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중수부 검사들 사찰 출입금지"

2009. 6. 15. 11:27일반/금융·경제·사회

728x90
  
다음 <아고라> '나누리' 화면 갈무리
ⓒ 다음 아고라
봉은사

 

봉은사가 지난 12일부터 내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 안내 현수막에 "대한민국 검찰 중수부 소속 검사들은 봉은사 출입을 삼가주십시오"라는 문구를 올렸다. 이 문구가 알려진 것은 다음 <아고라> 아고리언 '나누리'가 "봉은사에 중수부 검사들 출입을 금지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네요" 라는 글을 올리면서부터이다.  

 

아고리언 '나누리'는 봉은사 현수막을 보고 "저 살자고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저들을 ○○○라 부르겠"다면서 "저들에게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하신 말씀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고 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게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그리고 독재자에 고개를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나누리는 "중수부 검사님들이 봉은사에 들어가실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만 혹시라도 들어가시려면 명찰은 떼고 들어가셔야 할 것 같다"고 중수부를 비판했다. 과연 중수부 검사들이 명찰을 떼고 봉은사에 들어갈지 아니면 양심상 들어가지 못할지 궁금하다.

 

봉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20년 넘게 다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현수막 문구에 대해 <세계일보>는 봉은사 관계자 말을 빌려 "고인을 두번 죽이는 듯한 검찰의 박연차 수사결과 발표를 보면서 답답하고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침묵하고 있는 많은 국민들의 생각을 담자는 제안이 나와 49재 안내 현수막에 이같은 문구를 넣게 됐다"고 보도했다.

 

누리꾼들도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잘구르마'는 "말로는 애도한다면서 수사기록은 영구봉인하고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혐의가 있다? 한심한 중수부 검사들… 증거 없어서 언론플레이로 시간끌며 쩔쩔매다가 노 대통령 서거로 공소권 없음 결정내리면서 한시름 덜었다고 좋아했을 것이란 거 세상이 다 안다"면서 검찰 수사 발표를 비판했다.

 

'산토리니'는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 불교가 움직이고 있고, 천주교도 이제 움직이니. 개신교만 나서면 되겠군요"라고 하여 종교계가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향기나는남자'는 "기독교인이라는게 왜 이리 창피합니까? 우리 교회 목사님이 촟불 좌빠들이라는 말에 너무나 큰 상처가 돼서 다른 교회로 옮길려는데 개독이라는말 듣지 않는 좋은교회로 옮기고 싶습니다"고 하여 자신이 기독교인을 안타까워했다.

 

'사람을 사랑하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게 불변의 진리라면,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면 어찌 이런 일들이 있을수 있겠는가. 모태신앙으로 쉰이 넘게 살아온 내가 이 나이에"라고 답답해했다. 공의와 정의를 잃어버린 이명박 정권을 향한 기독교인의 울분이었다. 

아픈꽃-이해인 /그림 감상

아픈 꽃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 거래“

 

-이해인, ‘친구야 너는 아니’ 중에서-

 

창 밖으로 가득 들어오는 봄볕이 눈부신 일요일 오후. 추위에 움추린 마음을 열고 창문 곁에 서서 부활이 부른 “친구야 너는 아니”를 듣는다. 나만 아픈 줄 알았는데 나무가 꽃을 피울 때도 많이 아프단다. 노래를 듣고 있자니 나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는 위안과 함께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엄살 피운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노래를 되풀이해서 들으며 12층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아파트 정원의 나무들을 향해 나는 조용히 물어본다. 너도 많이 아팠니?

 

봄이다.

아직 끈질긴 겨울을 완전히 몰아낸 것은 아니지만 조만간 봄이 지상을 접수하리라는 징후는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눈치를 살피며 흙더미를 밀어 올리는 돗나물과 밥그릇 가득 노란 밥알을 고봉으로 쌓아 둔 산수유꽃 속에 벌써 봄 조짐이 깃들여 있다. 햇살 좋은 날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가도 찬바람 불면 잽싸게 문을 닫아버리는 매화꽃. 언제라도 환한 웃음으로 걸어 나오려고 매혹적인 옷을 입고 있는 백목련. 세상 속으로 튀어나가기 위해 매화꽃과 산수유 옷자락을 잡고 조바심치는 개나리, 진달래, 명자나무, 박태기나무, 제비꽃, 민들레꽃... 앙칼진 꽃샘 바람이 봄을 몇 차례 더 들쑤시다 가겠지만 그러나 이미 지상을 차지한 온기를 몰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음모를 꾸미듯, 혁명을 준비하듯 서슬 퍼런 겨울의 감시 속에서도 해방을 꿈꾸며 은밀하게 견뎌온 세월. 죽음 같은 세월을 이겨내고 세상 구석구석을 지배한 점령군의 무기가 창, 칼이 아니라 부드러운 꽃이라니. 역시 봄답다. 사람들이 봄꽃을 보며 열광하는 이유도 어쩌면 겨울을 무너뜨린 무기가 어처구니 없는 연약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비밀이 겨울 같은 냉혹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이라고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조희룡,<홍매>(대련), 종이에 담채, 각 127×30.2cm 서울 개인장

 

추위에 결박당한 포로가 구원병의 말발굽처럼 들려오는 매화꽃을 발견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 환희로움을 조희룡(趙熙龍:1797-1859)의 <홍매(紅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위아래로 긴 축화(軸畵)인데 똑같은 형식의 그림을 쌍이 되게 나란히 그린 대련(對聯)이다. 그러니까 두 작품이 각각 독립적으로 그려졌지만 한 작품은 다른 작품이 있어야 비로소 구색이 맞게 구성 되었다는 뜻이다. 두 작품을 붙여놓고 보면 굽이치며 그려진 두 그루 매화가 교차하듯 배치되어 있어 왼쪽 하단의 매화가 오른쪽 상단으로 뻗어가는 것 같고 오른쪽 하단의 매화가 왼쪽 상단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또한 추사체를 충실하게 계승한 글씨체로 제시를 두 작품의 화면 바깥쪽에 적어 넣음으로써 그림 테두리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대련 형식에서만이 맛볼 수 있는 조화로움이다.

 

<홍매>는 죽은 듯 웅크리고 있던 두 그루 늙은 매화가 봄이 되자 여의주를 얻어 하늘로 승천하는 용처럼 격렬하게 피어나는 작품이다. 용트림하듯 뒤틀린 매화나무는 화면 밖으로 빠져나갔는가 싶으면 머리를 추켜세워 나무 꼭대기 부분에서 가장 화사한 붉은 꽃을 토해낸다. 이것은 오랜 풍상을 겪으면서도 꽃을 피우겠다는 정념을 한시도 잊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매화가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게 된 것도 꽃에 대한 열망으로 추위와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희룡은 매화를 무척 사랑하여 생활 자체가 매화에 젖어 있었다.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는 편액을 걸어 두었고 침실에는 매화 병풍을 펼쳐 놓았다. 또 매화 벼루에 매화 먹을 갈아 매화시를 쓰면서 매화차를 마셨다고 하니 이쯤 되면 매화에 대한 편벽(偏僻)이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희룡이 이 작품을 제작했을 때는 ‘매화백영루’가 걸린 자신의 누각에서가 아니라 영광 임자도로 유배 갔을 때였다. 60이 넘은 노인네가 ‘독기 서린 바다, 적막한 물가, 황량한 산과 고목 사이에 달팽이집같이 작은 움막 속에서 움츠려 떨며’ 지내는 생활을 하다 ‘일체의 고액을 극복해가는 법’으로 매화를 그리게 된 것이다.

무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이른 봄의 개화(開花)는 감동적이다. 하물며 겨울 같은 살얼음판에 내던져진 사람이 목격한 개화의 현장이 아닌가. 모르긴해도 언제든지 울 준비가 되어 있던 조희룡같은 예술가는 매화꽃이 질 때까지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을 것이다. 처음 눈물은 희망으로, 마지막 눈물은 아쉬움으로.

 

                      전기,<매화초옥>, 종이에 담채, 28×33cm, 국립중앙박물관

                                      전기,<매화초옥> 세부와  제시 부분

 

이렇게 좋은 날에 마음에 맞는 벗이 찾아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기(田琦:1825-1854)의 <매화초옥(梅花草屋)>은 그런 간절한 바램을 담고 있다. 매화꽃이 눈송이처럼 피어나던 날, 산속에 있는 초옥에서 선비 하나가 문을 열어놓은 채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산이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고 하늘과 개울마져 먹구름인 것을 보면 조만간 봄을 시샘하는 눈이 한바탕 더 쏟아질 모양이다. 눈이 내리기 전에 친구가 빨리 도착해야 할 텐데...기다리는 친구의 마음에 조바심이 인다.

 

초옥 안에서 녹색 옷을 입고 피리를 불고 있는 사람은 오경석(吳慶錫:1831-1879)이고, 어깨에 거문고를 걸치고 다리를 건너고 있는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린 전기다. 전기를 기다리고 있는 오경석의 설레임은 그의 집 지붕에 붉게 물들어 있다. 전기가 입은 붉은 옷과 같은 색으로 그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초옥 안에 앉아 있지만 친구를 기다리며 수십 번도 더 문밖을 들락 달락한 흔적이 사방에 남아 있다. 그의 옷 색깔과 똑같은 녹색의 태점이 산과 연못과 집 주위에 찍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매화초옥도>는 송나라 사람인 임포(林逋)가 절강성 서호 부근의 고산이라는 곳에 서옥(書屋)을 짓고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아 은둔하며 살았던 고사에서 유래된 그림 이다. 멋진 상징성으로 인해 임포의 고사는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제목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조선 말기에 화가들은 임포 대신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어 그림 속에 현실감을 불어 넣었다.

 

그런데 그림 속 주인공이 오경석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오경석이 피리를 불고 있는 지, 전기가 거문고를 들고 가는 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림을 아무리 확대해서 봐도 오경석이 피리를 불고 있다는 흔적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궁금증을 일시에 해결해주는 것이 오른쪽 하단의 짧은 제시(題詩)다. ‘역매인형초옥적중(亦 梅仁兄草屋笛中) 고람사(古藍寫)’라고 적혀 있다. ‘역매’는 오경석의 호이고 ‘고람(古藍)’은 전기의 호다. 그러니까 해석하면 역매 오경석이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는 중(草屋笛中)’이라는 뜻이다. 역매가 피리를 불고 있으니 전기는 거문고를 들고 가야 박자가 맞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어깨에 올려 놓은 물건 길이가 얼추 거문고 정도 되어 보인다. 겨우 한 줄 써 넣은 제시가 수많은 붓질을 대신한 셈이다. 간략한 필치로 그린 그림 성격상 초옥 속 인물에게 피리를 쥐어주는 대신 제시로 암시하는 것이 훨씬 시적(詩的)인 표현법이다.

 

전기와 조희룡은 모두 추사 김정희를 스승으로 삼았다. 그러나 김정희는 조희룡보다 30여년 뒤에 태어난 전기를 더 아꼈다. 그들은 모두 중인출신이었지만 시문에도 능하고 문기 짙은 그림을 그린 전기의 예술세계가 김정희의 예술관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는 30세에 요절을 해서 스승을 안타깝게 했다.

부활의 노래를 들으며 조희룡과 전기의 매화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오늘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꽃을 피우기 위해 여전히 아파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꽃 얘기를 해줘야겠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라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얘기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