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서의 화두

2008. 10. 30. 10:0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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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서의 화두

“대립 차별 경계 떠난 생활이 선”

간화선은 생활선이다. 수행과 생활이 분리될 수 없듯이 선과 생활도 분리될 수 없다.
선은 생활 속에서 도(道)가 있는 그대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은 도(道)이고 대립과 차별, 경계를 떠난 생활이다.
 
<참선수행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닦는 과정이다.>
 
혜능 선사는 〈육조단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수행하기를 바란다면 세속에서도 가능한 것이니,
절에 있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 있으면서도 닦지 않으면
서쪽나라 사람의 악함과 같고, 세속에 있으면서도
수행하면 동쪽나라 사람의 착함을 닦는 것과 같다.”
 
여기서 서쪽나라는 서방정토, 즉 우리가 추구하는 청정한 불국토를
말하며, 동쪽나라는 이 세속의 생활세계를 일컫는다.
그런데 혜능선사는 생활 속에서 수행만 올곧게 한다면
그 생활 세계 자체가 이상적인 국토라는 말한다.
바로 이 삶의 세계에서 수행은 가치와 빛을 발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물론 고요한 산사나 선방에서는 수행이 더 잘 되는 건 사실이다.
모든 인연과 단절하여 깨끗하고 고요한 수행환경을 갖춘다는 것은
심신을 잘 닦아나가기 위한 훌륭한 조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것은 시끄럽고 복잡한 삶 속에서
고요할 수 있다는 것,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신경질 난다고 해서,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버럭 화를 내고 마음이 급하게 달아오른다면 그것은
멋진 인생살이가 아니며,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수행자의 모습은 마음이 쉬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이 편하게 쉬어 있고 바다처럼 잔잔하니 그런 사람에게
어떤 어려운 경계가 찾아온다 한들, 그것은 홍로일점설(紅爐一点雪)이다.
 
일체 감정 생각 화두로 잠재우고
 수행 올곧게 하면 ‘이상적 국토’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것 역시 일상생활 속에서 나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고, 욕망과 집착으로 눈멀게 하고, 화나게 하는 그 순간에,
거기에 그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하는 것들을 화두로
딱 멈추게 하는데 있다.
그런 것들을 억지로, 의식적으로 참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화두로 녹이는 것이다. 절대 억지로 참으면 안 된다.
도덕적 의지에 의해서 억지로 참을 경우, 그것이 나중에 쌓이고 쌓여
화병으로 도진다. 화두는 용광로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을 근원에서 녹여 버린다.
 
화두로 감정과 생각을 잠재워 내 속에 출렁이고 있는 공의 바다,
불성의 바다와 만나 나와 주변을 있는 그대로, 공(空)으로 관조할 때야말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깃들 것이다.
그것은 생활 속에서 공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요, 도가 꿈틀거리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시시각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소란한 소리,
감정의 분출, 대립의식들을 화두로 잠재울 수 있으려면 화두 드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아침만이라도
규칙적인 시간에 화두 드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행하라! 행하기 전에 두려워하지 말고 행하기 전에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망설이지 말고 일단 저질러라. 행하면 된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러나 어렵지도 않다. 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점차 화두 드는 정진력을 길러나가야 한다. 
 
조계종 포교연구실
 
[불교신문 2313호/ 3월28일자]

2007-03-24 오전 9:5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