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이지 말그래이(不 欺 自 心)

2010. 3. 4. 22:2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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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 欺 自 心

“쏙이지 말그래이.”

 

 

성철 스님은 생전에 자신을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부처 앞에서의 ‘3000배()’를 요구했다고 한다.

절하느라 진이 빠진 상대방이

‘이제 진리를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그의 말은 짧고도 한결같았다고 한다.

“쏙이지 말그래이.”

누구를 속이지 말라는 것일까.

 

성철 스님의 말이 가진 핵심은

 

그가 종종 썼던 휘호에 나타나 있다. 

 ‘불기자심().’

 

그가 경계한 것은 ‘자기 마음’을

속이는 일이었다.

 

      우리님들 오늘 혹시

자신이나  타인을  

속이지는 않으십니껴 ?

 " 쏙이지 말그레이 ",

 

 (__) (--) (^^)

 

 

 

 

우리의 불교가 황금만능주의에 오염된 이후, 많은 고승대덕(高僧大德)들을 무자비하게 박살낸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수행정진(修行精進)이나 하시게 하고, 중생(衆生) 제도나 하시도록 가만히 두었더라면 이 나라 불교계의 법맥(法脈)으로서 찬란히 빛날 훌륭한 스님들을 억지로 모시다가 감투를 쓰시게 하고는  명예롭게 그 자리를 떠나시게 한적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 불교계는, 왜 그런 훌륭한 스님들을  나무위에 올라가게 하시고선 취임식에서 피운 향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그 나무에 도끼질하고 불을 질러 떨어지게 하는지요.

그것을 좋게 말해서 종권(宗權) 다툼 이였지,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이권(利權)다툼이고 돈 때문이라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스님이라도 종정이나 총무원장이라는 감투만 썻다하면 몇 달 못 갔서 싸움에 휘말리고, 부정부패하며 무능한 스님이라면서, 요즘말로 스타일만 구긴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허구한 날 이어지는 추악한 일연의 일들이 왜 ? 무엇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가요 ?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황금만능주의가 빚어낸 추태가 아니던가요.

천육백여년이란 장구한 역사를 가진 한국 불교 사에서, 가장 부끄러웠고 치욕스러운 사건으로 지적된 설악산 신흥사 사건의 원인은, 서로가 주지(住持)를 하겠다는 여섯 명의 스님들의 시비에서 비롯되었다는 공식적인 보고가 있었습니다.

모든 욕심으로부터 초월하여, 무소유(無所有)의 즐거움을 본보기로 보여주어야 할 스님들이 주지 자리 하나를 놓고, 여섯 명이 경합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던가요,

그것도 청정(淸淨) 결백(潔白)하고 탐욕(貪慾)을 버리는 것을 으뜸으로 하는 승려(僧侶)사회에서, 감투가 왜그리 필요했는지요 ?  또 스님들이 수도하면서 고급 중대형 승용차들이 왜 필요하던가요 ?

그 절이 아니면 수행을 할 수 없고, 감투가 없으면 득도(得道)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 아니면, 고급 승용차가 없고, 그 절이 아니며는 중생을 제도 할 수 없어 그러하던가요 ? 

이제라도 늦지 않습니다, 오늘의 한국 불교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시끄러웠고, 무엇 때문에 그토록 치사한 싸움을 했으며, 왜 지탄을 받아야하고, 무엇 때문에 치욕적인 비극을 겪어야 했는 가를 솔직하게 밝히고 시인하여,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어 그 근원을 도려내는데 주저함이 없어야하고 아픔을 참을 줄 알아야하고, 물러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씨앗도 껍질이 찢어지는 아픔을 격지 않고서는 싹을 자라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한국 불교도 껍질이 찢어지는 아픔과 썩은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국 불교를 욕되게 하고 한국 불교를 지탄받게 했든 마구니(마귀의 일종)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한국 불교가 제갈길를 제대로 갈수 있는지를 솔직하고 진실하게 생각 해봅시다.

사부대중(四部大衆)여러분 !

불교의 분쟁을 보고 "돈"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시주금(施主金)이 많이 들어오고 관광 수입이 많이 들어오는 사찰(寺刹)의 주지 자리는 서로 맡겠다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을 보면 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곧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도 수(信徒 數)가 많지 않고 시주 금도 별로 들어오지 않은 산골에  퇴적해 가는 말사(末寺)에는 주지로 가겠다는 승려가 없는 것을 보아도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입이 많은 사찰의 주지를 누가 하느냐 하는 것을 두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 불교의 자화상이고, 승려들의 진면목(眞面目)들인 것입니다 그렇다하여 진실로 구도의 길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면서 정진하는 스님들이 이 땅에는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도 한국의 불교는 어느 나라보다도 고승 대덕이 많이 있어, 법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신문이나 방송에서, 불교의 분쟁을 가리켜 "잿밥 싸움"이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해 왔고, 그런 치욕적인 보도에 대하여 단 한번이라도 공식적인 항의 한번 제대로 해본 사실이 없고 보면, "잿밥"  즉 돈 때문에 일어나는 싸움임을 간접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시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그 동안 쉴새없이 계속 되어온 불교의 분쟁이 잿밥 때문 이였을까요 ?

사부대중 여러분 !

만약에, 진실로 불교의 분쟁을 일으킨 마구니의 정체가 돈 때문 이였다면 그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돈 때문에 빚어진 싸움이라면 스님들로 하여금 저, 치사하고 더러운 돈을 만지지 않도록 해드리면 이 땅에서 불교가 다시는 분쟁에 휩싸이지 않고 부끄러워 지지 않을 것입니다.

스님들이 왜 부모 형제와 처자식을 갖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삭발염의(削髮 染衣)하고 구도(求道)의 길을 택하였습니까, 재산도 명예도, 부귀와 영화도, 부질없다고 훌훌 털어 버리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어머님의 하소연도 외면해야했든 아픔을 겪으면서 출가하신 스님들이 아니신가요.
이러한 스님들이 돈은 왜 필요하고, 명예는 왜 필요하던가요

스님이 정치를 해서 정치자금이 필요할 리 없고, 스님께서 처자식이 있어 생활비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옷은 신도들이 해주니 의복 값에도 돈들일 없고, 주지 자리와 감투를 돈을 주고 파는 것이 아니여서 거기에도 돈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유흥장에 드나들지 않으니  접대비나 술값이 들지 않을 것이고, 스님들이 도박이나 투기를 하지 않으니 도박 밑천이나 투자 자금이 필요치 않으니 스님이 돈이 필요한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돈이 필요한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불교가 거듭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쉽고 간단합니다, 수입이 좋은 사찰들은 신도들이 합리적으로 운영하여, 산속 말사(末寺)에서 용맹정진 하는 스님들이 필요한 것들을 뒷바라지하고 스님들은 사찰 운영에 관여를 못하시게 하여돈 때문에 스님들이 용맹 정진 못하고 욕먹는 일이 없도록 하며, 돈 때문에 치사 해지지 않고, 돈 때문에 싸우지 않도록 하시면, 한국 불교는 어느 나라 불교에도 손색이 없고 부끄럽지 않는 고승 대덕들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돈으로 표현되는 재물이라는 것이 원래가 자칫 잘못 다루면, 분쟁이 개입되기 마련입니다 없든 욕심이 생겨나고 순진한 사람을 유혹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다루는 문제는 행정 조직에서나 기업 조직에서도 과학적이고 투명하면서 합리적으로 다루어 말썽 없이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말썽이 생기는 것은, 들어오는 액수와 나가는 액수가 틀리거나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 돈을 지출하다보면 말썽이 생기는 것입니다 때문에 들어오는 액수를 공개하고, 쓰는 곳과 지출한 금액을 공개 처리하고 미심쩍으면 감사를 하여 밝히는 공개 재정 제도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두사람이  제멋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공정한 재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제도적 방식과 장치가 있는 것입니다  수행정진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 해야겠다는 큰 원력 외에 돈을 벌고 명예를 얻기 위해 출가한 스님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시주 금이 많이 들어오고 관광 수입이 많이 들어오는 사찰부터 우선 선별하여 철저한 공개 재정제도를 엄정하게 실시한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고민했든 것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불교 분쟁이 종식(終熄)될 것이며, 둘째는 불필요한 분쟁과 소송비용을 후학(後學)양성과 노후(老後) 복지 자금으로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평생을 구도(求道)에만 힘써온 스님이,  노후에 늙고 병들어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투쟁 자금과 소송비용으로 탕진되는 엄청난 돈과 알게 모르게 빠져나가는 사설(私設) 사원(寺院)을 세우거나, 사유재산(私有財産)을 만들고 있는 지탄받을 돈을 모두 공개하고  합리적으로 관리하면, 한역(漢譯)으로 어렵게 편찬된 수많은 경전(經典)들을 현대적으로 번역하여,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며, 불교의 현대화도 박차를 가 할수 있고 노후 복지 시설도 얼마든지 설립 할 수 있을 것이며 후학의 교육에도 과감히 투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 보다도 먼저 분쟁의 씨앗을 과감히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미래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든 과거와는 너무나도 엄청나게 다른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


국민의 95 % 이상의 문맹자 시대에서 오늘날에는 일년에 30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 만 명에 이르는 숫자의 지식인이, 대학과 대학원에서 마구 배출되고 있습니다, 이런 고학년(高學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나라 불교는 호랑이 담배 피우든 시절의 구태연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려 하는지요 ?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중생을 제도하고, 이 땅에 불 국토(佛 國土)를 건설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할 중생이 옛날의 무학자(無學者)인 그런 중생이 아니고 고 학년의 중생들입니다 이런 중생들을 제도하려면은 제도하고자 하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오고 갈 때가 없어 승려가 되든 어처구니없는 승려를 양성하든 시절은 옛날의 전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승려들이 존경받을 만큼 공부를 해야하고 존경받을 만치 수행해야 하며 존경받을 만치 실천하지 않으면  결코 신도들로부터 추앙 받지 못할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면 중생도 변합니다 불공을 많이 드리면 복많이 받고 시주 많이 하면 못 낳은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기복(祈福)신앙을 맹종하든 신도들은, 점점 줄어 들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이며, 그 가르침을 어떻게 생활에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알고 싶어하는 중생들이 날로 늘어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염불을 촉성 좋게 하든 스님이 대접받고, 존경받든 시절은 도태되고 있다는 명확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앞으로 한국 불교는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고통받은 중생에게는 자비의 보살로,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이웃으로, 포악한자에게는 무서운 사천왕으로 서야할 자리에 설줄 알아야 합니다, 입으로만 호국 불교라 그럴듯한 소리를 외치면서 제 구린 곳을 방편으로 삼든 부끄러운 짓를 되풀이하지 않고, 참으로 이 나라 이 민족의 중생을 위해 기여하는 애국 불교가 되도록 자비와 보시(布施)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미래에는  한국 불교가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불교 문화 유산을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후손들에게자신 있게 물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출처 :지장 신행회 원문보기 글쓴이 : 獨覺山人

 

일행도 한마디

만약에 절이 교회처럼 도심 곳곳에 있었다면, 일본처럼 불교국가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느끼는 것 없습니까?.......... 

말로만 불국토건설을 외치는 한국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