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염불수행의 공덕

2010. 5. 11. 19:1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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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염불수행의 공덕


  염불은 불보살의 위신력에 감응하는 수행법이므로 다른 수행법과 비교할 수 없는 현실적인 위력이 있다. 염불의 이러한 위력 때문에 현실의 고난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많은 중생들에게 기도성취의 문이 되었고, 수행자들에게는 수행시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는 대치법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칭명염불에 대한 공덕은 많은 선지식들에 의해 강조되곤 하였다.


  존호를 염하는 가르침은 경전에 널리 밝혀져 있거니와 실로 한번만이라도 염하면 진사겁(塵沙劫)의 죄를 소멸하고 십념(十念)을 갖추면 몸이 정토에 나서 영원히 위급한 환난을 구제하는 것이다. 업장이 녹고 원액(寃厄)을 소멸하여 길이 고통의 나루를 헤어날 뿐만 아니라 이 인연을 의탁한다면 마침내는 각해(覺海)에 도달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도 “만일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탑묘중에 들어가서 단 한번 ‘나무불’을 일컬을지라도 모두가 그 인연으로 마침내는 불도를 이루게 된다” 하였고 또 “부처님의 명호를 받들어 지니는 이는 누구나 제불께서 호념하여 주신다”고 한 것이다.

  <보적경>에서는 “높은 소리로 염불하면 마군들이 모두 두려워 흩어진다” 하였고 <문수반야경>에서는 “수행하는 이가 스스로 우둔해서 능히 관찰하지 못한다면 다만 생각과 소리만 계속 이어지게 하라. 그래도 반드시 불국토에 왕생할 수 있으리라” 하였다.

  또 <대품경>에서는 “만일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라도 염불을 한다면 곧 고액이 없어지고 그 복이 다함 없는데 이를 것이다” 하였고, <증일아함경>에는 “한 염부제의 온갖 중생을 사사(四事)로 이바지한다면 공덕이 한량이 없으리라. 그러나 만일 어떤 이가 착한 마음이 계속하여 부처님의 명호를 잠시 동안만이라도 염한다면 그의 공덕됨은 위의 비유를 훨씬 지나서 생각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하였으며 또 <화엄경>에는 “자재한 마음이 염불문에 머무르면 자기 마음에 있는 즐기고 싶은 것을 가히 따름을 알 것이니 온갖 부처님께서 언제나 그 모습을 나타내시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또 비석화상의 <염불삼매보왕론>에는 “큰 바다에서 목욕한 사람은 이미 온갖 냇물을 다 쓴 것과 같이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는 사람은 반드시 온갖 삼매를 한꺼번에 이루는 것이다. 또 마치 수정주를 탁한 물에다 넣으면 아무리 탁한 물이라도 맑아지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어지러운 마음에다 염불을 던지면 아무리 어지러운 마음이라도 부처를 이루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이 계합되었다면 또한 마음이나 부처랄 것이 없나니, 함께 없어짐(雙亡)은 곧 정(定)이요 함께 비추임(雙照)은 곧 혜(慧)다. 정혜가 이렇게 균등하다면 다시 어떤 마음인들 부처가 아니겠으며 어떤 부처인들 이 마음이 아니겠는가. 마음과 부처가 이미 그렇다면 어떤 경계, 어떤 반연일지라도 모두가 삼매 아님이 없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누가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 높은 소리로 염불한다고 다시 근심하리오.

  그러므로 <업보차별경>에서는 고성으로 염불하고 송경(誦經)하는 수행에 열 가지의 공덕을 말하였으니 이른바 “능히 졸음을 막고, 하늘의 마군이 놀래 두려워하며, 음성이 시방에 가득 퍼지고, 삼악도의 고통이 멈추며, 다른 잡음이 섞여 들어오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되며, 용맹한 마음으로 정진하게 되고,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기뻐하시며, 항상 삼매가 현전하고, 반드시 정토에 나는 것이다” 하였다.

  또 논(論) 가운데서 묻되 “무엇을 인하여 한 번 염불한 힘이 능히 모든 업장을 끊는다 하는가” 함에 답하기를 “마치 한 개의 전단향이 능히 사십유순의 이란림(伊蘭林)을 뒤덮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면 어떤 이가 사자의 힘줄로 거문고의 줄을 만들어 쓰면 그것을 한 번 튕기는 소리에 나머지 줄은 모두 끊어지고 마는 것과 같으니, 만일 보리심 가운데서 염불삼매를 행한다면 온갖 번뇌업장이 단박에 단멸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알라. 부처님의 위신력이 가히 생각키 어려워 그 현통(玄通)함을 헤아릴 수 없음이 마치 돌이 쇠를 흡수함과 같고 물을 강하(江河)에 쏟아 붓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직 자비선근의 힘이라야 능히 이와 같은 일을 볼 수 있나니,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는 자는 참으로 신령스러운 감응이 환하게 밝을 것이다. <만선동귀집>


  또한 옛적에 한 사람이 육조대사에게 묻기를 “염불에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하고 묻는 말에 육조대사 답하기를 “일구(一句),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이 만세의 괴로움을 뛰어나는 묘도(妙道)요, 불(佛)을 이루고 조사가 되는 정인(正因)이요, 삼계 인천(人天)의 안목이요, 마음을 밝히고 성(性)을 보는 혜등(慧燈)이요, 지옥을 깨뜨리는 맹장이요, 많은 올바르지 못한 것을 베는 보검이요, 오천대장(五千大藏)의 골수요, 팔만총지(八萬總持)의 중요한 길이요, 흑암(黑暗)을 여의는 명등이요, 생사를 벗어나는 방방(良方)이요, 고해를 건너는 배요, 삼계를 뛰어넘는 지름길이요, 최존최상의 묘문이며 무량무변의 공덕이니라. 이 일구, 나무아미타불을 기억하여 염념(念念)이 항상 나타나고, 시시로 마음에 떠나지 아니하며, 일이 없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고, 일이 있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안락할 때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병고가 있을 때에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살았을 때에도 이렇게 염불하고, 죽어서도 이렇게 염불하여, 이와 같이 일념이 분명하면 또 무엇을 다시 남에게 물어서 갈 길을 찾으랴. 이른바 오직 아미타불 지니고 다른 생각 없으면 손 튀길 수고도 없이 서방극락 가리라” 하였다.<禪淨雙修集要>


  이와 같은 염불의 위력에 근거하여 천태 지자대사는 사람의 근기와 원력에 따른 오방편염불문을 제시, 일체중생이 미타의 대원해(大願海)에 들기를 염원하였다.

  첫째, 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칭명왕생염불삼매문(稱名往生念佛三昧門)을 의지하여 닦아야 한다.

  둘째, 무시이래의 업장을 소멸하기 바라는 사람은 관상염불염불삼매문(觀相滅罪念佛三昧門)을 의지하여 닦아야 한다.

  셋째, 마음의 미혹을 여의기 바라는 사람은 제경유심염불삼매문(諸境唯心念佛三昧門)을 의지하여 닦아야 한다.

  넷째, 세상의 욕망과 집착을 떠나기 원하는 사람은 심경구리염불삼매문(心境俱離念佛三昧門)을 닦아야 한다.

  다섯째, 생사해탈과 열반을 바라는 사람은 성기원통염불삼매문(性起圓通念佛三昧門)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15세에 엄마가 된 나, 용서해 주렴

1977년 열 다섯.
딸이 귀하던 우리 집안의 막내였던 난
공주님처럼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했었다.

그러던 중, 교육자이셨던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생 오빠에게 과외를 받았다.

따뜻한 눈빛을 가진 그에게 나는 반해 버렸고
그 역시 나를 친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다.
그렇게 서로 가까워졌고 나는 그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때 쯤, 그에게 영장이 나왔고
그가 입대한 후, 나는 배부른 모습으로
그의 집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가진 것 없이 임신을 하고,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날
시댁에선 좋게 받아줄 리가 없었다.
만삭이 되고 나서도 가족들의 빨래며 청소,
집안일을 해야 했고,
시할머니의 중풍병 수발도 감당해 내야했다.

어느 날, 낚시터에 계신 시아버지의
새참을 가지고 나가던 중 진통이 왔고,
나는 쓸쓸히 그와 나의 사랑의 결정체인
혁이를 맞이하였다.

시간이 흘러 그가 제대를 했지만
그는 멀리서 공부를 했고,
나는 시할머니의 병 수발로
혼자 남아 시집살이를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환갑잔치 때문에
부산에 가게 됐고, 그의 자취방에도 들렀다.
그런데, 그가 자취하던 곳엔
말끔하게 정리된 여자의 소품들이 가지런히 있었다.
놀란 가슴을 끌어안고
학교로 가서 그를 정신없이 찾아다녔다.

멀리서 그를 보게 되었고
그의 옆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짓을 했고,
나는 아이를 등에 업고
그와 그 여자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한참 후 그는 "나의 첫 사랑이야
유학생활하면서 힘들어 할 때,
옆에서 보살펴 준 고마운 여자야.
하지만 난 이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

나는 그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이였다.
너무 큰 충격에..너무 뻔뻔한 그의 표정에서
나는 목이 메여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고.
명치만 무겁게 눌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를 사랑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그 역시 그녀를 사랑하니까.

나와 우리의 아이를 포기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사랑이라는 거짓의 탈을 쓴 그의 곁을 떠날 때
이미 둘째를 임신한 몸이었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운이를 눈물로 맞이했다.

나는 다시 가족을 찾았다.
큰 오빠는 혁이와, 운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나에게 새로운 삶을 살 것을 요구했지만.

나는 내 능력이 없었기에
자식을 조카로 만나야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의 큰아들 혁이가 오늘 결혼을 한다.

그리고 오늘 혁이가..메세지를 남겼다.
"고모..! 내일 결혼식장에 예쁘게 해서 오세요.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지금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저 기억하고 있어요.
사랑해요. 엄마. 이젠 좋은 사람 만나세요.
아빠 아닌 그분 같은 사람 만나지 말구요.
엄마를 아끼는 사람 만나서 행복하세요..제발.."

뜨거운 눈물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 내렸고
그에게서 버림받던 그날처럼
명치가 무겁게 짓눌리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죄악으로 내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 채 빼앗아 가버린 그 사람.
20여 년간 내 인생을 눈물로 채우게 했던
원망과 증오의 가슴으로 살게 했던 그가.
오늘처럼 그리운 날은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자신의 핏줄이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오늘
불과 다섯 살 때 마지막으로 본 그를
아빠로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실을..,

모습조차 보지 못한 또 하나의 핏줄이
보름만 지나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하는 이 사실을.

지혁아, 제발, 한 여자만을 평생 사랑하길....
지운아..부디 몸 건강히 다녀오길....



 
 
20년의 가슴앓이.
홀로 감당하기 너무도 벅찬 시간이었군요.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들이 이제 당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겁니다.
힘내세요, 그리고 씩씩하게 살아가세요
희망은 언제나 당신 편입니다.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