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을 통한 진정한 웰빙과 웰다잉 / 무여 스님

2010. 6. 1. 11: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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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 웰빙’은 몸과 마음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건강한 심신을 유지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 인생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영위하고자 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나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웰다잉’은 두려움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아름답고 품위 있게 잘 죽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고, 확실히 맞이하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누구나 바라는 안락한 죽음, 행복한 죽음인 ‘웰다잉’을 맞이하려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웰다잉’이 ‘웰빙’의 완성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성자 달라이 라마께서는 “우리가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한 삶, 건강한 삶만이 안락한 죽음, 아름다운 죽음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닦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 웰빙’과 ‘웰다잉’이 요즘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말하는 안락하고 행복한 삶이고, 누구나 갈망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생활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생활이나 음식 또는 여가를 즐기는 것은 좋으나
    마음의 평화를 얻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웰빙’이라는 말을 쓰기는 미흡하고 불만스럽다는 것입니다. ‘웰다잉’도 누구나 바라는 안락한 죽음, 행복한 죽음을 얻기는 어렵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나 괴로움은 다소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웰빙’과 ‘웰다잉’은 바랄 수 없단 말인가? 인간이 그렇게 갈망하고 요구하는
    진정한 삶과 죽음은 기대할 수 없단 말인가? ‘웰빙’이나 ‘웰다잉’에 대하여 표현은 다르지만
    고구정녕하게 말씀해 놓으신 것이 경전이요, 여러 가지 이적을 보여 생사까지도 자재하는 모범을 보인 기록이
    천하선지식(天下善知識)들의 어록입니다. 이들 경전이나 어록의 한결같은 말씀은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가려면 반드시 수행을 해야 하고, 인생대사(人生大事)인 생사를 자재(自在)하고 생사를 해탈하려면
    견성성불(見性成佛), 자기의 성품을 보아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웰빙’이나 ‘웰다잉’을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수행을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의식주가 풍요롭고 소비가 미덕이라는 시대에 첨단제품으로 화려하게 산다 해도 마음을 닦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고 만족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닦으려면 선(禪)을 해야 하고,
    선 중에서 최상승법은 화두선(話頭禪)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선수행으로 안락한 견처를 체험해야
    진정한 ‘웰빙’을 느낄 수 있고 , ‘웰다잉’에도 자신만만합니다.
    안락한 경지를 체험하지 못하면 참수행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안락이란 수행이 잘 돼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안락한 상태의 극치가 바로 극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두에 진정한 의정(疑情)이 일어나 집중이 되면
    일체의 번뇌나 망상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들끓어서 괴롭고 불안하던 온갖 생각들이 사라지면 마음은 아주 고요해 일부러 생각을 하고 기억을 더듬어도 고요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고요해지면 몸과 마음이 맑아져 편안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수행이 더 깊어지면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기쁘다고 할 수도 있고 즐겁다고 할 수도 있는 오묘한 법열(法悅)을 느낍니다. 마음의 평화만 느껴도 온 몸에서 봄기운이 돌 듯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반응이 일어나는데, 즐거움까지 느끼면 인생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사고나 자세나 행동까지 달라집니다. 이때는 화두가 동정(動靜)에도 한결같이 되다가
    꿈속에서도 변함없이 들리는 정도가 됩니다. 그런 참선자라면 학생이나 주부나
    직장인으로서 보람을 느끼면서도 일하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마음을 상당히 닦을 수 있습니다. 주부는 한 여성으로서 주부로서 수행자로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늘 하는 일인, 밥을 짓거나
    빨래나 청소를 해도 좋은 기분을 느끼면서 할 수 있고, 직장인도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만족스러운 근무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도가 되면 어디가 아프다,
    괴롭다, 소화가 안 된다, 몸이 찌뿌듯하고 나른하다 등 보통 안 좋다는 건강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당뇨나 암 등 웬만한 중병도
    초기단계에는 치료 없이 낫는다는 임상결과가 있습니다. 특히 신경계통의 환자에게 특효가 납니다. 정신분열증이나 정신착란증 또는 요즘 젊은 사람이나 여성에게 급격히 는다는
    우울증 같은 정신병 계통에 대단한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정신병 환자는 정신이 집중이 되어 일체 망상이 사라져 마음이 고요하고 안정이 되는 상태가 되면서 서서히 좋아집니다. 이와 같이 화두에 정신이 집중이 돼서 일체 번뇌 망상과 잡스런 생각이 다 사라지면 마음은 고요하고 안정이 됩니다. 그 러면 마음은 맑아지고 몸은 가벼워서 몸과 마음이 안락한 상태가 됩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안락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행복한 삶, 즐거운 인생, 진정한 ‘웰빙’이라고 합니다. 생사(生死)는 둘이 아니다 참선자는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화두는 더 성성하고 적적하게 참구해가야 합니다. 화두가 꿈속에서도 변함없이 잘 되다가 깊은 잠에서도 한결같이 들리는 정도가 되면 신통한 경계까지 느끼게 됩니다. 신통이란 보통 사람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이 통한다 해서 통(通)이라고 합니다.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고, 본성은 영원하다는 확신까지 서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까지도 죽음에 당당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선에서는 이런 정도가 돼야
    ‘웰다잉’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깨달음을 열어 생사까지도 자재(自在)하고 해탈(解脫)해야
    진정한 ‘웰다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사를 자재하고 생사를 해탈하는 것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고
    선정을 익혀야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수행을 잘하여
    생사란 본래 나는 것도 아니며 죽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시고, 생사문제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는 명제이고 극복해야 하는
    필수적인 과제인 줄을 아시기 바랍니다. - 월간 불광 -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생각들





    힘들 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외로워 울고 싶을 때
    소리쳐 부를 친구가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할
    머리가 내게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별의 따스함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슬플 때 거울 보며
    웃을 수 있는 미소가 내게 있기에
    난 행복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목소리가 있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온몸에 힘이 빠져
    걷기도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슬픔이 있기에
    나는 행복합니다.

    내 비록 우울하지만
    나보다 더 슬픈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발이 있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 가진 것 보잘것 없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편지 하나 보낼 수 있는 힘이 있어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 가슴 활짝 펴
    내 작은 가슴에 나를 위해주는
    사람을 감싸 안을 수 있어
    나는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