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오세암 봉정암)

2008. 10. 15. 11:28일반/생활일반·여행

728x90

 

오세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백담사에서 10㎞ 떨어진 곳에 있으며, 영시암을 지나 마등령으로 가는 길에 있다. 647년(신라 선덕여왕 13) 자장(:590~658)이 이 곳에 선실()을 지은 뒤, 관세음보살이 언제나 함께 있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관음암()이라고 하였다. 1445년(조선 세조 1)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이 곳에서 출가하였고, 1548년(명종 3) 보우()가 이 곳에서 기도하다가 문정왕후에 의해 선종판사로 발탁되었다. 1643년(인조 21) 설정()이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름을 바꾼 데 따른 전설이 전하고 있다.

설정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혼자 양양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동안 혼자 있을 4세된 어린 조카를 위하여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조카에게 밥을 먹고 난 뒤 법당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줄 거라고 일러주고 암자를 떠났다. 그러나 설정은 밤새 내린 폭설로 이듬해 눈이 녹을 때까지 암자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눈이 녹자마자 암자로 달려간 설정은 법당에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머리를 만지며 성불()의 기별을 주고는 새로 변하여 날아갔다. 이에 감동한 설정은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856년(고종 2) 남호가 해인사의 《고려 대장경》 2질을 인출하여 1부는 오대산 상원사에, 1부는 이 곳에 봉안하였다. 1888년(고종 25)에는 백하가 2층 법당을 짓고 응진전을 건립하여 16나한상과 각종 탱화를 조성, 봉안하는 등 크게 중건하였다. 그뒤 6·25 전쟁 때 일부 소실되었으나 지금도 수선 도량과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당 뒤로는 관음봉·동자봉이, 오른쪽으로는 공룡릉이 올려다보이며, 인근에 내설악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만경대가 있다. 주변에 백담사·용대자연휴양림·십이선녀탕계곡·옥녀탕계곡·장수대·대승폭포 등 관광지가 많다.

 

봉정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성지인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대청봉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데,

해발고도 1,244m 지점에 있어 백담사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기 위한 산행은 매우 힘겹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

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慈藏)이 중국 당(唐)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 17) 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6·25전쟁 때 화재로 자칫하면 명맥이 끊어질 뻔하였다.

 

 

Re:봉정암 석가사리탑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봉정암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층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다른 사찰의 여느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설악을 추억하며...!!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봉정암에서 백담사로 하산하는 길에

내 옆지기가 무슨 노래인가를 흥얼거린다.

무슨 노래냐고 물으니 "설악가"란다.

설악가라고? 처음 듣는 노래다.

20대 혈기왕성하던 시절 설악산을 종횡할 때

그 시절 산꾼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라며 사연을 들려준다.

 

"1969년 히말라야 원정대원들이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동계훈련 도중 눈사태로

10명이 매몰되어 사망하였는데,

그 현장을 목격한 대학생 산악인이

도봉산 산장에서 작곡한 노래"라고....

 

가슴이 아린다.

이토록 아름다운 설악산에

그토록 슬픈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있다니...!

그래서 설악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산인가보다.

 

이제 이 멋진 산을 뒤로하고

흰 눈 내려 개골산으로 이름 바뀔 때

반드시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며

하산 길을 재촉한다.

 

알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혹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여기 "설악가"를 소개한다.

 

<설악가>

1절. 굽이져 흰 띠 두른 능선 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을.

2절. 저 멀리 능선위에 철쭉꽃 필적에 너 와나 다정하게 손잡고 걷던 길.

<후렴>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