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므로 ‘나’아닌 게 없다/월호스님

2013. 9. 19. 11: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당신이 주인공입니다

728x90

‘나’이므로 ‘나’아닌 게 없다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미래.현재가 아니로다.

(信心不二요 不二信心이니 言語道斷하여 非去來今이로다.)  - <신심명>

어떤 큰스님께서는 손님이 오면,
후원의 소임자를 불러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나와 한 고향 출신이다. 잘 대접하도록 하여라.”
큰 스님과 동향출신이라는 말을 듣고는 최선을 다해 손님을 모셨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거의 오는 손님마다 한 고향출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를 궁금히 여겨서 여쭈었더니,
큰스님께선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사실 우리 모두가 한 고향출신이다. 본마음 참 나 자리에서 온 것이지.”

인도에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지금도 거기에서는 밥 먹을 때 맨손을 사용하는 습관이 남아있다.
또한 시골의 화장실에는 아직도 휴지가 없다.
휴지 대신 작은 물통 혹은 물 컵 하나씩 놓여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용변을 보고나서 휴지로 뒤를 닦는 것이 아니라,
물을 사용해서 손으로 세척하는 것이다.
사실 휴지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개운해서
일단 맛을 보게 되면 이러한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본 마음 입장에선 ‘일체가 나’
삶과 진리 不二 믿는 것이 신심

이렇게 맨손으로 먹기도 하고 맨손으로 닦기도 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손이 정해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먹는 것은 오른손, 뒤를 닦는 것은 왼손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오른손은 깨끗함, 왼손은 더러움을 상징하게 된다.
이러한 두 손을 합쳐서 인사하는 합장(合掌)인사에는
다분히 중도적 의미가 담겨있다.

깨끗함과 더러움이 둘이 아니다.
그대와 내가 둘이 아니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선과 악이 둘이 아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바로 지금 여기서
나의 삶과 진리가 둘이 아님을 확고히 믿는 것이 진정한 신심이다.
불상을 향해서는 108배는 물론 삼천배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의 주변사람들에게는
고개 숙여 삼배조차 하지 않는 마음은 진정한 신심이 아니다.
부처와 중생이 둘 아님을 굳게 믿어야한다.
나아가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님을 굳게 믿어야한다.

출가해서 행자생활 당시 주로 설거지나 해우소 청소를 도맡아 하였다.
아마도 평생에 먹은 밥그릇만큼의 설거지를 하지 않았을까?
큰 법회라도 있게 되면,
한꺼번에 수백 수천 그릇의 설거지를 한 적도 있었다.
그때에 만약 “내가 뭐 설거지나 하려고 출가했나?”하는 생각으로
대충대충 그릇을 닦고,
시간나면 책이나 보려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찌꺼기 담긴 그릇이 나의 오염된 마음과 같다.
마음그릇을 닦는 심정으로 설거지를 하자’하고 설거지를 하게 되니,
즐거운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게 닦아 보송보송한 그릇을 보면,
마치 내 마음도 깨끗해진 듯 기분이 상쾌해졌다.
결국 수행과 일이 둘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본마음 참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둘이 아니다.
일체가 ‘나’이므로 나 아닌 것이 없어져서,
언어분별이 끊어지고 시간조차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 월호스님 -

 

 

나무라는 것은 좋은 질문 하셨는데 원래 범어에요. 인도 용어에요. 그러니까 나무라는 것은 번역하면 귀의합니다. 이런 뜻이에요. 으흠. 나무아미타불하면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이 소리에요. 불교에서는 귀의한다는 표현을 써요. 돌아갈 귀, 의지할 의. 그러니까 돌아가 의지합니다. 그런데 왜 그냥 의지합니다. 안 그러고, 왜 돌아가 의지한다고 그랬을까? 이거 아주 중요한 용어에요. 우리가 사람이 죽으면 뭐라고 그래요? 돌아가셨다. 이러잖아요. 아주 좋은 말이에요. 이게. 돌아가셨다. 왜?

자기 본마음 참나자리로 돌아가셨다. 이거에요. 본래면목자리로 돌아가셨다. 이거에요. 정말 본래면목 자리로 돌아가려면 무아법에 통달해야 되요. 그러지 않고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직 본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직도 중간단계에서 헤매고 있구나. 이 소리에요. 그래서 아미타부처님께 돌아가 의지한다는 것은 아미타부처님도 다 본래면목자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으흠. 돌아가 의지한다. 그러는 거예요. 다 나와 한 고향 출신이에요. 여러분과 재가 한 고향 출신이라 그랬죠? 으흠. 부처님과 우리도 다 한 고향 출신이에요. 그래서 돌아가 의지한다. 나무라는 말은.

 

 

 

    마음은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 ..
    거울은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비친다. 그러나 거울은 어떤 물체가 앞에 나타나야 비치게 된다. 물체가 사라지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거울에 물체가 비쳤다 하여 거울로부터 태어난 실물은 없다. 그저 비친 것 뿐이다. 또한 물체가 사라졌다 하여 거울로부터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저 사라진 것 뿐이다. 거울에 아름다운 꽃이 비쳤다. 그 비친 영상은 아름답지만 거울 자체는 아름답지 않다. 더러운 것이 비쳤다 하여 거울 자체가 더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거울에 물체가 비쳤다 하여 거울 자체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도 아니고, 물체가 사라졌다 하여 거울의 무게가 줄어들지도 않는다. 인간 본래의 마음은 어떤 악으로도 더럽히지 못하고 어떤 선으로도 그 이상 이익되게 할 것이 없다. 이미 선악을 초월해 있다. 인간의 마음이 거울 같다고 하면 혹 그 마음 속에 무엇인가 비치는 물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거울이란 한낱 비유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다. 그 래서 본래 무일물(無一物)이다.

    - 서옹스님의 <물따라 흐르는 꽃을 본다> 중에서  

    -

        * 마음은 진공묘유(眞空妙有)라 !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는 구슬, 마니주다