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차별경 2탄 삼시업과 업장소멸 기도

2009. 11. 22. 21:4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업보차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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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에 한 어미의 뱃속에서 나온 같은 핏줄의 형제들이건만 
살아가는 복이 다르고 인생살이가 다 다른 이유는 
지은바 업보에 따른 과보가 다름이라 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업보로 인한 차별의 세계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번 주에도 전번 주에 못다 해드렸던 
업보차별경의 나머지 부분을 해드리기로 했기에 오늘 법문은 그 연결된 법문입니다.  
먼저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저, 중생들이 지은바 업을 받는 시기가 나누어져 있으니
현생에 지어 현생에 받는 경우가 있고, 금생에 지어 다음 생에 받는 경우도 있고, 
현생에 지어 다다음 생인 내내생에 받게 되는 업이 있으며, 
언제 받게될지 모르는 업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로 이 삼시업에 대해 서두로 말씀드리고 나머지 못다 해 드렸던
업보차별의 세계를 열어드리겠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라는 신구의 삼업으로 짓게 되는 행위의 결과를
즉 보를 받게 되는 시기의 빠르고 느린 경우를 셋으로 나누어 
금생에 지어 금생에 바로 받게 되는 순현업이 있고, 
금생에 지어 내생에 받게 되는 순생업이 있으며, 
금생에 지어 다 다음 생 이후에 받게 되는 줄여서 순후업이라는 업보가 있습니다만, 
금생에 지어 언제 그 과보를 언제 받을지 모르는 부정보업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바 삶의 엎치락뒤치락은 
로 앞의 과거생의 업으로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심불급 중생이 시 삼무차별이요, 심시불이요 심시불법이라.  
또 심외무법이라 마음 밖에서 다른 법을 찾지 말라 했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비롯하여 시작됨이라 했습니다. 

 
바로 마음이 부처라면 몸은 마음부처를 모셔둔 법당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마음부처를 모셔둔 법당을 소흘하게 관리해서야 되겠습니까? 

이 몸 법당을 잘 관리하는 것은 열심히 가꾸고 화장하고 보톡스 주사맞고,
쌍꺼풀 수술하고, 머리에 머리털 심기가 아닙니다. 
그런 몸 법당 가꾸기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몸 법당 가꾸기는 바로 팔정도와 육바라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모방은 제 2의 창조라는 말이 있듯이 
흉내라도 내보려고 할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지고 몸 법당은 제대로 가꿔지는 것이지 
이마 째서 위로 잡아당긴다고 몸 법당이 가꿔지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고기 한 점을 먹어도 악한 이에게 먹히면 악한 이와 한 몸이 되어 
악업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고, 수행자가 한 점을 먹게 되면 수행자와 한 몸이 되어 
수행에 동참하여 선업을 짓게 될 것이니 축생은 누구와 한 몸이 되기를 원할까요.  
답은 다 아실 것입니다. 
마음이 부처라면 몸은 법당이니 뭘 먹고 안 먹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먹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이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맛에 탐착하여 축생을 도살하는데 동참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는 계율을 견해에 떨어져 이건 먹고 저건 안 먹고 하는 
분별심에 떨어지는 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준 원광법사는 살생유택이라 했는
살생을 어찌 택하고 가려서 한단 말입니까? 
세계기독교 국가의 대통령으로 근본기독교인인 
미국의 부시는 살생유택을 하고 있을까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합법이고 일상에서 살인을 하면 죄가 됩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은 인간들이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놓은 
관념의 유희일 뿐인 것입니다. 

 
원광법사는 살생유택에서 말하기를 만약에 사냥을 한다해도 
새끼 딸린 어미는 죽이지 말 것이며, 새끼를 밴 어미도 죽이지 말 것이며, 
어린 것은 죽이지 말며, 한 입도 안되는 것도 죽이지 말며, 
장난삼아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서산대사는 말년에 열반에 드시면서 부휴스님 등과 같은 
선지식 제자들에게 당부하시길 
“나와 너희는 도탄에 빠진 민초들을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왜구를 무찌르며 살생의 업을 지었도다. 
우리의 뜻은 백성들을 위함이었지만, 허나, 
살생은 살생이기에 너희의 법맥은 후대가 짧다. 
그러므로 전란이 일어난 지도 모르고 심산유곡에서 수행만을 했던 
편양언기에게 나의 법맥을 전하도록 한다.” 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인과의 흐름인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지혜를 함께하는 참 신행생활을 해나가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 만이 아니라 다겁생래에 알게 모르게 지었던 
그 모든 업들로 인해 다가오는 장애들을 벗어나고 비껴가고 
줄여갈 줄 아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나가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실 때, 자신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고, 
주변의 가족들까지도 어딘지 모르게 일상이 달라져 가게 되고 그럼으로써 
가정엔 항상 불보살님의 가피가 함께하고 그런 가족들에겐 
크게 안 좋은 일은 작아지고 작은 불행은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자신들의 마음
먼저 우러나야 만이 행해지는 마음의 조화인 것입니다. 

 
이제 전번 주에 못다 해드렸던 업보차별경의 내용을 알기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가족들을 대표해서 좋은 기운 받아가고 
부처님 복을 많이 가져가셔야 되는데 그래서 가족들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전번에 제가 말씀드렸지요. 
부처님께서 탁발을 나가시는데 어떤 사람이 세존께 공양을 올리면서 말하기를 
위대하신 스승님이시여! 저기에서 오는 
저 교만한 바라문을 위해서 설법을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 부자의 땅을 소작하는 저희들의 
삶이 좀더 괴롭힘이 작아지도록 해주소서. 하고 간청하자, 
세존께서 흔쾌히 승낙하시고 걸어오는 바라문의 앞으로 가서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로 빙그레 웃자 그 바라문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버리자, 
세존께서 신통력으로 왼쪽에서 그를 바라보고 웃자 반대로 돌려버립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 사람이 부처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상하 좌우로 돌릴 때마다 신통력으로 나타나자 나중에는 
두 눈을 꽉 감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탄식을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무연중생 불 제도라” 인연이 없는 중생은 
나도 어찌할 수가 없구나! 하셨다 듯이 무작정 가족들에게 
야! 이거 봐 봐! 하지 말고 약을 잘 파셔야 되요. 
당부 드리는데 가족들을 부처님과 무연중생으로 만들지 마세요. 
아마,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 바라문과 한 치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업보차별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의 몸을 받아 어차피 한생을 살면서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는 
존재가치를 만들어가는 삶을 살 것인가, 있으나 마나한 삶을 살 것인가, 
있어서는 안 될 존재로 끝나버리고 말 것인가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듯, 부처님은 그것을 업이라 불렀습니다.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인데도 살아가는 복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마음 씀씀이도 모두 다르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겠습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닮은 사람은 없고 
설사 비슷하다 해도 살아가는 것이 다르니 
이것이 바로 불가설이라 말로 다할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욕지 전생사이면 금생수자시요, 욕지 내생사이면 금생 작자시라, 
욕지 노년사이면 초년작자시라 하듯이,” 
자신의 지금 살아가는 생활을 보면 전생에 
어떤 인과 연의 씨를 어떻게 뿌려 어떤 농사를 지었던가를 알 수 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금 삶의 자세를 보면 죽어 다음 생을 알 수 있고 
초년을 보면 자신의 늙어 노후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이 경을 들으신 여러분들은 중생들의 삶의 인과 연의 흐름을 살피시고 
살아가는데 있어 모든 장애라 여겨지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연유임을 알아 
천일 동안의 기도를 백일씩 끊어서 하는 오늘 이 기도의 입제만이 아니라 
남은 여덟 백일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한 기도가 매월 말일에는 사시기도를 끝내고 점심공양 후, 
자비참회기도가 당일 철야로 시작하여 끝내게 됩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라 한 생각만 바꾸면 천하의 효자도 되고 어진 사람도 될 수 있고 
한 생각 그릇되면 온갖 죄를 짓게 될 것이니 일상생활에 자신의 생각을 
매사에 지극히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길들이기 시작하면 
주변의 환경과 인연들이 달라 보이는 법이니 
“자작자수”라 결국에는 내 주변의 이 모든 꼬이고 맺힌 일들이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고 있는 것임을 여실히 알아들으시길 바라
두루 동참하시여 다겁생래의 업장들을 소멸시키시어 
남겨진 여생을 마음 부자로 살아가시기를 권청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도종환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그 사람이 녹이 슬어 못쓰는 연장처럼 
망가지기를 바라는 일이다. 
내 마음이 그에게 다가가 그의 몸이 산화되는 쇠처럼 
군데군데 벌겋게 부스러지기 시작하여 
연모 구실을 못하게 되길 바라는 일이다. 
그래서 버림받거나 버려지게 되기를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곁에 있는 내 몸도 
함께 녹이 슬어 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욕하고 비난하는 일은 
내 비난이 독이 되어 그가 쓰러지기를 바라는 일이다. 
그에 대한 나의 비난의 소리가 귀에 들어가 
그도 아파하고 상처받기를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난과 저주는 독초와같아서, 
그에 대한 독설이 계속되는 동안 독을 품고 있는 일이어서 
그 독은 내 몸에도 똑같이 스며든다. 
그 독으로 내가 먼저 쓰러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은 
예리한 칼날로 그의 마음 한 복판을 베어내는 일이다. 
내 원망하는 소리가 그의 귀에 다가가 
그가 피 흘리며 아파하기를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과 육신에 칼질을 하는 동안 
나도 그 칼에 몸 어딘가를 베이는 일이다. 
나도 수없이 피 흘리며 상처받는 일이다. 
나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으며 
상대방만 피 흘리게 할 수 있는 싸움은 없다. 
 
미워하지 않음으로써 미움을 넘어서고, 
분노하지 않음으로써 불길로 나를 태우지 않으며, 
욕하고 비난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먼저 쓰러지지 않고, 
원망하지 않음으로써 원망을 극복하고, 
성내지 않음으로써 상처받지 않는 일은 
상대방도 나도 죽이는 일에서 벗어나 
나도 살리고 상대방도 살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