부에서도 그같은 분위기가 강했지만 부처님은 여성출가자를 받아들였다. 이는 모든 생명체를 불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로 인식하는 불교 가르침에 따른 당연한 조치였다. <숫타니파타>는 “출생을 묻지 말라, 행위를 물어라”라고 했으며 “몸을 받아 태어난 것들에는 각기 구별이 있지만 인간 사이에서는 그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사이에서 구별이 나타나는 것은 오직 그 명칭에 의한 것뿐이다”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여성 출가를 간청하는 제자 아난에 대해 부처님은 “여성도 출가 수도하면 아라한과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대답했다. 부처님은 이처럼 남성 여성이라는 성 분리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다. 성 평등관에 따라 여성을 비롯한 많은 수행자들이 출신성분과 성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불교에 입문할 수 있었다. 성에 따라 인간을 차별하지 않은데서 불교의 평등성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여성성에서 강조하는 평화 공존 소통 관계 중심의 가치는 불교 교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불교가 평화를 가장 강조하는 것은 교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고(苦)에서 벗어나 해탈(解脫)하는 것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는다. 해탈에 이르는 길은 인간을 괴롭히는 원인이 나(我)라고 하는 껍데기 뿐인 실체에 집착함으로 인해 빚어지는 망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미망에서 벗어나는데 있다. 모든 괴로움과 상대방에 대한 증오 원망은 모두 관계 속에서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허깨비를 고정불변의 실체로 착각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나라고 주장할 바가 없으므로 남 또한 없다. 그러므로 나와 남은 실체가 없다. 당연히 구분 지을 수도 없다. 나라고 하는 고정된 실체가 없고 나 역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인드라망 속의 한 부분이라면 싸울 일도 갈등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오직 평화만이 가득하다. 서구의 페미니즘이 불교에 눈길을 돌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남성위주 사회체제의 병폐’ 반성으로 부각

 

페미니즘 평등-평화 강조하는 불교에 관심

 

절대불변 아닌 사회변화 단면으로 이해해야

 

여성성에 대해 비판적인 논자들은 ‘여성성’이 또 다른 구분 짓기를 시도하고 성 결정론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 즉 남성성은 악, 여성성은 선이라는 식의 이분법으로 환원될 여지가 많고 여성성이라는 형질이 실재하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여지가 많다. 이렇게 되면 또 하나의 대립만 양산하는 셈이 된다.

 

실제로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여성성을 놓고 서로 비방하거나 과시하는 양상으로 흘러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폐단은 불교의 공사상을 통해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아와 연기를 기반으로 하는 공사상은 여성성 남성성을 구분 짓지 않는다. 관계 중심적이며 통합적일 뿐만 아니라 비결정적이다.

공의 관점에 서면 모든 것들은 관계 속에서 끝없이 생멸하기 때문에 남성성이나 여성성과 같이 고정된 실체로 규정할 수가 없다. 여성성이라는 현재 사회를 강타하는 흐름은 불교에서 보면 완결되고 절대불변의 결정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이는 평화 공존 소통을 중시하는 사회적 소망이 낳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지나친 숭배나 절대화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야할 점은 불교가 여성성을 뒷받침하는 훌륭한 가르침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반대의 흐름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구니 팔경계법이나 여성 불성불론 등 교리는 차치하고 실제 교단 운영 등에서 남성성에 따른 편제가 많다는 점이다.

장로를 정점으로 수직적으로 편성된 승단의 조직 체계나 가부장적인 위계구조는 분명 남성성의 산물이다. 함께 법을 공부하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도반 보다는 출가연도나 단지 역할 분담에 불과한 자리를 놓고 구분짓는 것 등은 불교의 평등 정신에도 어긋난다.

또 수평적이고 관계 중심보다 위로 부터의 명령이나 지시를 더 중시하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드러나는 것 등은 남성중심의 교단 운영이 빚은 결과다. 서구 여성 불자들 사이에서는 출가자 중심의 수행법이 육아와 가사에서 자유로운 남성위주라는 의견도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모든 인간관계를 떠나 토굴에서 은둔하는 방식은 실제 인간 삶에서 일어나는 가족 문제나 여성문제 인권 등 사회적 현안에 대해 무관심하도록 방치해 관계중심의 여성성과 배치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한국적 상황과는 매우 다르지만 관심을 기울여볼 사안이다. 이처럼 여성성에 관한 활발한 논의는 그동안 교리 보다는 사회 문화적 요인을 더 중시해온 교단 운영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제시해준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 남성성과 여성성

 

여성성 ‘포용-안정’ 남성성 ‘성취-발전’

 

원시사회 이후 성역할 구분돼 강화 유지

 

생물학적으로 100% 남성 여성은 없다고 한다. 남자나 여자라 할 때 남성성과 여성성이 각각 60%대면 성 정체성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즉 남성은 여성성을 여성은 여성성을 적어도 40%가량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 생물학적으로 여성성에 대해 포용성과 안정성 등을 들고 남성성은 성취성 발전성을 든다. 이같은 속성은 남자는 수렵과 채취를 책임지고 여성은 육아를 담당하는 원시사회 이후 성역할이 구분되면서 더 강화 유지돼왔다고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성의 차이는 더 극대화돼 여성에 대한 억압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사실 근대 이후, 개발은 남성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남성성이란, 정복, 빠름, 파괴, 위협, 객관 등의 특징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개념으로 본다. 남성성 위주의 개발은, 빠른 목표 달성을 위해, 효율성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반면 여성성은 공생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여성 중에서도 남성과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 역도 성립한다. 즉 여성성과 남성성을 생물학적 특성으로 결정지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 여성 관련 불교사상

 

부처님 ‘남성 중심주의’ 비판

 

여성불성불론 등 폄하 시각도

 

불교의 성 평등주의 사상은 대승의 공(空)사상과 여래장(如來藏)사상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불교의 성 평등론에 대해 언급할 때 대표적으로 인용하는 경전 역시 공사상의 대표인 <유마경>이다.

<유마경>에서 천녀는 여성을 열등한 시각으로 보고 있는 사리불에게 “여자의 몸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서 여자가 아니며, 남자의 몸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남자라고 할 수는 없다. 부처님께서 ‘일체의 모든 법이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라고 하셨다”는 말로 남성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승만경>에서는 재가 여인의 설법을 부처님의 설법에만 붙이는 ‘사자후’라고 함으로써 성불에 남녀가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반면 ‘여성불성불론’처럼 여성을 폄하하는 사상도 있다. 여성불성불론 중 대표적인 사상이 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이다. 여성에게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어 제석천.범천.마천.전륜성왕.부처님과 같은 존재는 될 수 없다는 사상이다. <법화경> <대지도론> 같은 경론에 언급되어 있다. 부처님의 상호를 나타내는 여래 32상호설도 여성에게 불리한 내용이다. 이 속에는 여래가 남성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 후대 여성불성불설의 근거로 작용했다. 여성변성남자성불론(女性變成男子成佛論)은 여성은 여성 몸 그대로는 성불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남성의 몸이 된 뒤에야 성불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주로 부파불교에서 나왔다. 이후 대승불교에서는 여성의 몸 그대로 성불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여성즉신성불론으로 돌아간다. <유마경>과 <승만경>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 여성성의 상징 관세음보살

 

여성의 몸으로 현신해 중생 구제

 

<삼국유사>속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관세음보살이 여성으로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이처럼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은 여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등장한다.

특히 관세음보살은 가장 비천한 인물로 등장해 가장 숭고하고 거룩한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이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노비였다가 부처님으로 변신하는 종 욱면이 대표적이다.

 

욱면은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팔진(八珍)의 무리 가운데 계(戒)를 얻지 못한 사람이 축생도에 떨어져 부석사(浮石寺)의 소가 되었다가, 불경을 지고 간 공덕으로 인해 사람으로 태어나 욱면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 구도승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을 도와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 이는 처녀로 환생한 관음보살이었다. 고귀한 신분의 관음보살은 비천한 여성의 몸으로 화현해서 두 구도자를 해탈의 경지로 이끌고 있다.

 

남편의 수도 정진을 위해 10여 년을 뒷바라지하고 마침내 남편을 서방 세계로 인도한 다음, 음욕(淫慾)에서 벗어나지 못한 엄장마저 깨치게 만들어 서방정토로 왕생하게 만든다는 <감통편>에 나오는 광덕(廣德)과 엄장(嚴莊) 이야기도 관음보살의 여성 변모에 관한 내용이다. <탑상편>에 등장하는 조신(調信)의 꿈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태수 김흔공의 딸 역시 미망에 허덕이는 조신을 구원하기 위해 관음보살이 현신한 것이었다.

 

 

# 사회속의 여성성

 

폭력-공격성 치유 해독제 ‘공감’

 

정치 경제 전반에 걸쳐 적극 활용

지난 5월 서울 인사동에서는 ‘여성성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주제로 반신누드 이색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한국 라엘리안 무브먼트가 펼친 이 퍼레이드에 대해 주최측은 모든 사람들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성을 표현하고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여성성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한국 라일리안 무브먼트 모습.

 

 

이들은 “인류 사회에 끊이지 않는 증오와 폭력, 전쟁을 뿌리뽑을 수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여성성의 가치를 계발하고 확산시켜 나가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우주인이 애초 인류를 창조했다는 등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든 면은 많지만 여성성이 인간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공격성을 치유할 해독제라는 주장은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기업들은 생물적 특성에 맞춰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즉 여성의 모성 본능을 자극하거나 섹슈얼한 측면을 강조하는 제품 등을 출시하는데 여성성을 내세운다. 여성성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정치지도자들도 여성성을 많이 강조한다.

 

이들은 포용적 리더십 창의력 등을 내세우는데 주로 여성 지도자들이 이를 적극 활용하는 실정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도 폭력적 권위적인 점을 더 강조할 수 있으므로 여성성이 여성의 전유물이나 고유 속성이 아니라고 반문한다. 조직에서는 주로 새로운 조직관계로 이 여성성을 많이 강조하며 영화 문학 등에서 여성성을 찾는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불교신문 2351호/ 8월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