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책의 법문/성철스님

2010. 4. 14. 20:1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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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책의 법문/성철스님 

 

1 금욕(禁慾)

욕심 가운데 제일 무서운 것이 색욕(色慾)이다.

색욕 때문에 나라도 망치고 집안도 망치고 자기도 망친다.

이 색욕 때문에 나라를 다 망쳐도 뉘우칠 줄 모르는 것이 중생이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데도 이것이 제일 방해된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것이 하나뿐이기 다행이지,

만약 색욕같은 것이 둘만 되었던들 천하에 수도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색욕이란 무서운 것이니, 이 색욕에 끄달리게 되면

수도는 그만두고라도 지옥도 피할래야 피할 수 없으니,

도를 성취하고 실패하는 것은 색욕을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데

달렸다 하더라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무서운 색욕을 근본적으로 끊으려면 도를 성취하기 전에는 안된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도를 성취하기 전에는 네 마음도 믿지 말라'고 하셨다.

만약 '색욕을 끊지 않아도 수도하는 데 관계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자기가 색욕에 끄달리어 남까지 지옥으로 끌고 가는

큰 악마인 줄 깊이 알고 그 말에 절대로 속지 않아야 한다.

큰 도인도 항상 경계하였으니

'차라리 독사에게 물려 죽을지언정 색(色)은 가까이 하지 말아라.

독사에게 물리면 한 번 죽고 말지마는 색에 끄달리면 세세생생 천만겁토록

애욕의 쇠사슬에 얽매여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되니 피하고 또 멀리 하라.'

 하였다. 이 얼마나 지당한 말씀인가? 만약 이것을 끊지 못하면

항상 애욕만 머리에 가득 차서 도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무한한 고의 세계가 벌어지는 것이다. '

색욕을 끊지 못하고 도를 닦으려 한다는 것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이다'

고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셨다.

옛부터 참으로 수도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버릴지언정

색을 범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니,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서로서로 멀리하여야 한다.

 만약 가깝게 하면 결국은 서로 죽고 마는 것이니,

서로서로 범과 같이 무서워하고 독사같이 피하여야 한다.

어떠한 인격자라도 이성(異性)을 믿지 말고 친근하지 말지니,

성과(聖果)를 증득하기 전에는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성들의 호의는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지 사절하여야 한다.

오직 영원한 자유를 위하여 일시적인 쾌락을 끊지 못하면,

이는 인간이 아니요, 금수보다도 못한 것이다.

 

 생사윤회의 근본은 애욕에 있으니 애욕을 끊지 않으면 해탈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남녀가 서로서로 멀리하는 것이 성도(成道)하는 근본이니,

절대로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2 천대(賤待)

천하에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은 남에게 질 줄 아는 사람이다.

무슨 일에든지 남에게 지고 밟히고 하는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다.

   천대받고 모욕받는 즐거움이여,
   나를 무한한 행복의 길을 이끄는도다.

남에게 대접받을 때가 나 망하는 때이다.

나를 칭찬하고 숭배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수도를 제일 방해하는

 마구니이며 도적이다. 중상과 모략 등의 온갖 수단으로 나를 괴롭히고

헐뜯고 욕하고 해치고 괄시하는 사람보다 더 큰 은인은 없으니,

뼈를 갈아 가루를 만들어 그 은혜를 갚으려 해도 다 갚기 어렵거늘

하물며 원한을 품는단 말인가?

나의 공부를 방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제거해 주고 참는 힘을 많이

복돋아주어 도를 일취월장(日就月將)케 하여 주니,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을까?  칭찬과 숭배는 나를 타락의 구렁으로 떨어뜨리나니

어찌 무서워하지 않으며, 천대와 모욕처럼

나를 굳세게 하고 채찍질 하는 것이 없으니 어찌 은혜가 아니랴.

그러므로 속담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미운 자식 밥 많이 주고,

고운 자식 매 많이 때린다.'고 하니, 참으로 금옥(金玉)같은 말이다.

항상 남이 나를 해치고 욕할수록 그 은혜를 깊이 깨닫고,

나는 그 사람을 더욱 더 존경하며 도와야 한다.

 

3 최잔고목( 殘枯木)!

 

부러지고 이지러진 마른 나무 막대기를 말함이다.

이렇게 쓸데없는 나무 막대기는 나무꾼도 돌아보지 않는다.

땔나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 땔 물건도 못되는 나무 막대기는

천지간에 어디 한 곳 쓸곳이 없는, 아주 못쓰는 물건이니,

이러한 물건이 되지 않으면 공부인이 되지 못한다.

결국은 제잘난 싸움마당에서 춤추는 미친 사람이 되고 말아서,

공부 길은 영영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이 없는 대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 버리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버림받는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당하는 사람,

살아나가는 길이란 공부 길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불법 가운데서도 버림받은 사람,

쓸데없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천태 지자대사같은 최고의 고승도 죽을 때 탄식하였다.

'내가 만일 대중을 거느리지 않았던들, 육근청정(六根淸淨)의

성위(聖位)에 들었을 것이다. 러나 대중의 어른노릇 하느라고

오품범위(五品凡位)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4 하심(下心)

좋고 영광스러운 것은 항상 남에게 미루고,
남부끄럽고 욕되는

것은 남모르게 내가 뒤집어 쓰는 것이 수도인의 행동이다.

육조대사가 말씀하셨다. '

항상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시비, 선악은 보지 못한다.'

이 말씀이야말로 공부하는 사람의 눈이다.

 내 옳음이 추호라도 있을 때에는 내 허물이 태산보다 크다.

나의 옳음을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사람이라야 조금

철이 난 사람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에든지 전혀 내 허물만 보이고,

남의 허물은 볼래야 볼 수 없는 것이다.

세상 모두가 '내 옳고 네 그른 싸움'이니, 내 그르고 네 옳은 줄만 알면

싸움이 영원히 그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깊이 깨달아

'내 옳고 네 그름'을 버리고 항상 나의 허물, 나의 잘못만 보아야 한다.

법연(法演) 선사가 말씀하였다.

'20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공부하니,

이제 겨우 내 부끄러운 줄 알겠다.' '내 잘났다'고 천지를 모르고

어깨춤을 추는 어리석음에서 조금 정신을 차린 말씀이다.

뉴튼은 천고(千古)의 큰 물리학자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훌륭하다'고

많이 존경하였으나 뉴튼 자신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자기가 생각해 볼 때는 자신은 대학자는 고사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왜 자기를 대학자로 취급하는지 의심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말하였다.

'우주의 진리는 대해(大海)같이 넓고 깊다. 그러나 나는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이나 줍고 노는 어린아이에 불과하여, 진리의 바다에는 발 한 번

적셔 보지 못했다.' 이 말도 자기의 어리석음을 조금 짐작하는 말이다.

 

서양의 제일가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항상 크게 외쳤다.

 '나는 단지 한 가지만 안다.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볼 때,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제 못난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니요,

다 제 잘나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지상에서도 가장 존경을 받는 위대한 인물은,
오로지 모든 사람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잘나지 못함을 자각하는

정도로 그 사람의 인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잘나지 못함을 철저히 깨달아 일체를 부처님과 같이 섬기게 되면,

일체가 나를 부처님과 같이 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낮고 낮은 곳이 자연히 바다가 되나니,

이것은 일부러 남에게 존경을 받으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남에게 존경을 받을 생각이 있으면,

남이 존경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내 몸을 낮추고 또 낮추어 밑없는 곳까지 내려가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더라.'

 공자(孔子)가 노자(老子)를 보러 가니, 노자가 말했다.

 '그대를 보니 살과 뼈는 다 썩고 오직 입만 살았구나!

 큰 부자는 재산을 깊이 감추어 없는 것같이 하고 어진 사람은

 얼굴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이 하나니,

그대의 교만한 행동과 도도한 생각을 버려라.

무엇을 알기에 그렇게 잘난 척하는가?'

공자가 듣고 크게 탄복하며, 노자를 '용과 같다'고 하였다.

 

노자가 또 공자에게 말하였다. '내 부탁하노니 누구든지 총명한

사람이 그 몸을 망치는 것은 다 남의 허물을 잘 말하기 때문이다.

부디부디 조심해서 남의 나쁜 것과 그른 것을 입 밖에 내지 말아라.

' 이 두 분은 지상에서 큰 성인이라 존경하는 바이다.

서로 처음 만났을 적에 이런 말로써 경계하니,

누구든지 일생동안 지켜도 남을 말들이다.

하심(下心)의 덕목을 몇 가지 적어 본다.
一. 도가 높을수록 마음은 더욱 낮추어야 하니,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며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긴다.
一. 어린이나 걸인이나 어떠한 악인이라도 차별하지 말고 극히 존경한다.
一. 낮은 자리에 앉고 서며 끝에서 수행하여 남보다 앞서지 않는다.
一. 음식을 먹을 때나 물건을 나눌 때 좋은 것은 남에게 미루고 나쁜 것만 가진다.
一. 언제든지 고되고 천한 일은 자기가 한다.

 5 정진(精進)

모든 육도만행(六度萬行)은 그 목적이 생사해탈(生死解脫),

즉 성불(成佛)에 있으니, 성불의 바른 길인 참선에 정진하지 않으면

이는 고행외도(苦行外道)에 불과하다.

정진은 일상(日常)과 몽중(夢中)과 숙면(熟眠)에 일여(一如)가 되어야

조금 상응함이 있으니, 잠시라도 화두에 간단(間斷)이 있으면 아니된다.  

정진은 필사의 노력이 필수조건이니, 등한·방일하면 미래겁이 다하여도

대도(大道)를 성취하지 못하나니, 다음의 조항을 엄수하여야 한다.

一. 네 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
一. 벙어리같이 지내며 잡담하지 않는다.
一. 문맹같이 일체 문자를 보지 않는다.
一. 포식·간식하지 않는다.
一. 적당한 노동을 한다.

6 고행(苦行)

병 가운데 제일 큰 병은 게으름병이다.

모든 죄악과 타락과 실패는 게으름에서 온다.

게으름은 편하려는 것을 의미하니, 그것은 죄악의 근본이다.

결국은 없어지고마는 이 살덩어리 하나 편하게 해주려고

온갖 죄악을 다 짓는 것이다. 노력 없는 성공이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대성공자는 대노력가 아님이 없다.

그리고 이 육체를 이겨내는 그 정도만큼, 성공이 커지는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항상 말했다. '나의 발명은 모두 노력에 있다.

나는 날마다 이십시간 노력하여 연구했다.

그렇게 삼십년간 계속하였으나 한 번도 괴로운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다.

' 그러므로 여래의 정법이 두타제일(頭陀第一)인 가섭존자에게로

오지 않았는가.  총림을 창설해서 만고에 규범을 세운 백장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一日不作 一日不食〕'고 하지 않았는가!

손끝 하나 까딱이지 않고 편히만 지내려는 생각,

이러한 썩은 생각으로써는 절대로 대도는 성취하지 못한다.

땀 흘리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 남의 밥 먹고 내 일 하려는

썩은 정신으로서는 만사불성(萬事不成)이다.

 옛부터 차라리 뜨거운 쇠로 몸을 감을지언정 신심있는 신도의

의복을 받지 말며, 뜨거운 쇳물을 마실지언정 신심인의 음식을

얻어 먹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이러한 철저한 결심 없이는 대도는 성취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잊지 말고 잊지 말라.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만고철칙을!

오직 영원한 대자유를 위해, 모든 고로(苦勞)를 참고 이겨야 한다.

 

 

인생길 가다보면 

 

 

인생길 가다보면   

 서로 만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러면서 사는게지

 


머 그리 잘난 자존심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미워하는지...

 

 

 

사랑하며 살아도

 너무 짧은 우리네 삶  

 베풀어 주고 또 줘도 남는 것들인데

 웬 욕심으로   

 무거운 짐만 지고 가는 고달픈   

 나그네 인가,,
   

 

 

 

왜 그리

 마음에 문만 닫아걸고   

 더 사랑하지 않고 더 베풀지 못하는지..

 

   서로 아끼고 사랑해도

 짧고 짧은 허망한 세월인 것을

 미워하고 싸워 봐야  

서로 마음의 상처에

 흔적만 가슴깊이 달고 갈텐데...

 

 

 

있으면

만져 보고파지고   

 없으면 더 갖고 싶은 마음  

갖으면
더 갖고 싶구

 먹으면 더 먹고 싶은게

사람의 욕심이라 했고 

채울때

 

적당함이 없구

 먹을때 그만이 없으니  

 우리네 욕심 한도 끝도 없다 하네

 

 

내 마음 내 분수를   
적당한 마음 그릇에 담아두고

행복이라 느끼며

 사는 거지

    뭐 그리

욕심부려

 강하게 집착하고  

 

 

놀부 같은 만인의 동화속 주인공으로

 생을 마감하려 하나

 흥부같은 삶으로

 남은 우리 인생길에 동참 시킨다면 

 크게 진노 하거나 슬퍼지는 삶은

 없을것 같네,  

 

 

 

언제나 그러하듯

 나누지 못한 삶을 살지라도  

 지금 만날수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도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