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25. 20:14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행복하려면 감사하고 미소 짓고 말 아껴라 | ||||||||||
고산 스님께서 사자좌에 올랐다. 스님께서는 주장자를 높이 한 번 들어보였다. 스님은 이미 주장자 법문을 마쳤는데, 주장자를 보는 이의 마음은 주장자를 떠나지 못한다. 달마대사는 <사행론>의 ‘시유관찰형색문(示諭觀察形色門)’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장자를 보고 주장자란 견해를 지으면 이는 주장자 상(相)을 보고 주장자 견해(見解)를 짓는 것이요, 마음으로 이 주장자를 보더라도 이는 주장자 상(相)이라. 법은 주장자도 없고 주장자 상도 없으니 이러한 까닭에 주장자를 봄으로 곧 주장자 법을 얻는 것이다. 일체 형색을 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고산 스님은 <유마경>을 펴서 한 구절을 독송하고 나서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주셨다. “중생들은 생사에 윤회합니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려면 중생의 나고 죽는 곳에 들어가 두려움이 없어야 하며, 중생을 다 제도하고 나서야 열반에 듭니다. 보살은 죽고 태어나는 것이 자유자재하여 돼지를 제도하기 위해서는 돼지로 태어나고, 개를 제도하기 위해서는 개로 태어나며,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보살은 영화롭고 욕되는 일에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공부하는 이를 업신여기지도 않아요. 이 세상 만물에는 배울 것이 다 있어요. 그래서 이 세상 전체가 다 우리의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강은 강대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다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으면 배워야 해요. 바라밀은 미혹의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으로 모든 보살이 육바라밀에 의지해 행을 닦을 때는 바라밀을 부모님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데는 끝이 없어야 하며, 한량없는 보시를 행해야 합니다. 늘 용맹정진하고, 한량없는 부처님의 공덕을 듣고 지혜의 보검으로 번뇌 도적을 베어내야 합니다.” 고산 스님께서는 매달 석왕사에서 약사재일을 맞이하여 법문을 하신다. 법문 때마다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유마경>강의를 한품씩 해 주시는 것이다. <유마경>강의를 끝낸 스님은 대중을 한 번 훑어보시고서는 다음 법문을 이어갔다. “어떤 보살이 기도 잘하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는데, 뇌경색이라 의식이 없는 거여. 그래서 산소호흡기 꼽고 병원에 누워 있으니 그 치료비가 엄청난거라.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야. 억지로 목숨 이우는 것도 그렇고 해서 자식들이 산소호흡기 빼줄라고 해도 병원에서 안 빼준다카데. 그래서 법원에 호소를 해도 1심, 2심, 3심 다 병원이 이긴다고 하데요.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그것이 다 병원이 돈 벌려고 그런다고 해요. 여러분들은 죽을 때 병원에서 호스 주렁주렁 달고 죽지 말고 그냥 집에서 편안하게 죽어요. 그것이 본인에게도 좋고, 죽고 나면 자손들에게 피해 안 끼치고 좋은 일이야. 오래 살려는 것도 다 헛된 욕심이지. 아무 소용없어.” 고산 스님은 법문을 통하여 육신의 무상함을 일깨워주시는 것이다. 육신의 공(空)함을 일깨워주는 소동파와 불인요원선사의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난다. 어느 날 홍주자사로 부임해 간 소동파는 명성이 자자한 불인요원 선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불인 선사의 방에는 앉을 의자조차 없었다. 선사는 소동파에게 말했다. “마침 오늘 내 방의 의자를 누가 빌려갔으니 아무 데나 앉으십시오.” 소동파는 선사를 좀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한마디 하였다. “의자가 없으면 스님의 몸뚱이를 좀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소동파의 말에 불인 선사는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내가 문제를 하나 낼 테니 맞추면 자사의 의자가 되어드리겠지만, 만약 그대가 틀린다면 옥대(玉帶)를 풀어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몸뚱이는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대는 원래 공(空)한 것인데 자사는 어디에 앉으려 합니까?” ‘사대는 원래 공하다’는 한 마디에 말문이 막힌 소동파는 불인 선사에게 옥대를 풀어주고는 가르침을 청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저 염불 열심히 하여 자기 갈 날을 준비해야지.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죽는 것을 모르고 자꾸 욕심부리지. 어리석음, 탐욕, 세상에 대한 분노를 놓아버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마지막 가는 준비 잘 하는 것이지. 탐진치 만큼 무서운 것이 없어요. 그리고 빨리 성불하고 싶으면 교만한 마음이 없어야 되요. 상대방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낫다 싶으면 상대방을 얕보고 그래. 남을 업신여기면 염불, 간경, 기도 등 무엇을 해도 성불하기 어려워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생에 상불경보살로 살 때 돼지보고도 부처가 될 것이라 했고, 거리에 있는 무엇을 보고도 다 부처가 될 것이라 하면서 공경했어요. 우리는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내 앞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공경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것이 바로 성불하는 길이고 부처 되는 길이지. 요즈음 우체국이다 하고 전화해서 돈 다 빼가지고 가는 그런 사기단이 있다고 하데. 보살들이 피해를 당하고 나서는 ‘스님 어쩌까에?’ 하는데 내가 뭐 판검사가 어찌 아노. 자신이 잘 해야지. 그리고 요즈음 뉴스 보니까 부모에게 몹쓸 짓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세상에서 가장 못된 짓이 부모에게 불효하는 거야.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힘들게 키웠고 세상에 내 보낸다고 힘들었고 또 키운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 은덕을 모르고 불효를 해. 타인을 해치는 것보다 부모를 해하는 것이 더 나빠요. 지금 말법시대라 하지만 부처님 시대나 지금 시대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요. 단지 부처님 재세에는 착한 사람이 많고 나쁜 사람이 적었을 것이고, 말법 시대에는 착한 사람이 적고 나쁜 사람이 많은 것이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고민을 안고 고산 스님을 찾아온다. 그럴 때면 고산 스님은 사람들에게 분별심을 버리라고 한다. 좋은 날을 택해달라는 이에게는 비가 오면 촉촉이 와서 좋고, 맑은 날은 맑아서 좋고, 바람이 부는 날은 선선해서 좋고, 구름이 낀 날은 끼어서 좋으니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일러준다. 좋은 방위를 찾는 이에게는 불교는 무남무북무동무서(無南無北無東無西)라, 우주는 갓이 없기 때문에 동서남북이 본래 없으며 중앙이 본래 없는데 어디에서 중심을 잡아서 동서남북을 정할 것이며 방위를 정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 한단다. 기도 염불을 해도 부자가 안 된다고 하는 이에게는 남에게 베풀어 복덕종자를 심으라 한다. 스님은 삿된 법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정법을 간곡히 일러주신다. 그래서 스님은 세납이 칠십이 훨씬 넘었건만 법문을 청하는 이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어디든 달려가 바른 법을 들려주신다. “부처님 말씀에 첫 번째 생각할 때 종자가 마련되고, 두 번째 그 생각을 거듭할 때 싹이 틔고 세 번째 생각을 하면 스스로 열매를 거둔다고 했어. 그러니 부처님의 정법을 바로 배운 사람은 함부로 나쁜 생각, 잡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데,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은 함부로 모든 생각을 일으켜서 많은 종자를 심어서 그 열매를 거두는 거지.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되고,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사람들은 분주하게 끝없이 업을 짓고 과보를 받아요.” 고산 스님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첫째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요, 둘째는 항상 미소를 지을 것이요, 셋째는 말을 아끼라고 한다.
하는 일이 시들하게 느껴질 때면 ‘첫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돌이켜볼 일이다. 첫 마음으로 잘 살고 있는지 점검한다면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기에 우리는 날마다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글ㆍ사진=문윤정(수필가ㆍ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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