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이해하려하지 말고 버리세요/구나라타나스님
2010. 6. 2. 19:0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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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이해하려하지 말고 버리세요”
- 헤나폴라 구나라타나 스님(스리랑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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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여실하게 본다는 것은 무상을 보는 것 마음 자체가 청정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져 # 위빠사나 수행 스님들 그리고 법우님들. 오늘 이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여러분들을 만나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말씀을 나누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 수행이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하는 분도 있고, 사마타 수행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2500년 시간을 흘러 우리에게 전해진 빨리 경전을 볼 때 부처님께서는 위빠사나와 사마타를 함께 수행하셨습니다.
위빠사나와 사마타 수행은 마치 손바닥의 앞ㆍ뒤와 종이의 앞ㆍ뒷면과 같아서 분리해서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위빠사나 수행자가 사마타 수행 없이 수행할 수 없고, 사마타 수행 또한 위빠사나 요소를 갖지 않고 할 수 없습니다.
팔정도에는 정념과 정정이 있습니다. 위빠사나는 팔정도 정념(正念)의 빨리어입니다. 위빠사나는 아누빠사나(anupassana)라는 것과 함께 행해져야 합니다. 아누빠사나는 어떤 현상이 일어날 때 일어나는 그 현상ㆍ과정을 보는 것입니다. 아누라는 말은 ‘동시에 함께’, 빠사나는 ‘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이나 관념을 없애야 합니다. 사물을 여실하게 본다는 것은 모든 현상 변하고 있음 즉, 무상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무상함을 말하지만 알고 있는 것은 아주 피상적입니다. 무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삼매수행이 필요합니다. 깊이 들어간 삼매는 정념과 정정(평정심)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정정ㆍ정념이 함께 할 때, 다시 말해 집중과 알아차림, 이 두 가지가 함께 할 때 이러한 사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를 얻는 데는 특정 종교성이나 다른 성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대상을 볼 때, 보는 마음은 순수하고 청렴해야 합니다. 개인의 생각이나 관념이 개입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여실하게 사물을 본다, 법을 본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 대상이라는 것, 법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본다고 할 때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수행할 때 수행대상은 오온(五蘊: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시기 전 호흡을 관하는 수행을 하셨습니다. 호흡 하나에 색ㆍ수ㆍ상ㆍ행ㆍ식, 물질과 느낌과 인식 그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수행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여실하게 보기 위한 것입니다. 무상한 것을 영원하다고 보고 있고, 괴로운 것을 즐겁다고 보고 있고, 개체가 없는 것을 아(我)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 욕망
욕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선업을 일으키는 욕망과 불선업을 일으키는 욕망입니다. 불선업을 일으키는 욕망은 윤회를 하게 하고 계속 쌓입니다. 욕망이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은 욕망이라는 것이 괴로움의 원인이고, 윤회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욕망이 윤회를 가져오고 집착을 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집착을 끊고, 욕망을 줄일 수 있습니다. 모든 현상들이 우리가 잡을 수 없을 만큼 아주 빠르게 변하는 것을 보게 되고,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물이 이와 같이 빨리 없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즐거움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됩니다.
감각적인 즐거움에서 흥미를 잃게 될 때, 진정한 수행의 즐거움, 선업을 일으키는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선업을 일으키는 욕망은 욕망을 버리는 욕망입니다.
욕망을 없애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날 때 집착이 사라져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항상 하지 않음으로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항상 변한다는 그 자체 조차도 고(苦)가 아니라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고가 되는 것은 변화하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위빠사나의 목표는 이러한 괴로움을 극복하고 슬픔을 뛰어넘는데 있습니다. 현실은 무상하기 때문에 고를 뛰어넘기 힘듭니다. 사물은 영원히 무상하고 그것이 변화하면서 오는 괴로움은 항상 느끼게 됩니다. 수행으로서 얻는 것은 무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무상 자체를 버리는 것입니다. 무상한 것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없앨 때 진정한 자유와 해탈이 옵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께서도 무상을 변화시키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현상에 대한 집착을 없애셨습니다. 무상을 보면서 무상에 대한 집착을 보면서 진리를 보는 것입니다.
# 호흡을 보라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요한 것은 호흡에 마음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시기 전과 후에 호흡을 대상으로 수행을 하셨습니다. <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아나빠나사띠수따anapana-sati)에는 호흡에 관한 상세한 지침과 중요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호흡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선명하게 대상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에 관련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자세를 편하게 하고 눈을 감습니다. 오로지 마음을 호흡에 가져가 호흡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봅니다. 들숨을 쉴 때 호흡이 시작하는 것을 보고, 중간을 보고, 마지막 숨이 다 차오르는 것에 집중합니다. 호흡이 들어온 후 날숨으로 바뀌기 전 약간의 정지상태를 관(觀)합니다. 들숨과 날숨에서 시작과 중간, 마지막과 정지의 상태 총 8단계로 나누어 그 느낌에 집중합니다. 들이쉬기 직전 긴장감과 숨이 들어올 때 편안함, 다시 가득 찼을 때의 긴장감과 내뱉기 시작할 때 편안함에 집중합니다.
이어 코끝으로 느끼는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느낌, 따듯한 느낌, 찬 느낌 등 미세한 작용을 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계속 수행하다보면 호흡이 들어갔다 나가는 것이 편안히 느껴지게 되고 호흡을 미세히 보게돼 집중력이 아주 높아집니다. 이 상태에서 더 나아가게 되면 호흡을 볼 수 없는 단계까지 나가게 됩니다. 그러면 관하는 마음이 호흡을 기억해내고 기억한 상태가 여러분의 마음에 떠오릅니다.
선업이 되는 여러 가지 마음의 현상만이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마음이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여러분은 아주 작은 분자까지 볼 수 있고, 무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분자까지 보는 상태에서는 숨쉬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등이 존재하지 않음을 경험합니다. 하나의 형체, 현상으로만 여겨졌던 것들이 실제로는 항상 변화하는 작은 분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삼매의 힘과 깨어있는 마음 즉, 염(sati)와 정(samathi)이 함께 작용해 아(我)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집중과 깨어있는 마음이 완전하면 빛을 발하게 됩니다. 마음은 원래 빛이 납니다. 이 빛은 밝게 광채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청정해서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불자들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 청정한 마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누구나 성숙시킬 수 있습니다.
정리=노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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