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자를 위한 팔정도(八正道)

2010. 6. 29. 19: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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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가자를 위한 팔정도(八正道)

 

 

                                                 - 잭 콘필드(Jack Kornfield) -

 

 

 

 

<18>정정진(2)

 

 

‐자신을 명확히 바라보라‐

 

스스로를 열어놓고

일상행위를 깊이 주목

몸·마음에서 감정 몰아내야

 

 

우리는 모든 일상을 주목하며 바른 행동(정정진)을 실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다. 왜 어려운 것일까? 여기에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싫어한다는 이유도 있다. 자신을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통, 따분함, 두려움, 외로움, 즐거움, 아름다운 일조, 기막힌 맛, 무시무시한 경험, 생로(生老), 밝음, 어두움, 감정의 오르내림 등 모든 것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곳에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가 바라지 않더라도, ‘돌연한 모든 변화’에 스스로를 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정진은 명확하게 보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수없이 강조해 왔다. 세간(世間)은 들뜬 곳이다. 전쟁과 편견이 있으며, 수많은 정치범들이 옥고를 치르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마약의 환각을 찾을 만큼 세간의 삶은 고(苦)다. 우리는 이 세간을 특수한 환경에서 고립된 슬럼가로만 생각할 뿐 우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인도 성인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Nisargadatta Maharaj)가 어느날 봄베이의 한 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공손히 절하며 물었다. “우리는 수 종류의 수행을 실천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얻을 수 있는 진실 혹은 사실은 무엇입니까?” 마하라지는 이같이 대답했다.

 

“물론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자신을 표현하고 어떤 확신을 심어주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당신이 찾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은 진실, 사랑, 조화로운 의식 등의 본성일 것이다. 당신이 주목하고 있는 고(苦)는 분명히 변화한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당신에게 ‘집중’을 요구하며, 조화와 사랑으로 향하도록 당신의 운동에너지를 자극한다. 에너지가 더욱 증가하면 할수록 당신의 깨달음은 깊어질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수많은 난관들이 있으며,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결코 고(苦)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고통에서 사랑을 낳을 수도 없다.”

 

우리는 그야말로 ‘세간(世間)’에서 살고 있지만, 즐거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여기에서 조차 깊고 높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이것들은 우리의 간절한 바람과 성실한 노력에서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정진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상좌부불교의 수행법에서 찾을 수 있다. 하루 네 차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숨결 하나하나에 몰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졸리움, 권태로움, 즐거움 등의 감정이 교차할 것이다. 이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떤 경험을 했었는지 곱씹어야 한다. 이것을 반복하면 할수록 우리는 강인한 수행력을 기를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마하시(Mahasi) 사원의 수행법이다. 이것은 하루 15~18시간 정도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앉아서 혹은 걸으면서 명상을 하는 것이다. 오직 4시간의 잠을 허락하고 소량의 음식만을 섭취하게 하는 이 사원의 수행에서 강조하는 것은 눈을 깜빡거리거나 고개를 돌리는 등과 같이 놓치기 쉬운 행동조차 깊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이런 행동이 나오는가?”라는 물음을 계속 던지도록 한다. 이 같은 물음의 대답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더러움, 욕망, 두려움 등과 같은 감정을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몰아낼 수 있다.

 

이 두 수행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듣고, 보고, 냄새 맡고, 맛을 보는 것 등을 통해 집중하고 그 상태를 유지해 세계가 실질적임을 느끼는 감정의 속박으로부터 해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깊이 주목해 주변의 유·무정물과의 관계성을 지켜보고, 사실성과 거짓성을 보게 한다는 것이다.

 

 

- 현대불교신문 -

 

 

 
 
      서로를 격려하는 삶을 살아가요 인생이란 나그네가 걷는 마음의 여행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길에서 잠시 머무는 것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지향하며 굳건히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여행은 어둠이 아닌 밝은 여행이 되어야 합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반발할 뿐입니다. 남모르게 그분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는 사이에 서로의 마음이 통하게 되어 상대방의 마음이 부드럽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판에 동요하는 사람은 완성의 길에서 멀리 있는 사람입니다. 서로 맞지 않은 사람과 일치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먼저 마음을 바꾸는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바르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사람들과 진정한 일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다섯 손가락의 역할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특성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장점을 살려주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곧 상대방을 응달에서 햇볕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은 사람들을 강인하게 하고 자신감을 줍니다. 누군가를 인정해 주는 것은 그를 살려주는 것이며 삶의 윤활유가 됩니다. 반대로 자만하고 자랑하는 것은 마찰의 요인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 사람은 점점 왜소해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웃의 도움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성장할 것입니다.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이웃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하고 불안과 초조함을 더해줄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이 있는 곳에서 온전히 피어나도록 하십시오. 주변 환경을 나에게 맞추려 하지말고 나를 주변 환경에 맞추도록 하십시오. 남을 꾸짖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일 뿐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전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당신의 인생을 실패로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거센 태풍은 하룻밤에 모든 것을 휩쓸어 가지만 잔잔한 미풍은 마음을 평화롭고 기쁘게 합니다. 태풍과 같은 삶이 아니라 산들바람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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