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처럼 넓고 깊게 배워라

2013. 8. 1. 16:1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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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처럼 넓고 깊게 배워라

 

 

지해 이윤호(知海 李潤鎬)|범죄학 박사, 경기대 교수

 

 

광덕 큰스님. 그 이름만 들어도, 모습만 그려보아도 내 가슴은 설레인다. 큰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몇 년이 되었건만 생전의 가르침을 받았던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살아 계신다. 지금도 불광사에 가면 큰스님의 그 잔잔하신 미소와 꾸밈없는 밝으신 용안을 더 가까이서 뵐 수 있고, 우리들 삶의 지표요 등불이 되는 법문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빠지곤 한다.

 

 

큰스님을 모셨던 불제자라면 누구나 특별한 인연이 없을 리 만무하지만 필자 또한 큰스님과의 인연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가 대학을 마치고 평소 큰스님께서도 늘 말씀하셨고 항상 관심을 가지셨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 특히 범죄문제와 형사정책을 보다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미국 유학을 꿈꾸던 때였다. 당시만 해도 형사정책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그리 높지 않아서 국내에서는 더 이상 범죄학을 학문적으로 공부할 수 없어서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이었지만 큰스님께서는 이미 우리 사회의 범죄문제를 걱정하셨던 혜안을 가지셨던 분이었다.

 

 

큰스님과 나와의 인연은 윗대로 올라간다. 큰스님과는 아주 특별한 연을 평생 가지셨던 하산(荷山) 거사님과 대륜성(大輪性) 보살님의 큰 여식인 불이행(不二行) 보살을 부처님께서 필자의 아내로 점지해 주신 연분으로 시작되었다.

 

 

그때가 1982년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같은 해 6월, 미국의 미시간 주립대학교로 유학을 떠나기 전 출국 인사차 법회가 끝난 후 큰스님을 따로 뵈올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큰스님께서는 필자가 꿈꾸던 범죄 없는 사회의 구현을 위해서는 선진학문을 많이, 그리고 깊이 있게 공부할 것을 당부하시면서 그런 뜻을 필자에게 바다처럼 깊고 넓은 학문을 하라고 지해(知海)라는 법명으로 수계를 주셨다. 지금도 필자는 큰스님께서 주신 지해라는 법명을 영광스럽고 고귀하게 간직하고 있다.

 

 

부처님과 큰스님의 보살피심이 있었기에 필자는 무사히 범죄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4년 반만에, 그것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취득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이 오늘날 필자가 있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86년 귀국 후 대학 강단에서 교수로서 후학을 가르치게 되면서 잠실벌의 불광사에서 다시 큰스님을 뵈올 수 있었다. 더불어 잠실 불광사에서 큰스님과의 인연으로 상좌인 도피안사 주지로 있는 송암당 지원스님을 뵙게 된 것은 필자에게는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우리 불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겠지만 큰스님께서는 선승이며 학승이고 또 이 시대의 불교사상가이기도 하시다. 동시에 한국불교의 현대화와 이를 위한 포교활동, 특히 도시 포교에 선각자적 역할을 하셨다. 그 대표적인 업적의 하나가 바로 월간 「불광」의 발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큰스님께서는 포교활동의 중요성을 간파하셔서 불광사에서 포교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개설하셔서 심혈을 기울였다.

 

 

큰스님께서는 당시로서는 누구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형사정책이라는 범죄문제를 다루는 학문으로 포교사 교육과정에 하나의 교과목으로 짜 놓으셨고, 필자에게 그 강의를 맡도록 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형사정책이라는 학문이 바로 중생제도를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천학문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필자는 큰스님의 부르심이 곧 부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고 더운 여름날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가르쳤던 자랑스러운 추억을 가지고 있다.

 

 

범죄문제에 대한 큰스님의 관심은 여기서 끝나지 앉으셨다. 언젠가 필자가 저술한 책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큰스님을 찾아뵌 자리에서 한국의 청소년문제와 범죄문제에 대한 평소의 생각들을 말씀하시면서 이들 사회문제들을 연구하는 불교사회문제연구소의 필요성을 설파하신 적도 있다. 그 후에도 연구소 설립에 관한 구체적인 말씀을 수차 하시던 중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하게 되어 필자에게는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큰스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으며 그것이 또한 필자의 개인적인 소망이기도 하다. 다행인 것은 큰스님의 상좌이신 송암 스님께서도 범죄와 청소년, 그리고 기타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한 예로 청소년들을 위한 유스호스텔이나 노인들을 위한 요양원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큰스님의 큰 뜻도 현실로 곧 구체화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오늘도 필자는 큰스님을 기리며 범죄 없는 세상을 위한 학문의 길을 열심히 가면서 큰스님의 자랑스러운 불제자가 되고자 최선을 다하며 큰스님과의 인연을 고이 간직하고 싶다.

 

 

 

광덕스님 시봉일기 7권 사부대중의 구세송 중에서- 글 송암지원, 도피안사


 

 

 




      고운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마음이 예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봄 산에 진달래 꽃 같은 소박한 사람으로
      잔잔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아무것도 잘 하는 것이 없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향기 가득하여
      누구에게나 사랑스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 나이 불혹이 지난 발걸음의 무게가 크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자유로운 마음은
      나를 어린 아이로도 만들고
      소년으로도 만듭니다.

      진리님께서는 우리 몸따라 마음 늙으면
      마지막 판도라의 상자 속에 숨겨둔
      보물 모르고 절망 속에 가라앉아 죽어 갈까봐
      죽는 날 까지도
      우리 마음은 늙지 않게 하셨나 봅니다.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내 마음속에 미워하는
      이 하나도 없이 아름답게 가만 가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누가 웃어도 괜찮다고 말할래요.
      내 마음이 지금 예쁘고 행복하니까요.
      고운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늘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내 생활이 나를 속일지라도 그려니
      마음 비우고 여유롭게 살겠습니다.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나누어 줄 것이 별로 없어도 따스한
      마음 조각 한줌 내어 주며 살겠습니다.

      그리워하며 살겠습니다.
      마음속에 연분홍 설레임 늘 간직하여
      꽃 같은 미소로 살겠습니다.
      불평이나 불만은 잠재우며 살겠습니다.

      그것들이 자라날 마음의 토양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늘 마르지 않는 옹달샘처럼
      스스로 다스리고 가꾸어서
      행복의 샘을 지키겠습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오는 음악 : I.O.U ( I Owe You 행복한 빚 ) - Carry & 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