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알아내어야 함 경」

2008. 7. 22. 19:4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염불 불보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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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알아내어야 함 경」1/2(A2:3:5~6)


세존께서는 45년 동안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아주 다양하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우리는 그것을 대기설법(對機說法, pariyāya-desana)이라 부른다. 듣는 사람의 처한 상황이나 문제의식이나 이해 정도나 수행 정도나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설법을 하셨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자기 깜냥만큼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여 세존의 근본 가르침과는 다르게 의미를 해석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런 자들을 두고 세존께서는 본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세존께서는 본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두 부류의 사람은 여래를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 한다. 어떤 것이 둘인가?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할 가르침에 대해서 이미 [그 뜻이] 확정된 가르침이라고 하는 자와 [이미 그 뜻이] 확정된 가르침에 대해서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할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부류의 사람은 여래를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 한다.”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할 가르침에 대해서 이미 그 뜻이 확정된 가르침이라고 하는 자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이 있다.’라는 가르침은 그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하는 가르침(neyyattha suttanta)’이다. 왜냐하면 비록 정등각께서 ‘한 사람이 있다.’라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더라도 ‘궁극적 의미에서는 사람(puggala)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이런 가르침을 두고 ‘이미 그 뜻이 확정된 가르침(nītattha suttanta)’이라고 우긴다. ‘만약 궁극적 의미에서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존께서 ‘비구들이여, 한 사람이 있다.’라는 식으로 설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존께서 그렇게 설하셨기 때문에 궁극적 의미에서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잘못 이해하면서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할 가르침에 대해서 이미 그 뜻이 확정된 가르침이라고 우긴다.”(AA.ii.118)

그리고 이미 그 뜻이 확정된 가르침에 대해서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할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자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무상이요 괴로움이요 무아다.’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오직 무상이요 오직 괴로움이요 오직 무아라는 것이 그 뜻이다. 그러나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이것은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할 가르침이다. 나는 그 뜻을 밝힐 것이다.’라고 하면서 ‘참으로 항상한 것이 있다. 참으로 행복이 있다. 참으로 자아가 있다.’라고 거머쥐면서 [이미 그 뜻이] 확정된 가르침에 대해서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할 가르침이라고 우기는 것이다.”(Ibid)

우리 주위에도 잘못된 견해를 가진 이런 사람을 종종 만난다. ‘부처님은 브라흐마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범아일여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처님은 초기경 도처에서 참된 사람(참사람, 眞人)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자아나 개아는 실재한다. 그리고 부처님은 본자청정 객진번뇌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마음은 영원하다.’라고. 이런 사람은 특히 이 말씀을 잘 음미해볼 필요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