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법정

2010. 3. 14. 20:4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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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어머니/법정  
     
       우리 같은 출가 수행자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불효자다. 낳아 길러준 은혜를 등지고 뛰쳐 나와 출세간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해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 날, 나는 집을 나와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골목길을 빠져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뒤돌아 본 집에는 어머니가 홀로 계셨다. 중이 되러 절로 간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시골에 있는 친구 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보다도 비쩍 마른 할머니의 품속에서 혈연의 정을 익혔을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내 입산 출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어머니보다 할머니가 더욱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내가 해인사에서 지낼 때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외동 손자인 나를 한 번 보고 눈을 감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시더란다. 불전에 향을 살라 명복을 빌면서 나는 중이 된 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어린 시절을 구김살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 덕이다. 내게 문학적인 소양이 있다면 할머니의 팔베개 위에서
      소금장수를 비롯한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란 덕일 것이다.
      맨날 똑같은 이야기지만 실컷 듣고 나서도 하나 더 해달라고 조르면 밑천이 다 됐음인지, 긴 이야기 해주랴 짧은 이야기 해주랴고 물었다.
      "긴 이야기" 라고 하면 "긴긴 간지때"로 끝을 냈다.
      간지때란 바지랑대의 호남 사투리다. " 그러면 짧은 이야기" 하고 더 졸라대면 "짧은 짧은 담뱃대" 로 막을 내렸다.

      독자인 나는 할머니를 너무 좋아해 어린 시절 할머니가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 나섰다. 그리고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선뜻 나서서 기꺼이 해드렸다.
      일제 말엽 담배가 아주 귀할 때 초등학생인 나는 혼자서 10리도 넘는 시골길을 걸어가 담배를 구해다 드린 일도 있다.

      내가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할머니를 따라 옷가게에 옷을 사러 갔는데, 그 가게에서는 덤으로 경품을 뽑도록 했다.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뽑은 경품은 원고지 한 묶음이었다. 운이 좋으면 사발 시계도 탈 수 있었는데 한 묶음의 종이를 들고 아쉬워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원고지 칸을 메꾸는 일에 일찍이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성은 김해 김씨이고 이름을 금옥 고향은 부산 초량, 부산에 처음 가서 초량을 지나갈 때 그곳이 아주 정답게 여겨졌다.
       
         

          지금 내 기억의 창고에 들어 있는 어머니에 대한 소재는 할머니에 비하면 너무 빈약하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나를 낳아 길러 주신 우리 어머니는 내가 그리는 어머니의 상 즉 모성이 수호천사처럼 늘 나를 받쳐 주고 있다.

          한 사람의 어진 어머니는 백 사람의 교사에 견줄 만하다는데 지당한 말씀이다. 한 인간이 형성되기까지에는 그 그늘에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이나 옮겨다녔다는 고사도 어머니의 슬기로움을 말해 주고 있다.

          나는 절에 들어와 살면서 두 번 어머니를 뵈러 갔다.
          내가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온 후 어머니는 사촌동생이 모시었다. 무슨 인연인지 이 동생은 어려서부터 자기 어머니보다 우리 어머니를 더 따랐다.

            모교인 대학에 강연이 있어 내려간 김에 어머니를 찾았다.
            대학에 재직 중인 내 친구의 부인이 새로 이사간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었다.
            불쑥 나타난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셨다. 점심을 먹고 떠나오는데 골목 밖까지 따라 나오면 내 손에 꼬깃꼬깃 접어진 돈을 쥐어 주었다. 제멋대로 큰 아들이지만 용돈을 주고 싶은 모정에서였으리라. 나는 그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어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절의 불사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시주를 했다.

            두번째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가는 길에 대전에 들러 만나뵈었다. 동생의 직장이 대전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때는 많이 쇠약해 있었다. 나를 보시더니 전에 없이 눈물을 지으셨다.
            이때가 이승에서 모자간의 마지막 상봉이었다.

            어머니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내 거처로 불쑥 찾아오신 것은 단 한번뿐이었다. 광주에서 사실 때인데 고모네 딸을 앞세우고 불일암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내 손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점심상을 차려드렸다. 혼자사는 아들의 음식 솜씨를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그날로 산을 내려가셨는데, 마침 비가 내린 뒤라 개울물이 불어 노인이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위태로웠다. 나는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바짝마른 솔잎단처럼 너무나 가벼워 마음이 몹시 아팠었다. 그 가벼움이 어머니의 실체를 두고 두고 생각케 했다.

            어느 해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아,이제는 내 생명의 뿌리가 꺾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이라면 지체없이 달려갔겠지만, 그 시절은 혼자서도 결제(승가의 안거 제도)를 철저히 지키던 때라, 서울에 있는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나대신 장례에 참석하도록 했다.49재는 결제가 끝난 후라 참석할 수 있었다.
            단에 올려진 사진을 보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어머니에게는 자식으로서 효행을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을 때면 어머니를 대하는 심정으로 그 모임에 나간다.
            길상회에 나로서는 파격적일 만큼 4년 남짓 꾸준히 나간 것도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나이 이 처지인데도 인자하고 슬기로운 모성 앞에서는 반쯤 기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 생명의 언덕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네티즌이 뽑은 법정어록

             

            1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그한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2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에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가 있는 것이다.

             

            -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불교에는 포교다운 포교가 없다. 길거리나 전철에서 불교를 포교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인연이 되어서 접하게 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불교교양대학의 교재를 보면

             

            불자가 되는 방법중의 하나는 불교교양대학에 입학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좀 규모가 있는 사찰에서는 봄과 가을 학기에 걸쳐서 모집 하기도 하고, 일년에 한번 모집 하기도 한다. 불교를 본격적으로 접하는 불교교양대학에서 교재를 보면 천수경을 위주로 한 대승불교에 대한 가르침이 주된 내용이다. 불교에 대한 교리를 배운 다고 하지만 나중에 생각 해 보면 무엇을 배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열심히 기도 하고, 열심히 보시하면 불보살의 가피를 받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불자들이 복이나 비는 기복적인 신앙으로 흐르고 있고, 스님들 역시 이를 방치 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불교의 가장 큰 병폐중의 하나는 기초가 부실 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인 '사성제' '팔정도' '12연기'와 같은 가르침 대신에 타력적인 요소의 보살사상을 강조 하다 보니 기복신앙으로 발전된 양상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불교교양대학에서의 교과과정은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우선적으로 하여 기초부터 쌓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기초가 튼튼해야 응용도 가능한 것이다.

             

            초기불교의 교학에 대하여 매우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있다. 불교tv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이라는 프로그램이다. 각묵스님이 강의 하는 이 프로를 들으면 불교교양대학의 교재로 써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다음은 각묵스님의 강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정진하세 정진하세 물러남이 없는 정진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게 교학과 수행으로 나눌 수 있다. 교학으로 본다면 '온처계근제연'이고 수행으로 본다면 '37조도품'이다. 37조도품중에 사정근(四精勤)이 있다. 다음은 사정근에 대한 내용이다.

             

            사정근은 빨리어로 '삼마빠다나(Samma-ppadhana)'라 한다. 어원을 살펴 보면 삼마(samma)'바르다'는 뜻이고, 빠다나(ppadhana)'노력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말로 표현 하면 '바른노력'이 되겠다. 그런데 이 바른노력이라는 정근은 팔정도의 '정정진'과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즉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진(위리야, viriya)'이란 무엇인가.

             

            정진은 불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주제어이다. 초기경전에서는 이 정진에 대하여 명쾌 하고 정확하게 정의 하여 놓았다. 최근의 찬불가에서도 정진이라는 주제어로 나온 노래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인식을 하는 것일까 노래의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도 부처님같이

             

            어둠은 한순간 그대로가 빛이라네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이
            무명을 거두고 우주를 밝히는
            이제는 가슴깊이 깨달을 수 있다네
            정진하세 정진하세 물러남이 없는 정진
            우리도 부처님 같이 우리도 부처님 같이

             

            원망은 한순간  모든것이 은혜라네
            지족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이
            나누는 기쁨을 맛볼수 있는
            이제는 여실히 깨달을 수 있다네
            정진하세 정진하세 물러남이 없는 정진
            우리도 부처님 같이 우리도 부처님 같이

             

             

            이 노래에서의 키 포인트는 "정진하세 정진하세 물러남이 없는 정진 우리도 부처님 같이" 이다.

             

            정진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어인 정진에 대하여 부처님은 무엇이라고 말 하였을까. 초기경에 내용이 명확하게 나와 있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sammappadhāna]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닦아서

            성취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상윳따 니까야 동쪽으로 흐름 경(S49:1) §3)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선법''불선법'이다. 선을 빨리어로 '꾸살라(kusala)'라 하고, 불선을 '아꾸살라(akusala)'라고 한다. 정진 이야기가 나오면 가장 먼지 떠 올려야 하는 단어는 선법과 불선법이다. 즉 선법과 불선법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만일 선법이라고 생각 된다면 증장 시키려고 노력 하면 되고, 불선법이라 판단 된다면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이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정근은 팔정도의 정진과 동의어라고 하였다. 따라서 정진의 내용이 그대로 정근과 같다는 의미이다. 정진은 크게 선법과 불선법을 나눈다고 말하였다. 이것을 4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이미 일어난 불선법은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선법은 다시는 일어 나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미 일어난 선법은 증장시키려고 노력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은 일어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사정근의 내용이다.

             

            불선법의 판단은 어떻게

             

            그렇다면 선법과 불선법의 판단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탈과 열반이다. 해탈 열반에 도움이 되는 것은 선법이고,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불선법이라 볼 수 있다. 부처님은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말 하였다. 그 구체적인 예가 '10가지 불선업'이다. 즉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짖는 불선업이다.

             

            첫째로, 몸으로 짖는 불선업은 3가지이다. , 살생, 투도, 사음이다.

            둘째로, 입으로 짖는 불선업은 4가지이다. ,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이다. 여기에서 현대어로 재번역 한다면 거짓말, 잡담, 이간질, 욕설이 되겠다.

            셋째로, 마음으로 짖는 불선업 3가지이다. , (탐욕), (성냄), (삿된 견해)를 말한다.

             

            '육단심(肉團心)'만 낸다고

             

            정진은 선방에 앉아서 좌선수행만 하는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좌선수행중에 '육단심(肉團心)'만 내고 있다면 오하려 불선업을 저지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육단심의 의미는 만용을 부려 억지로 하는 것으로 큰 욕심을 내게 하는 마음을 말한다.

             

            사정근은 선법과 불선법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특정한 심리현상에 부딪쳤을 때 해로운것인가와 선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선법이라고 판단 되면 증장시키고, 불선법이라고 판단 되면 가차 없이 쳐 내어야 한다는 것이 사정근의 핵심 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