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도중 불리가사(在途中 不離家舍)

2008. 10. 4. 12:1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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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도중 불리가사(在途中 不離家舍)


재도중 불리가사   在途中 不離家舍

- 도중에 있으면서 집을 떠나지 않는다

                                   [臨濟錄]

임제 선사의 말입니다.
"한 사람은 겁(劫)을 논하여 도중(途中)에 있으면서 집을 떠나지 않고,
한 사람은 집을 떠났으되 도중(途中)에도 있지 않으니
어떤 사람이 인간계(人間界), 천상계(天上界)의 공양(供養)을

받을만 하겠느냐?" 하고 임제 선사가 물은 것입니다.

여기서 겁(劫)은 범어로서 "무한의 시간"이라고 역하며,

겁을 논하는 것은 영원의 뜻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상대적인 인식 방법에 익숙해 있으므로,

모든 것을 대립적으로 생각합니다.
목적과 수단, 결과와 방법―이렇게 둘러 나눠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노동도 살아가기 위해, 자기 집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수단으로 간주하여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일하는 것은 "도중(途中)"―다시 말해서
일하는 것 자체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 되지 않으면

인생은 풍요로워지지 않습니다.

일하는 것이 무엇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일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달팽이가 집을 등에 업고 걸어가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도중에 목적이 뒤따라야 합니다.

"올림픽은 이기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이 말은 프랑스의 교육가이며 올림픽 대회의 공로자였던
쿠베르탱(1863-1937)의 유명한 말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성공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노력 자체가 목적인 것입니다.

노력을 위한 노력이라고 말하는 것도 상대론(相對論)입니다.
그것도 초월하여 가치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 생활 태도가

앞에 인용한 말입니다.
선자(禪者)는 이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며,

일하는 것 자체가 선(禪)을 하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활 속에서 선(禪)이 계승되어 가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것도 선(禪)이고, 앉아있는 것도 선(禪)"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과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달리 생각지 말고,
각각 자기를 깨닫게 하는 도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