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성지(聖智)의 '앎이 없음'은 <'반야'의 없음.>이요,
속지(俗智)의 '없음을 앎'은 <'참 이치'의 없음>이다
ㅡ'앎이 없음'은 체(體)요 '없음을 앎'은 용(用)이다. ㅡ
그러므로 <'반야'와 '참 이치'는
'작용'으로 보면 같으면서도 다르고,
'고요함'으로 보면 다르면서도 같다>.
같기 때문에 '이것'과 '저것'에 생각이 없고,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비추는 공(功)'을 잃지 않는다.
'지극한 이치'(至理)는 '문자'가 없고,
해탈도 속박도 아니면서, 신령하게 통하는것>이,
물건에 응하면서 언제나 눈앞에 있다.
눈앞에는 물건이 없는데도 분명하게 나타나서,
사람이 이르를(至) 필요도 없으며,
그 체성은 스스로 비고 오묘하다.
ㅡ 법 융(法融) ㅡ
21
'옛 부처'의 도법'(道法)이
본래 생멸법이 아니므로,
따라서 '조작'(造作)도 없고
'베풀어 행함'(施爲)도 없다.
따라서 '닦는 자'(修行者)와 '방일한 자'(放逸者)가
모두 '지음이 있는 자'(作爲者)이다.
그러므로 '공적함'을 기뻐함도 온당치 않고,
'방일함'도 또한 그릇됨이니, 이 모두가
자기의 정견(情見)으로 묶어 놓음으로써,
'성스러운 성품'(聖性)을 어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수도자는
'정혜의 힘'(定慧力)으로써 스스로 잘 관찰하여,
모름지기 그 '일'에 체(滯)하지 말지니라.
'법성'의 '성품 없음'(無性)으로써
'승한 바'(所乘)를 삼음을 일러 '도(道)라 하고,
'성품 없는 선정'으로써
능히 '의지한 바 온'(蘊)을 다스리는 것을 일러
'장'(場)이라 한다.
또한 '신'(神)이란,
의지함이 없고 성품 없는 가운데의 '큰 지혜'이니,
생각하지도 않고 하지(作爲)도 않으며,
형·질(形質)이 없이 평등하게 법계에 두루하여,
만유를 다 환히 아는 것을 이름하여 '신'(神)이라 한다.
유마경(維摩經)에 이르기를,…
『대저 '법'을 구하는 자는 '모든 법'에서 모름지
기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하며,
내지 ,'몸'의 실상(實相)을 관하매> '부처'를 보는
것도 그러해야 하리니,
내가 '여래'를 관하매, 전제(前際)가 옴도 아니요,
후제(後際)가 감도 아니며, 또한 지금(現今)에 머
무름도 없음이니라.』 고 했다.
대의(大意)로 논하면,ㅡ'부처 몸'과 '뭇 바다'가
'가 없는 법계(無邊法界)에 겹겹이고,
《하나하나의 몸이 널리 일체를 모두 함용하여
가(邊)가 없어서, <이 '한 몸은 '법계'로써 양(量)
이 되므로>, 자·타(自他)의 경계가 도무지 없고,
<'법계'는 바로 '자신'의 두루함인지라> 내·외(內外)와
능소(能所)등 '범정의 집착'(情執)이 번듯하게 끊어졌느니라》.
22
이 마음. 마음이 그대로 '부처'라
시방세계에서 으뜸가는 영물(靈物)이거늘
또 다시 '자재'하고'묘한 작용'을 구하니,
갈련하구나.
이 모두가 '한 마음'의 진실만 못한것을,...
온갖 법, 온갖 마음이 어떻게 다르관대
어찌 수고로이 경(經)의 이치만 찾는고.
심왕(心王)은 본래 많이 앎을 여의었으니
지혜로운 이는 다만,
'배움 없는 지위(無學位)'를 밝힐 뿐이로다.
- 포대(布袋) -
좋은 마음이 고운 얼굴을 만든다
남을 증오하는 감정은 얼굴의 주름살이 되고, 남을 원망하는 마음은 고운 얼굴을 추악하게 변모시킨다.
감정은 늘 신체에 대해서 반사 운동을 일으킨다.
사랑의 감정은 신체 내에 조화된 따스한 빛을 흐르게 한다. 그리고 맥박이 고르며 보통 때보다 기운차게 움직인다. 또 사랑의 감정은 위장의 활동을 도와 소화를 잘시킨다.
이와 반대로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감정은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동시에 맥박을 급하게 하며, 더 나아가 위장의 운동이 정지되어, 음식을 받지 않으며 먹은 음식도 부패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은 무엇보다도 우선 건강에 좋은 것이다.
-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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