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이쿠 詩

2010. 4. 14. 19: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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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선 가게 좌판에 놓인

도미 잇몸이
시려 보인다


하이쿠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의 진솔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세속의 때가 쩔어서 진솔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하이쿠를 처음 대하다 보면 이런 웃기는 글이 무엇이 유명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하이쿠의 뜻을 조금식 이해를 하다보면 한 줄도 않되는 글에서

우주의 신비를 느낄 때 또다시 놀란다고 합니다.

바쇼는 추운 겨울 생선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좌판에 놓인 도미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생선 가게 좌판에 놓인 도미 잇몸이 시려보인다.

우리도 생선 가게 앞을 지나 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바쇼같은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순간 자신의 잇몸이 시리다.

생선 가게 좌판에 놓인 그 도미는 자신이고 동료 인간들이다.

이 시를 통하여 바쇼의 인간적인 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이쿠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속에 빠져들어가게 된다

미국학교에서 까지 하이쿠 시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칠현녀의 법문 공부하였지요. 참으로 어려운 화두입니다.
칠현녀가 꼭 구경을 하려 시다림을 지나다가 송장을 보고
이 시체는 여기 있는데 시체의 주인은 어느 곳으로 향하여 갔을까?

 바쇼는 참으로 대단하지요? 

 

* 보잘 것 없는 들 국화에서 우주의 신비를 느끼고, 도미의 잇몸에서 우주와 나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법문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힘을 내어 정진합시다

(삼산법사님)

 

 

2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무가지 위에서
아직도 벌레가 노래를 하네
.

물이 불어 쏜살같이 흘르가는 가을강 한복판 잎사귀 몇개를 매단 나뭇가지 하나가

떠내려가고 있다. 무 가지는 머지 않아 급류에 휘말려 물 속에 잠기거나 뒤집힐 것이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 위에서 풀벌레 한 마라가 그런 사정도 모른채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하이쿠의 시인들은 이러한 정황을 자주 묘사한다.

생의 유한함 어쩔 수 없는 허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 안수정등에 등나무 덩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받아 먹는 가련한 우리들의 모습과

강물에 떠나려가는 나무가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벌레의 신세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증득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삼산법사님)

 

3

가을 깊은데

옆방은

무엇 하는 사람인가? 

 

읽고 읽지않으면 참 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심으로 돌아가면

이해한다는 것이 망상입니다.   산업화에 따른 이기적인 삶이 극도에 달하고 있습니다

은둔과 적막의 계절에 오히려 이웃에 대한 관심의 문이 열리는 우렁찬 희망의 소리입니다.

하이쿠 시가 쉬우면서 이해를 하기 몹시 어려운것은 그들 모두가 탐진치 삼독을 멸한 경지의

내용들입니다(삼산법사님)

 

 

4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 이싸

 

 

5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이싸

 

 

6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한 줄의 시로 그들은 불가사의한 이 지상세생의 삶을 표현 하고자 했다.

때로 그들에게는 한줄도 너무 길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 번개처럼 우리들 생에 파고드는 침묵의 언어들!

 

 

7

오래된 연못

개구리!

풍덩!  

 

하이쿠는 혼탁한 우리를 맑고 깨끗한 공기를 불어넣는다

 -게리 스나이더(미국)

 

* 하이쿠는 하나의 신비. 단지 일상의 풀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사물의 본질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하아쿠는 매 순간 어디에나 존재한다.

깨달음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깨달음 아닌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들은 욕심때문에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일본의 하이쿠 시 작자 나름데로 불가사의한 삶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줄도 너무 길다는 하이쿠 시에서 인생의 멋을 느끼는 게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얏 신난다 풍덩 소리에서 설명이 끊어진 자리, 마음자리 본질의 자리,

웃기는 소리에서 선시를 바라보고, 연못의 흙탕물을 보고, 

마음으로 생활을 하신다면 누가 깨닫지 못한다고 하겠습니까?

불교의 깨달음은 직관입니다. 직관은 수동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합시다.

지금 그냥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너가 부처다고 하지요

그냥 믿으면 됩니다  수동성을 이해를 하면 언제 어떻게 부처의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삼산법사님)

 

 

- 견우회 담바라>에서 초록새싹님이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