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뚱이는 내 것이라는 생각조차 착각”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것이 좋을까?
무엇보다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에 대한 애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 및 과거에 대한 회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애착과 회한은 어디에서 생겨날까?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뚱이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몸뚱이인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한다.
한 마디로 ‘나의 몸’이라는 소유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몸은 본래 내 것이 아니다.
진정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늙거나 병들고 죽어가는 이것이 어찌 내 소유란 말인가?
이 몸뚱이가 내 소유라는 생각은 한 마디로 착각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 몸뚱이의 관리자였을 뿐이다.
임시로 관리를 맡아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가꾸어 주느라 바쁜 세월을 지내왔다.
한 마디로 몸뚱이 시봉하기에 바빠 참 나를 돌아볼 겨를 조차 없었다.
그토록 애써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좋은 모습 보여주고 좋은 소리 들려주느라 최선을 다해왔건만
늙거나 병들고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제 관리시효가 다해가는 것뿐이다. 얼마나 개운한가?
내가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놓아두고 떠나라 한다면 무척 서운할 것이다.
당연히 미련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관리하고 있다가 그것을 놓아두고 떠나라 한다면
그다지 서운할 까닭이 없다.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소유자에게는 애착이 있기 때문에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관리자에게는 애착이 없으므로 미련이 없다.
떠날 때는 그냥 떠날 뿐! 오히려 홀가분한 심정으로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집과 재물 마음 또한 관리대상 인과법칙 무시한 소유는
집착 이러한 마음가짐은 몸뚱이 뿐 아니라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다.
가족과 집, 재물, 심지어는 자신의 마음조차 소유했던 것이 아니라 관리했을 뿐이다.
내 가족도 금생에 가족일 뿐이다.
전생에는 원수지간이거나 은인사이였을 것이며
내생에는 또 다시 어떤 인연이 되어서 만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금생에 못 다한 인연이나 한스러운 사연에 대해서도
너무 애달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실 못 다한 인연이란 없다.
이른 바 억울한 죽음이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우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인과의 법칙에 오류는 없다.
이른 바 금생과의 연이 다 했으니 갔을 뿐이다.
연이 다 하지 않았는데 가는 경우는 없다.
금생에 이 몸뚱이를 가지고 할 일을 다 했으니 가는 것이다.
다만 지어놓은 업에 따라 또 다른 몸뚱이 받으러 떠난 것뿐이다.
영가를 위한 시식문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진실한 모습은 이름을 떠났으며
본마음 참 나는 자취가 없지만 연(緣) 따라 숨거나 나타나는 것이
마치 거울에 비춰진 형상과 같으며
업(業)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마치 두레박줄이 오르고 내림과 같아서
오묘한 변화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實相離名 法身無跡 從緣隱現 若鏡像之有無 隨業昇沈 如井輪之高下 妙變莫測)
참 나는 이름이 아니다.
금생에서의 이름일 뿐, 전생에서는 다른 이름이었고
내생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진짜 나의 이름이란 말인가?
참 나는 자취도 없다.
금생에서의 몸뚱이였을 뿐, 전생에서는 다른 몸뚱이였고
내생에는 또 다른 몸뚱이를 받을 것이다.
어떤 것이 진짜 나의 몸뚱이란 말인가?
- 월호 스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