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무난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승찬대사

2009. 12. 6. 19:5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신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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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찬대사 

제3조인 승찬(僧璨 : ? ~ 606) 대사는가계(家系)가 분명하지 않다.
혜가 대사에게서 법을 이어받은 후 서주(西周)의 환공산(晥公山)에 은거하였다.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불교를 탄압할 때는, 일정한 주거지 없이

태호현(太湖縣)의 사공산(司空山)을 왕래하며 사람들 모르게 10여년을 지냈다.


승찬 대사가 많은 대중들을 모아놓고 설법할 적에 한 사미가 있었다.
나이는 겨우 14세이고 이름은 도신(道信)이라 했다.
도신은 승찬 대사 앞에 나와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의 마음입니까?"

이때 승찬 대사가 되물었다.

"그대의 지금 마음 상태는 어떠한가?"
"저는 지금 무심(無心)입니다."
"그대가 무심이라면 부처님에게
무슨 마음이 있겠느냐?"

승찬대사의 말이 끝나자 도신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스님, 저에게 해탈의 법을 일러주십시오."

승찬대사는 다시 되물었다.

"누가 그대를 속박하는가?"
"아무도 속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속박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대는
해탈한 사람인데 어째서 해탈을 구하는가?"

도신은 이 말에 크게 깨달음을 얻고 스승 곁에8,9년 동안 있다가

길주(吉州)로 가서구족계를 받고 돌아왔다.
이때 승찬 대사가 도신에게
법을 전해줄 것을 선언하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花種雖因地 (화종수인지)
從地種花生 (종지종화생)
若無人下種 (약무인하종)
花種盡無生 (화종진무생)

"꽃은 땅을 인연하여 피어난다.
땅에서 꽃이 피기는 하지만
씨를 뿌리는 이가 없으면
꽃이 피어날 수가 없다."

승찬대서는 수양제(隋煬帝)의대업(大業) 2년(606)에 입적했다.
그 후 당나라 현종이 감지(鑑智)선사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탑호(塔號)를 각적(覺寂)이라 하였다.

그가 남긴 저술에는 그 유명한"신심명(信심銘)"이라는 명저가 있다.
"신심명에는 그의 선 사상이 단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서두에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이란 구절이 나오는데,
'지극한 도는 걸림이 없다.
오직 시비를 가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승찬 대사는 또 말했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二由一有)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 (一亦莫守)"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대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

 

 

이연>님의 포토기행 11

 

1 산수유



붉게 영근 산수유열매를 보니

어느새 가을은 떠날 채비가 끝난 것 같다.

 

이제 달랑 한장 남은 달력을보며

유종의 미라는 말을 다시 떠올린다.

 

해마다 이맘때면

늘 생각하는 말이긴 하지만...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산수유 열매.  

 

 

 

2  영남의 알프스-간월재

 

 

3 왕피천 散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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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한국의 마지막 오지라 일컫는

왕피천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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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첩첩 물첩첩

심산유곡 중의 심산유곡.

 

왕피천.

 

그 왕피천을 지나다 뜻밖에 만난 폐사지.
그리고
시골아낙처럼 수줍게 서있는 삼층석탑 하나.

어줍잖은 답사쟁이의 가슴을 관통하는
반가움과 설레임의 울림.

그것은 정녕
폐사지에서만 만나게 되는
폐사지만의 낭만.

 

 

 4. 의성 고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