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길을 밟으니/야보스님

2009. 1. 12. 14:4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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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길을 밟으니


젊어서부터 돌아다녀 먼 곳까지 익숙하니

몇 번이나 형악산을 돌고 소상강을 건넜던가.

하루아침에 고향 길을 밟으니

비로소 객지에서 보낸 세월이 길었던 것을 알았도다.


自少來來慣遠方  幾廻衡岳渡瀟湘

자소래래관원방    기회형악도소상

一朝踏着家鄕路  始覺途中日月長

일조답착가향로    시각도중일월장


- 야보(冶父)

 

 

   옛 선사들은 미혹의 세계에서 살다가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을 귀향이라고 표현하였다. 깨달음의 경지야말로 진정한 우리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한 삶은 아무리 영화를 누리며 화려하게 산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고생이 심한 객지의 나느네 생활에 불과하다.


   금강경에서 수보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이치를 깊이 이해하고 나서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그 동안 저는 이와 같은 훌륭한 가르침은 처음입니다.”라는 소감을 말하는 대목에서, 야보도천(冶父道川) 스님은 위의 게송으로 화답하였다.


   야보 스님은 생몰년대는 미상이다. 송나라 때의 임제종 스님이며, 강소성의 옥봉 사람이다. 처음에 동제겸(東薺謙) 선사를 만나 크게 깨닫고 건염(建炎, 1127~1130) 초년에 천봉산 정인사(淨因寺)의 만암계성(蹣庵繼成)의 문하에서 인가를 받은 기록이 전한다. 뒤에 안휘성 야보산(冶父山)의 실제(實際)선원에서 주지를 살았다. 그로 인해 뒷사람들은 그를 야보 선사라 칭한다. 금강경을 물으면 언제나 게송으로 답하였다. 그래서 선시로써 금강경의 내용을 선양하는 데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로 인해 후대의 많은 선사들로부터 추앙을 받는다.


   그토록 애써서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울겠는가, 웃겠는가. 오랜 객지 생활에서 비로소 고향에 돌아와서 그리던 부모 형제를 만나면 웃겠는가, 울겠는가. 이럴 때의 울음은 웃음과 같은 것이다. 울어도 되고 웃어도 된다. 그러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것이 더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래서 수보리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법화경의 이야기처럼 작은 이익을 찾아서 아버지를 버리고 멀리 도망가서 하늘가를 떠돌다가 돌아왔다. 우리들 중생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나와 남을 집착하여 고통 속을 헤매었던가. 수많은 겁 동안 미혹한 중생으로 살아 온 것을 이렇게 중원천하를 떠돌며 나그네 생활을 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다가 이제 비로소 고향 길을 밟게 되었다. 중생의 삶에서 깨달음에 이른 소감이 이와 같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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